[문종구의 필리핀 바로알기] 외국인 투자와 더미
토지가 관련되어 있는 거의 모든 필리핀 사업들은 외국인의 지분이 40%를 넘을 수 없다. 가끔 한국인 전용 골프장, 콘도(아파트), 은퇴자 마을 등을 조성한다는 소문들이 들리곤 하는데 사기일 가능성이 많다. 한국의 골프장은 대부분 주인은 따로 있고 이용권(회원권)을 매매한다. 이와 달리 필리핀의 골프장은 거의 대부분 회원들이 주주이다. 회원권을 사게 되면 주권이 발급되어 나오고 해마다 주총에 참여하라는 통지서가 날아온다. 즉, 골프장의 사장과 임원들은 회원들이 모인 주총에서 결정하고 임명한다. 각 회원들은 골프장 전체의 대지와 클럽하우스를 포함한 전체 재산에 대해 1/n 소유권을 가진다고 보면 된다.
이렇듯 토지가 직접 관련되어 있으므로 골프장에서 회원권을 분양할 때엔 반드시 전체 회원권 숫자의 60% 이상을 필리핀 사람들에게 분양해야 하고 40% 이하만을 외국인들에게 분양할 수 있다. 회원(주주회원)들은 매달 50~100달러 정도의 골프장 관리비를 부담하며, 회원의 직계 가족 구성원 모두가 회원 대접을 받고 회원과 가족들에게는 그린피가 면제된다. 골프장 운영이 잘되어 흑자인 경우 회원들이 매달 내는 관리비를 줄이게 되고, 적자가 나게 되면 회원들의 관리비가 오르게 된다. 그래서 일부 한국인 사업가들이 재정 상태가 좋지 않은 지방의 골프장들과 매년 몇 억씩 기탁하는 조건으로 일정 기간 한국인 게스트 골퍼들에 대해서만 영업과 관리를 위임받는 계약을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계약기간이 끝나면 한국인 사업체가 분양한 회원권(이용권)효력도 소멸될 수 있다.
위와 마찬가지로 콘도(한국식 아파트)를 지어도 전체 세대수의 60% 이상을 필리핀 사람들에게 분양해야 한다. 은퇴자 마을의 경우, 단독주택 형식이면 반드시 100% 필리핀 사람들에게만 분양할 수 있으며, 콘도로 승인받으면 총 세대주의 60% 이상을 필리핀 사람들에게 분양해야 한다. 그러므로 한국인 전용(100%) 골프장, 콘도(아파트), 은퇴자 마을 등의 사업은 법적으로 불가능하고, 편법이 동원된 사업에 투자하였다가 나중에 문제가 발생하면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회사나 공장의 경우에도 특별히 필리핀투자청(BOI)에서 심사하여 인정하는 극히 일부분의 업종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 필리핀 주주들 지분이 60% 이상 되어야 설립할 수 있다.
필리핀 사람들의 해외취업을 알선하는 회사인 경우에는 더욱 까다로워 필리핀인 지분이 75%가 넘어야만 한다. 많은 외국인들이 경영권을 확보하기 위해 실제로는 100% 투자하고서도 서류상으로는 40%를 투자한 것으로 명기하고 나머지 60%는 필리핀인의 명의를 빌려 명기하고 있다 한다. 이렇게 명의를 빌려 준 필리핀인을 dummy라 부르며 이러한 행위는 필리핀 실정법(anti-dummy)에 위배된다. 이 법에 의하면, 명의를 빌려준 사람과 빌린 사람이 모두 처벌받도록 되어있다.
법 규정을 위반해 가면서 더미를 내세워 회사를 설립한 외국인들 중에는 훗날 실소유주라고 주장하는 더미들에게 회사를 빼앗기는 사례들도 많다. 그래서 회사설립 초기에 더미들로부터 회사 주식 포기각서를 미리 받아두는 경우도 있는데, 이 또한 외국인과 더미들 간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더미라고 주장하는 순간 양측이 모두 anti-dummy법을 위반했음을 주장하는 꼴이 되어 처벌을 받게 된다.
만일 외국인이 증거로 제시하는 주식 포기각서를 더미들이 부정하며 위조된 서류라고 주장하면 오히려 공문서/사문서 위조범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 또한 자수해버리면 더미 주주는 처벌을 면할 뿐만 아니라 자수 신고에 따르는 포상금을 받게 되고 더미를 쓴 외국인만 처벌을 받게 규정되어 있다. 드문 사례이기는 하지만, 더미들이 40% 지분의 외국인을 살해하여 회사 전체를 더미들 소유로 해버린 경우도 있다 한다. 더미 주주가 자신의 명의로 되어 있는 주식을 범죄 조직원에게 팔아넘겨 버리는 경우도 있고, 더미가 자수하게 되면 이 법이 규정하고 있는 보상을 받게 되고 자수한 더미는 면책이 된다. 특히 회사 명의의 자산(부동산 등)이 많은 경우 더미들을 잘 관리하지 않으면 생명의 위험을 포함한 여러 가지 낭패를 볼 수 있다.
