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소설 ‘갤리온 무역’ 23] 유다양이 비웃었다 ‘명과 왜에 꼼짝없이 당하는 한심한 조선’
제5부 네 사람 동업자들의 만남 2
[아시아엔=문종구 <필리핀바로알기> 저자] 유다양은 애드문이 이 순신 장군의 전과戰果 뿐만 아니라 전세의 상황에 대해서까지도 잘 알고 있는 것에 또 다시 놀랐다. 어쩌면 그 전쟁과 이 순신 장군에 대해 자기보다 더 자세히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 한 구석이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뭐 대단하다면 대단한 거겠죠. 하지만 …… “
유다양은 입맛을 다시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수장시킨 영국의 드레이크 선장보다 더 낫다고 결코 말할 수 없죠! 비록 드레이크 선장이 해적이라는 부정적인 평가를 하는 사람들도 있긴 하지만, 비루한 동양인 주제에 감히 우리 서양인들과 견줄 수는 없지 않나요? 애드문 씨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세요?”
유다양은 말 끌에 힘을 주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어색함이 느껴졌다. 근거 없이 떠드는 사람들에게서 흔히 느끼는 공허함이었다.
애드문은 급히 뭔가 말하려다 그만 두고 어깨만 으쓱해 보였다. 개인적으로 드레이크를 좋아하지 않았다는 것을 차치하고서라도 과연 전쟁의 성과로만 지휘관을 판단할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일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사람에 대한 평가는 보이는 것보다는 보이지 않은 것에 더 비중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 자신의 소신이고 이 순신 장군의 보이지 않는 모습은 어땠는지 아는 바가 그다지 많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중국과 인도를 포함한 동양세계의 무기체계가 서양에 비해 훨씬 뒤떨어져 있어서 전쟁에 임하는 지휘관들의 전술도 다를 것이었다. 비록 유다양이 빈약한 근거로 이 순신 장군을 얕잡아 본다 하더라도 그의 견해를 반박할 만한 자료 역시 애드문에게 궁했기 때문이었다.
애드문의 머릿속에는 이 순신에게 패한 어느 일본 장수가 그의 가족과 친구들에게 전했다는 말이 맴돌았다.
“내가 제일로 두려워하는 사람은 이 순신이며, 가장 미운 사람도 이 순신이고, 가장 좋아하는 사람도 이 순신이며, 가장 흠모하고 숭상하는 사람도 이 순신이다. 가장 죽이고 싶은 사람도 이 순신이고, 가장 차를 함께 마시고 싶은 사람도 이 순신이다.”
그가 대체 어떤 인물이기에 적장敵將마저도 ‘가장 흠모하고 숭상하는 사람, 가장 차를 함께 마시고 싶은 사람’일 수 있을까? 그토록 우수하고 훌륭한 인물이었더란 말인가? 애드문은 그가 살아있다면 반드시 찾아가 만나보고 싶었다.
애드문이 학교에서 배우기를, ‘우수함’이란 겉으로 나타나는 힘이라 했다. 공부를 잘한다든가 싸움을 잘한다든가 멋진 몸매를 가진 것 따위가 우수한 것이다. 그러나 ‘훌륭함’은 내면의 힘이다. 약자에 대한 사랑과 배려, 많은 경험을 토대로 쌓은 지혜와 통찰력이 깊다면 훌륭한 것이다.
애드문의 침묵에 잠시 어색함이 흘렀고 자신이 주도하고 있는 대화에서 발생하고 있는 공허함을 빨리 채우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유다양이 얼른 자신의 말을 이었다.
“어찌 되었건 간에, 우리들은 훌륭한 장군이 있으면 이웃 나라를 정복하거나 식민지를 건설하는데, 이 순신 같은 탁월한 장군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이나 명나라를 정복하지 못한 조선은 정말로 한심하고 멍청한 나라임에 틀림없어요. 그렇지 않아요, 애드문 씨? 하하하!”
유다양은 자기가 굉장히 재치 있는 말을 했다고 생각하며 호탕하게 웃었다. 애드문은 유다양의 말에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에 잠겼다.
‘탁월한 장군이 있음에도 명나라와 일본을 정복하지 못한 나라, 조선…… 명나라를 대국大國이라 부르며 엎드려 섬기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나라, 조선……. 오히려 스스로 굴종屈從하는 것을 예의라고 믿고 있는, 어처구니없도록 한심한 나라, 조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