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소설 ‘갤리온 무역’ 31] 항해사서 선장 겸 선주 된 유다양, 접대부에겐 그 사실 감춰

제6부 동업 그리고 조선여인 5

[아시아엔=문종구 <필리핀바로알기> 저자] 오리엔트 호는 1000톤 규모의 갤리온 선으로, 세 개의 돛대와 대형 삼각돛(lateen Sail)을 구비하고 있었다. 선저용골은 참나무로 건조되었고 외판과 갑판은 소나무로 만들어 졌다. 양현에 각각 8문의 데미컬버린 포가 장착되었는데, 이 대포는 구경이 작고 가늘면서 포신이 길어 갤리온 선에서 흔히 볼 수 있었다. 배의 길이는 85미터, 폭은 13미터, 만재흘수(滿載吃水:화물을 가득 실었을 때 바다수면 아래에 잠기는 깊이)는 5미터였다.

거의 같은 시기에 조선에서 만들어졌던 거북선(판옥선에 덮개를 씌운 전함)의 크기는 150톤 규모에, 길이 35미터, 폭 10미터, 만재흘수 1.4미터였으니 거북선보다 여섯 배 정도 더 큰 규모의 배였다.

수다쟁이 유다양과 과묵한 헬리 두 사람은 12월 중순부터 웬일인지 부쩍 가까워져서 빈번히 함께 어울려 다녔다. 유다양은 평소의 그답지 않게 헬리와 얘기할 때에만 목소리를 낮추어 소곤거리곤 했다. 그러다가 사람들이 가까이 다가서면 말을 돌려 딴청을 피우기도 하는 게 여간 비밀스러워 보이지 않았다. 그러한 사례들은 대수롭지 않듯이 얘기하는 사람들로부터 애드문 귀에 들려왔다.

한번은 총독부 건물 안에 세 들어 있는 로이드 보험회사 사무실에서 두 사람이 함께 나오다 마침 그 사무실 앞을 지나가던 미라와 마주쳤다. 미라가 그들의 의심스러운 행동에 대해 애드문에게 얘기했으나 애드문은 그들이 오리엔트 호의 인수인계에 대해 상의하고 있는 것이리라 지레 짐작하고는 두 사람의 어울림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갤리온 선의 선장업무는 그다지 복잡하지 않다. 더구나 경력을 많이 쌓은 항해사들에게는 업무의 인수인계를 위해서 그토록 빈번한 만남과 회의가 필요하지 않다. 그렇지만 무슨 일에서든 자신만만했던 애드문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떤 상황에서든, 어떤 사람이든 자신의 의지로 통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는 사람은 자만심에 차있는 사람이다. 교만한 사람이라고도 한다. 자만심이 넘치고 교만한 사람은 그러한 성격 탓에 언젠가는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되는 법이다.

1월 중순에 헬리, 애드문, 크리스전은 오리엔트 호의 승선 허가증을 필리핀 총독으로부터 즉시 발급 받았다. 그런데 유다양은 톰슨과의 고용계약 해지를 일방적으로 통보하여 톰슨의 분노를 사는 바람에 오리엔트 호 승선 허가증 발급이 그 후 한 달이나 지연되어 버렸다.

유다양의 승선 허가증 발급을 기다리는 동안 애드문이 지인들의 도움을 빌어 도자기 400톤을 무사히 오리엔트 호에 실었다. 도자기 전체의 구입 대금은 은화 400냥 이었는데 그 중 가장 고가인 고려청자 100톤을 구입하는 데 200냥이 쓰였고, 중국 도자기 300톤에 200냥을 지불했다.

애드문은 미라를 사무장 겸 선내의사로 고용하고 싶어서 수녀원을 찾아갔다. 애드문의 인품에 어느 덧 푹 빠져 있었던 미라는 포근한 미소와 목례로 동의를 표했다. 원장 수녀는 처음엔 의심이 가득 찬 눈짓을 던졌지만, 애드문이 유럽에서 가져 온 장신구와 예쁜 손거울 등을 주면서 살살 달래자 이내 그에게 상당히 호의적인 태도를 보여주었다. 그렇잖아도 수녀들 중에 미라의 용모와 재주를 시기하는 여자들이 많아 골치가 아팠었는데 오히려 잘 되었다고 내심 반겼다.

미라가 처음 마닐라에 오면서부터 수녀원에 있는 여자들은 모두 자주 거울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미라가 비록 조선이라는 가난하고 천한 나라 태생이라고는 하지만 적어도 외모에서 만큼은 자기보다 신의 축복을 더 많이 받고 태어났다고 느끼는 사람들 중에 원장 수녀도 예외는 아니었다.

미라가 항해에 동행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크리스전이 누구보다도 더 반기며 기뻐했다. 유다양과 헬리의 동의도 얻게 되자 미라는 공식적으로 오리엔트 호의 사무장과 선내의사로서의 직함을 얻게 되었다. 급여는 5개월의 항해를 기준으로 하여 은화 다섯 냥을 지불하기로 계약했다.

유다양은 마닐라에 왔을 때에는 일개 항해사였지만 이제 어엿한 선주이자 선장으로 곧 떠날 것이다. 하지만 선술집 접대부 제니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면 화대로 뭔가 더 바랄 것 같아 끝까지 숨기기로 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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