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 동정의 시선, 코피노 불우한 존재로 만든다

코피노 아빠 블로그

[아시아엔=최정아 기자] ‘코피노 아이들이 아빠를 찾습니다’

최근 한 블로그가 한국 SNS를 강타했다. 코피노(한국인 아버지와 필리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2세를 지칭하는 말)의 아버지를 찾아주기 위해 한국 남성들의 사진은 물론 신상정보까지 상세히 공개한 것이다. 이 블로그를 접한 네티즌들은 무책임한 한국남성을 향해 분노를 쏟아냈다.

국내 언론들도 여론에 발맞춰 ‘한국의 일그러진 자화상’이라며 코피노에 대한 후원이 시급하다는 내용의 보도를 이어갔다. 하지만 필리핀 현지 분위기는 한국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오히려 코피노가 무엇이냐며 고개를 갸우뚱한다. 코피노, 도대체 어떻게 봐라봐야 하나?

최근 한국과 필리핀 교민사회에서 불거지고 있는 ‘코피노’ 논란 쟁점에 대해 살펴보자.

“코피노가 뭐죠?”
필리핀 현지 반응을 요약하면 간단하다. “코피노가 뭐죠?”

현지인들은 오히려 한국인들이 코피노를 불우한 아이들로 몰아간다고 생각한다. 에바 마리 왕(서울대 글로벌교육협력전공 박사과정)은 “한국 매체들은 코피노를 어둡게 그리는 경향이 있다”며 “역대 대통령 중에서도 싱글맘이 있을 정도로 필리핀에선 싱글맘이 흔하다. 필리핀에서 싱글맘과 코피노를 향한 동정론이 없는 이유도 여기 있다”고 말했다. 또다른 필리핀 현지인은 “한국은 필리핀의 싱글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며 “코피노와 싱글맘들을 도우려는 한국의 자선단체들이 오히려 한국인들에게 필리핀 싱글맘에 대한 부정적 선입견을 심어주고 있다”고 밝혔다.

필리핀 교민사회에서도 ‘코피노’가 화제가 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내놓고 있다. 필리핀 여성과 혼인한 교민 문종구씨는 “밝게 자란 우리 아이들도 코피노라 불리는데 반갑지 않다. 코피노란 단어 자체가 ‘사생아’란 의미를 내포해 매우 부정적이기 때문”이라며 “많은 한국 교민들이 코피노 대신 ‘코필’이란 단어를 사용한다”고 말했다.

‘코피노 양육비 소송’
코피노에 대한 동정여론은 친자확인·양육비 소송으로 이어지고 있다. 코피노 가족의 빈곤을 해소하기 위해 일부 국내 자선단체가 나서 로펌과 함께 친자확인·양육비 소송을 진행중이다. 현재 세종공익센터, 한국여성변호사회 등 일부 로펌에서 공익사업의 일환으로 양육비 관련 무료 법적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처럼 모든 로펌들이 무료로 코피노들을 도와주고 있는 것은 아니다. 코피노가 화제가 되면서 일부 로펌들이 단체들과 연계해 양육비 청구소송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이들은 변론을 무료로 진행하는 대신 국제소송이라는 점, 또 패소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점을 들어 위자료·양육비 총액의 30~50%를 성공보수로 책정하고 있다. 하지만 살림이 어려운 코피노들을 대상으로 ‘지나치게 비싼 수임료를 받는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코피노 소송사업을 지켜본 한 필리핀 현지인은 “한국 NGO단체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코피노가 ‘비즈니스화’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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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이 올바른 해결책인가
공익사업이든 수익사업이든, 이들은 ‘양육비 소송’이 코피노를 돕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는데 동의하고 있다. 코피노 가정이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변하지 않은 사실이며 금전적인 어려움을 해결할 방법은 ‘소송’ 밖에 없다는 것이다.

