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소설 ‘갤리온 무역’ 21] 작렬하는 태양 아래 인파와 마차 떼 붐벼
<4부> 마닐라 인트라무로스 요새 2
[아시아엔=문종구 <필리핀바로알기> 저자] 요새 안에는 천여 명의 스페인 군인들이 밤낮으로 철통같은 경비를 서고 있고, 요새를 열 두 방향으로 나누어 각 방향으로 요새에 접근하는 수상한 선박이나 무장 세력들을 상대할 요량으로 대포를 여러 문 설치했다. 요새의 벽과 연결되는 곳에는 군인들 막사와 무기고, 죄인들을 가두어 놓는 감옥이 있었다. 요새의 가장 중앙에는 광장이 있었고 그 곳에 총독 관저와 성당이 자리 잡았다. 총독관저에는 스페인에서 파견된 총독과 법관, 세무관 등 관리들 약 200여 명이 사무를 보고 있었고, 성당에는 로마 교황청에서 파견한 400여 명의 성직자들 중에 50여 명만 머물고 나머지 350 여 명의 성직자들은 필리핀 각지에 건설 중인 성당을 관리하고 인근 주민들에게 선교하기 위해 파견되어 있었다.
광장 주변에는 스페인 관리들의 저택들과 유럽에서 몰려온 상인들을 위한 식당을 겸한 여관들, 고기나 곡류, 과일을 파는 상점들이 광장을 중심으로 원형으로 질서 있게 들어서 있었다. 광장의 노점들에는 유리 제품, 거울, 과일과 야채, 먼지 쌓인 책들과 별의별 헌옷까지 없는 게 없었다.
요새를 드나들 수 있는 두 군데의 입구와 광장까지는 직선으로 연결되어 네 대의 마차가 나란히 다닐 수 있을 만큼 넓은 대로였고, 그 외 주택들과 여관들 및 상점들이 늘어서 있는 거리거리들은 두 대의 마차가 동시에 다닐 수 있는 넓이였다.
도로는 로마식으로 반듯하게 닦여 하늘에서 볼 수 있다면 바둑판을 연상시킬 만 하였고 돌을 네모나게 깎아 바둑판처럼 깔았기에 마차가 수 없이 지나다녀도 길이 파이거나 흙먼지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날리는 경우가 없었다. 비가 많이 내리는 우기 철에도 요새내부의 길들은 질벅거리지 않았다.
인트라무로스 광장의 총독 관저 입구에서 나오면 세 시 방향 길 건너 목 좋은 위치에 칼라우 여관이 있다. 광장 주위에 늘어서 있는 머리를 교회의 첨탑처럼 뾰족하게 다듬은 우쭐한 종려나무들은 잎사귀들을 바람에 날리며 그늘을 흩트리고 있지만, 칼라우 여관 정문 양쪽에 심어놓은 커다란 망고나무 두 그루만은 여관 전체에 쾌적한 그늘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
요새의 안과 밖에 있는 망고나무들은 3월의 수확기를 앞두고 부지런한 새끼 망고들이 벌써부터 세상구경을 나와 포도송이마냥 주렁주렁 앙증맞게 매달려 있었다. 한낮의 인트라무로스 광장은 작열하는 태양으로 뜨겁게 달아올랐음에도 지나다니는 사람들과 마차가 많아 혼잡했다. <4부 끝, 5부 ‘네 사람 동업자들의 만남’으로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