2005년 10월, 마닐라의 부두에서의 일이다. 철광석을 수출하는 M이라는 광산회사와 외국의 선주 간에 화물 운송계약을 맺었고, 광산 회사가 모든 수출 서류와 화물 1만5000톤을 부두에 준비한 후에 배가 입항했다. 그런데 하루 동안 2000톤 정도를 실은 후 작업이 중지되었다. 수출하기 위해 쌓아놓은 부두 야적장의 철광석 위에 총으로 무장한 여러 명의 사설 경비(사병)들이 서있는 것이었다. 광산 회사의 대주주들과 소주주 간에 내부 분쟁이 있어서 소주주가 사설 경비를 동원해서 수출을 방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광산업을 하기 위해 넘어온 중국 본토인들이 100% 실제 투자를 했지만 필리핀 법에서 요구하는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서류상 60%의 지분을 세 명의 현지인들(Dummy)에게 나눠주고서 M이라는 회사를 설립했는데, 더미 주주 중 한 명이 지분을 엉뚱한 사람에게 팔아 넘겨 버렸고, 지분을 인수한 현지인(소주주)이 권리를 주장하며 배당금을 요구하고 있는 중이라는 것이다. 세관에서 화물을 배에 실으라는 명령서를 가져와도 소주주는 버티었고, 사건 발생 거의 보름 후에 대주주 측에서 법원의 명령서(court order)까지 받아왔는데도 소주주는 무장 경비들을 철수시키기는커녕 인근 경찰서에 무장 경비들을 보호해달라는 협조 공문을 보내 경찰 병력까지 부두에 출동하였다.
사건 발생 20여일 후 대주주 측은 자기들이 고용한 인부들과 장비를 보호해 달라는 협조 공문을 해군에 보내 해병대 병력이 출동하여 경찰 병력과 해병대 병력이 부두 야적장에서 철광석 화물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는 어처구니없는 사태로 발전하였다. 일간지와 방송에까지 보도되었다. 하루 임대료가 2천만원이 넘는 배의 외국 선주는 이러한 사태로까지 발전하자 당황하여 자기들의 비용으로 배에 실려 있던 2000톤 정도의 화물을 부두에 내리고 사건 발생 30여일만에 빈 배로 출항해 버렸다.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외국 선주는 수억원의 손해를 보게 되었고, 배가 떠난 후 화물을 수출할 수 없게 되자 양측의 병력은 철수했다,
교민들 중에 필자 아내(필리핀인)의 명의를 빌려달라고(더미 주주가 되어 달라고) 요청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어 왔지만 항상 정중히 거절하였다. 회사의 주주들 중에는 반드시 필리핀 국적의 주주만이 맡을 수 있는 직책이 있는데, 그것은 재무담당인 Treasurer와 법률 담당인 Corporate Secretary다. 외국인이 경영을 할 수 없는 업종(소매업 포함)인 경우에는 사장(President)을 포함한 임원(Manager)들도 반드시 필리핀 국적을 소유한 사람들만으로 구성해야 한다. 한국에서 과장이라 부르는 Manager가 필리핀에서는 임원이며 경영자임을 명심해야 한다. 회사의 중요한 정책을 결정하거나 계약할 경우에는 더미 주주의 서명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러한 결정과 계약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에는 더미 주주가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아무런 직책을 맡지 않고 어떠한 정책 결정이나 계약서에 서명한 적이 없다 하더라도, 그 회사와 분쟁중인 상대 회사에서 그 회사의 대주주들인 필리핀 주주들 모두에게 책임을 묻게 된다면 나중에 재판에서 승소한다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받을 수 있는 심리적, 시간적, 경제적 압박과 손실을 어찌할 것인가?
외국인 투자가들 중에는 착한 ‘현지처’를 두고 생활하며 Dummy로 활용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이러한 비도덕적이고 편법을 동원하는 사람들을 필자는 ‘낭만적 진보주의자’라 일컫는데 현실적으로 유용하며 안전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현지처에게는 충분한 물질적 보답을 해 줘야 할 것이며, 현지처가 원하는 경우 그녀의 가족과 친척들까지도 돌봐줄 수 있는 배려와 경제력(아마도 월 500만원 이상)을 갖추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한 방식으로 성공적인 사업을 유지하고 있는 일부 외국인 투자가들은 그들의 본처들도 필리핀의 특수한 사정을 이해하는지, 이러한 사안에 대해 부부 사이에 큰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현지처가 아닌 더미 주주들에게도 매달 또는 정기적으로 ‘금전적인 사례’를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식사나 술사는 것만으로 보답했다고 생각한다면 더미로부터 옹졸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을 것이고 실망할 것이다. 회사에서 일하는 경우라면 급여와 별도로 ‘사례’를 하는 것이 좋다. dummy를 내세워 사업을 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the Anti-Dummy Law’의 조항들 중에 중요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위반자(명의를 빌린 자와 빌려준 자 모두 처벌)는 5년 이상 15년 이하의 징역(중형)에 처하고, 투자금이 몰수된다.
-제보자에게는 위반자로부터 징수한 벌금액의 25%를 포상금으로 지불하며, dummy인 필리핀 사람이 자수하는 경우 처벌을 면제 받음과 동시에 법을 위반한 외국인으로부터 징수한 벌금액의 25%를 포상금으로 지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