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일그러진 사각지대 ‘코피노’
버려지는 필리핀한인 2세 ‘코피노’
미국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5일 한국인 남성과 필리핀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한국인 2세 ‘코피노(KOPINO; Korean+Phillippino)’ 문제를 보도했다.
WSJ는 국제 아동인권단체인 아동성착취반대협회(Ecpat) 자료를 인용해, 지난 5년 새 필리핀을 찾은 한국인 관광객 수가 늘면서 코피노도 과거 1만 명 수준에서 3만 명으로 늘어났다고 전했다.
코피노의 한국인 아버지는 영어를 배우려고 필리핀을 찾은 학생, 한국에 가정이 있는 사업가나 여행자, 성매매를 위해 방문한 사람 등이다. WSJ는 한국의 급속한 경제성장 후 남성들이 필리핀에서 현지 여성을 사귄 뒤 여성과 자식을 버리는 일이 많아졌다고 꼬집었다.
코피노는 금전지원을 받기는커녕 한국인 아버지와 연락도 닿지 않는 경우가 많다. 코피노인 돈 델라디아(20)는 “아버지와 한 번도 연락해본 적이 없고, 아버지의 이름 빼고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코피노가 급증하고 있지만 아직 한국과 필리핀 정부의 뚜렷한 지원이 없는 실정이라고 WSJ는 전했다. 한국 법무부는 한국 국적을 가졌던 적이 있는 부모와 조부모를 둔 외국인에게 근로·거주 비자를 내주고 있다. 하지만 코피노의 경우 아버지 신원을 모르거나 신원을 알더라도 아버지가 여전히 한국 국적자라서 이런 혜택을 받기 어렵다. 한편 필리핀 보건·외교부는 코피노가 자신들의 업무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지난 2006년부터 코피노에게 보금자리와 학교를 제공하고 있는 손범식 코피노어린이협회 대표는 “아이들이 반드시 생부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혼혈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해서는 안 된다”며 코피노를 바라보는 한국인의 편견을 우려했다.
이현숙 아동성착취반대협회 대표는 WSJ에 “한국인들은 일본과 미국으로부터 성 착취당한 피해자라고 불평했으면서도 한국이 경제선진국이 된 이후 필리핀에서 가해자로 변모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