청소년인권단체 탁틴내일과 협약을 맺어 코피노 양육비 소송을 무료로 돕고 있는 한국여성변호사회 소속 임지영 변호사는 “일각에선 소송으로 한국인 아버지와의 관계가 무너지는 등 부정적인 측면을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하지만 우리는 코피노 모친들이 법적으로 보장받아야할 권리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한국인 남성들의 신상정보를 올려 화제가 된 WLK(We Love Kopino)의 구본창 대표도 “한국에서나 필리핀에서나 미혼모 혼자 양육비 지원 없이 아이를 키우는 일은 힘들다”며 “자녀를 찾을 의지가 없는 남성들에게 양육비를 받아내는 길은 소송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한편 ‘양육비 소송은 코피노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강하게 반박하는 이들도 있다. 필리핀은 한국과 달리 ‘모계사회’로 불릴 만큼 여성들이 가정경제의 중심이다. 가족과의 관계 매우 돈독해 수입이 많은 여성이 일가친척을 모두 먹여 살리는 일도 흔히 볼 수 있다. 이러한 필리핀 문화의 이해 없이 소송은 무의미하다는 것이 ‘소송 반대파’의 입장이다.

코피노어린이재단의 손범식 대표는 “필리핀 여성이 갑작스럽게 큰돈이 생기면 친척일가가 모두 그 집에 들어와 살거나, 생활비를 받아쓴다. 한국에선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이곳에선 쉽게 일어나는 일이다”라고 한다. 그는 “양육비가 엄마에게 전달된다고 해도 그 돈이 코피노에게 제대로 쓰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필리핀 사람은 많지 않다”고 덧붙였다.

WLK 구본창 대표는 이에 대해 “승소 후 받은 양육비가 온전히 코피노에게 쓰일 수 있도록 교육시키고 있다”며 “사이트를 만든 지난해 8월부터 지금까지 일부 엄마들이 소송을 통해 양육비를 받았는데, 일각에서 우려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또한 단기적인 효과이며 가족문화가 강한 필리핀에서 큰돈이 생긴 여성을 다른 친척들이 가만히 놔둘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것이 교민사회의 대다수 의견이다.

소송의 역기능으로 부자관계 악화도 꼽힌다. 손범식 대표는 “한국의 경우에도 부부지간에 소송이 생기면 관계가 완전히 무너진다. 코피노와 한국인 남성도 돌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 관계가 끝장난다. 결국 상처는 코피노의 몫이다”라고 밝혔다.

돈보단 ‘그물잡는 법’ 가르쳐야

그렇다면 양육비 소송의 대안은 무엇일까. 혹자는 일본의 자피노(일본인 남성과 필리핀 여성 사이에 태어난 혼혈2세) 사례를 참고해야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일본 정부는 필리핀 현지 재단에 간접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으로 자피노들을 돕고 있지만, 아직까지 한국정부의 경우, 코피노에 대한 별다른 지원정책이 없다.

현지 코피노 단체는 또다른 대안으로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코피노 대부분이 일반 필리핀 서민처럼 제대로 된 정규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손범식 대표는 “지난주 필리핀의 한 지방에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코피노가 있다고 해서 다녀왔다. 아이를 데려다가 교육 받게 할 예정이다”라며 “코피노 가족에게 무조건 돈을 쥐어주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 제대로 교육받지 못하는 코피노들이 교육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자립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말했다. 손 대표는 필리핀에서 코피노 엄마와 아이들을 중심으로 한 협동조합을 꾸려 소득을 올릴 수 있는 기술·직업교육을 진행할 예정이다.

손 대표는 코피노 중 제2의 하인스 워드가 나온다면 코피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많이 사라질 것이라고 믿고 있다.

“코피노는 불우하지 않습니다. 코피노 아이들을 불쌍한 아이들이 아닌 ‘한국의 미래 인적자원’으로 접근한다면 한국사회에 중요한 인재가 될 것입니다.”

<사진=코피노어린이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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