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소설 ‘갤리온 무역’ 32] ‘어차피 나 혼자만의 여자도 아니지 않는가!’
제6부 동업 그리고 조선여인 6
[아시아엔=문종구 <필리핀바로알기> 저자] ‘어차피 나 혼자만의 여자도 아니지 않는가!’
제니를 먼저 데리고 들어간 중국 선원이 일을 마치고 쪽방에서 나올 때까지 목로에 앉아 차례를 기다렸다. 선술집 안에는 제니 외에도 세 명의 창녀들이 더 있었다. 창녀들은 다른 손님들에게는 야릇한 애교를 부리며 살갑게 대했지만 유독 유다양에게만은 모른 체 하거나 냉랭하게 대했다. 그 이유는 이상한 성행위를 요구하는 변태자라는 것이 창녀들 사이에 소문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다양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는 싸구려 창녀나 헤픈 여자들과 노는 것 외에, 술집 안팎에서 차나 술을 마시고 있는 선원들과 상인들의 시시콜콜한 대화를 엿듣는 것을 즐겼다.
유다양의 승선허가증 발급에 있어서 마지막 난관이었던 톰슨의 동의서도 애드문이 톰슨의 친척들까지 동원하여 설득하고서야 받을 수 있었다. 도자기 구입 대금도 오리엔트 호가 출항하기 이틀 전까지 동업자 네 사람이 각자의 지분대로 마련해 왔다.
애드문은 미라와 함께 마닐라에 있는 거의 모든 서점들과 시장에 있는 노점들을 들러 책을 사 모았다. 지금 쓰고 있는 글의 참고용으로 그리고 긴 항해의 무료한 시간들을 달래기도 할 겸, 필요해서였다.
애드문이 구입한 책들 중에는 출판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의 작품들이 여럿 있었고, 1588년에 출간된 몽테뉴의 <수상록>, 1584년에 출간된 마테오 리치의 <천주실의>도 있었다.
<홍길동전>을 발견하고 탄성을 지르는 미라에게 그 책을 사서 선물했다. 이 책의 저자인 허 균은 1618년에 역모 죄로 처형당했는데, 그는 상류층의 착취와 불합리한 유교사회제도를 참고만 있지 말고 분노하고 항거할 것을 백성들에게 권했다 한다. 서양보다 훨씬 뒤떨어진 봉건제 사회를 유지하고 있던 동양의 작은 나라에서 그토록 진취적인 민주民主의식을 가진 지성인이 있었다는 것을 훗날에 알게 된 애드문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오리엔트 호가 마닐라를 출항하기 열흘 전, 애드문이 셀로나 호에 승선했다. 그동안 그는 칼라우 여관에 묵고 있었고 가끔씩 배에 들르기는 했지만 이번에는 보름 만에 돌아왔다. 부두에서 바라다 본 마닐라 만에는 멀리 항해하는 배들의 하얀 돛이 마치 갈매기들의 날개처럼 보였다.
뱃전에 콜타르를 칠하고 있던 갑판장과 선원들이 애드문을 보자 모자를 벗고 차렷 자세를 취했다. 갑판장이 일동을 대신하여 거수경례를 하며 힘차게 인사했다.
“애드문 선장님,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애드문이 배를 한번 쓱 둘러보고는 만면에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려. 좋아! 갑판장 수고했네!”
깔끔하게 정돈되고 닦여진 갑판에 윤이 흘러 햇빛에 반짝였다.
잠시 후 애드문은 간부회의를 주재하기 위해 사관들인 일등 항해사, 이등 항해사, 삼등 항해사 그리고 사관은 아니지만 수습 항해사, 포술장과 갑판장도 불러 회의에 참여시켰다. 모두들 애드문이 선발하여 교육시키고 훈련시켰고, 해적들과의 전투 등 애드문과 함께 수많은 역경을 헤쳐 왔던 역전의 간부들이었다.
“여러분들도 들어서 알고 있듯이, 나는 오리엔트 호를 몇 사람들과 함께 구매했고 내 인생에 있어서 동업同業이라는 새로운 시도를 해 보기로 했다. 그래서 여태까지 미뤄왔었던 일을 결정하였기에 통보하고자 한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