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소설 ‘갤리온 무역’ 34] 유다양 ‘얼마나 이 순간이 오기를 꿈꿔왔던가!’
제6부 동업 그리고 조선 여인 8
[아시아엔=문종구 <필리핀바로알기> 저자] 셀로나 호는 후추를 가득 실은 후 마누엘 신임 선장의 지휘 하에 오리엔트 호보다 일주일 먼저 멕시코로 떠났다.
1616년 2월 15일, 오리엔트 호는 편서풍 계절이 거의 끝나가는 계절의 새벽에 드디어 마닐라를 출항했다.
유다양이 조타실 문 앞에 서서 갑판에 대기하고 있는 선원들에게 명령했다.
“밧줄을 감아 들여라! 닻을 끌어들여라! 돛을 올려라!”
조타실안에서는 동업자 세 사람이 이제 막 선장이 된 유다양을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고 자못 우쭐거리는 걸음걸이로 좌현과 우현 쪽에 각각 나 있는 조타실 문을 들락거리며 이것저것 선원들에게 지시했다. 잠시 후 유다양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껏 들뜬 감정이 배어 있었다.
“출항!”
갈매기들이 날아들어 갑판에서 이슬방울들을 쪼아대는 사이에 선원들은 분주하게 돛을 펼쳐 올렸다. 만일 유다양의 승선허가 발급이 보름만 더 늦어졌다면 거의 무풍의 계절을 맞아 항해가 힘들 뻔 했거나, 무풍계절이 끝나 태풍의 계절이 시작되는 6월까지 두세 달을 더 마닐라에서 허송세월할 뻔 했다.
선원들이 갑판에서 일하면서 노래했다.
나는 떠나리라!
뱃전을 흔드는 커다란 파도여!
광란을 타고난 크나큰 바다여!
이국의 자연을 향하여
닻을 거둬 올려라!
어떤가? 바다 사내들의 호기심어린 열정과 모험이 느껴지지 않는가? 이 노래는 훗날 말라르메 (1842-1898)라는 프랑스 사람이 시로 옮겨 놓았다. 타고르(1861-1941)라는 인도 시인이 부른 이런 노래는 또 어떠한가?
바다는 깔깔대며 부숴지고 파도는 흰 이를 드러내어 웃습니다.
죽음을 지닌 파도도 자장가 부르는 엄마처럼
예쁜 노래를 불러 줍니다.
유다양은 조타실 안팎에서 선원들을 지휘하면서 가슴속 깊숙한 곳으로부터 무엇인가 북받쳐 오르는 것을 느꼈다. 설레는 기분이랄까? 벅찬 감정이랄까? 드디어 갤리온 선의 선주가 되어 그리고 선장이 되어 항해를 하게 된 것이다. 얼마나 이 순간이 오기를 꿈꿔 왔던가!
하늘에 높이 떠 있는 달빛이 쏟아져 내려와 바다를 온통 은 조각으로 반짝이게 했다. 마치 유다양의 앞날을 비춰 주는 것만 같았다. 이제는 단숨에 거부가 되어 출세하는 일만 남은 것이다. 소금기가 느껴지는 시원한 편서풍을 가득 품어 불룩한 돛은 금은보화를 가득 품은 그의 미래를 연상시키게 하였다. 부유함이 수평선 너머에서 그에게 어서 오라는 듯 손짓하며 번쩍거리고 있었다. 어느 덧 유다양의 머릿속에는 지나온 세월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있었다.(6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