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소설 ‘갤리온 무역’ 25] “이봐, 누런 인종들! 닥치지 못해?”
제5부 네 사람 동업자들의 만남 4
[아시아엔=문종구 <필리핀바로알기> 저자] 그것은 유다양이 며칠 전 디비소리아에 있는 싸구려 선술집에 놀러 갔을 때의 소동이었다. 술 취한 어느 포르투갈 선원의 가벼운 난동사건을 우연찮게 목격했던 유다양이 자신의 이야기로, 그것도 굉장한 일이 있었던 것처럼 잔뜩 부풀려 보기로 했다. 그 선원이 붙잡히지 않은 채 도망쳤고 워낙 사소한 일어어서 소문도 디비소리아 밖에까지 퍼지지 않았을 것이었다.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인트라무로스 요새 안에서만 소일하고 있던 세 사람이 그 소동을 알 턱이 없다는 계산도 이미 마쳐둔 상태였다.
당시의 선원들은 항구에 내리면 흥겨운 기분에 들뜬 채 배불리 먹고 취하도록 마시며, 노래 부르고 춤추면서 때로는 거친 싸움도 마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유다양이 약간 각색한다 하여 그다지 틀릴 것도 없었고 이상할 것도 없이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뻔한 이야기였다. 아무튼 유다양의 경험담이라는 이야기는 이러했다.
유다양은 술집에서 혼자서 술을 마셨다. 혼자서 마셨지만 주위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술 실력을 뽐내려고 단숨에 잔을 비워댔다. 그리고는 머리 위로 술잔을 흔들면서 종업원을 불렀다.
“이봐! 잔이 비었잖아. 한 잔 더!”
다 마신 술잔을 탁자 위에 거칠게 내려놓으면서 마음껏 소리치는 것도 신이 났다.
어느 덧 술에 취한 유다양이 흐리멍덩한 눈으로 천장을 올려다보다가 갑자기 고향생각이 나서 고향에서 부르던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소리 내어 불렀다. 술에 엉망으로 취해 있었기에 음정과 박자가 개판이었을 것이 분명했지만 유다양은 개의치 않았다.
그때 바로 옆 테이블에서는 중국 상인 세 명이 유다양도 잘 알고 있는 창녀 마리아와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그 중에서 몸집이 제법 큰 중국인은 다른 창녀들을 노골적으로 집적거렸다. 그들은 노래가 귀에 거슬렸는지 얼굴을 찡그리며 유다양을 노려보다가 그만두고 다시 창녀들과 잡담을 계속했다. 그들뿐만 아니라 가게 안에 있는 손님들도 술에 취한 시답잖은 선원에 대해 곱지 않은 말들이 오고갔다. 사람들은 대체로 상당히 불만스러운 표정들을 하고 있었다. 그것 역시 유다양이 눈치 채고 있었지만 무시했다.
유다양은 감정에 복받쳐 노래를 부르다가 갑자기 주먹으로 탁자를 쾅 내리쳤다. 순간 술집 안에 적막이 감돌았다. 하지만 곧 중국 상인들은 담배에 불을 붙이고 큰 소리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다들 아시다시피 중국인들은 매우 시끄럽지 않은가! 유다양은 그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고함을 질렀다.
“이봐, 누런 인종들! 아가리 닥치지 못해?”
그때, 중국 상인들 중 한 명이 그를 돌아다보며 물었다.
“지금 우리한테 말한 거요?”
“그래! 그걸 몰라서 물어? 댁들 목소리가 너무 커서 노래하는 데에 집중할 수 없잖아!”
“허! 이 친구 웃기네! 당신, 선원이야?”
몸집이 큰 중국남자가 유다양에게 말했다.
“그렇다! 왜?”
유다양이 우렁차게 대답했다.
“그럼 배에 가서 노래하면 될 거 아냐!”
“나는 여기서 노래하는 게 좋단 말이야!”
“이거 계속 재미난 소리를 지껄이네.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