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소설 ‘갤리온 무역’ 22] 애드문이 물었다. ‘조선의 명장’ 이순신 장군을 아느냐고?

제5부 네 사람 동업자들의 만남 1

[아시아엔=문종구 <필리핀바로알기> 저자] 오후의 따가운 햇살 아래 커다란 망고나무들이 흐늘흐늘 움직이고 있었다. 광장에 있는 커다란 분수는 물을 뿜으며 반짝이고 있었다. 나무 그늘 아래 벤치에서 매일 오후 두 시경부터 해가 저물려하는 여섯 시까지 무엇인가 심각하게, 때로는 호쾌하게 웃으며 의논하고 있는 네 사람이 한 달 가까이 눈에 띄었다. 그들은 오래전부터 알았던 사이처럼 정다워 보였다.

그 날도 저녁노을이 부산을 떨며 스러지고 어스름이 안개처럼 몰려드는 무렵이었다. 여관 앞에 있는 커다란 망고나무아래 여느 때처럼 네 명의 사내들이 벤치에 앉아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그들 중에 제일 젊어 보이는 유다양이 제일 혈기가 넘쳤고 발랄하여 말이 많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벌써 15년 동안이나 마닐라와 멕시코를 오가는 갤리온 무역선을 타고 다니는 항해사였기 때문에 마닐라에 대해서는 일행 중에 가장 경험이 많았다. 그는 언제나 신사처럼 말쑥하게 차려입고 다녔는데, 부츠와 잘 어울리는 항해사 제복의 코트자락 밑으로 단검이 흔들거렸다. 그는 가죽으로 만든 모자 아래로 눈썹을 항상 찌푸리고 있었다. 유다양이 자못 명랑하게 계속 지껄여 대었다. 누가 보기에도 그는 약간 들떠 있었다.

유다양이 유쾌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화제를 하나 떠올렸다.

“혹시 ‘애드머럴 리’ 라고 들어본 적이 있으십니까?”

나이가 꽤 많아 보이는 두 명의 노인은 얼굴이나 목주위에 흐르는 땀을 닦다가 동작을 멈추고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갤리온 무역에 5년 가까이 종사하며 한창 재미를 보고 있는 참이었던 중년의 애드문이 흥미로운 표정으로 물었다.

“유다양 씨. 조선이라는 나라의 이순신 장군을 말하는 겁니까?”

당시 조선의 왕과 지도층 양반들은 중국에 속국(번국 또는 식민지국)으로서의 예를 지키고 중국을 섬기는 것을 도리라고 믿고 있었다. 그래서 유럽에서는 조선이라는 나라에 대해 잘 알지 못했고 다만 중국의 동쪽 지방 이름이라고 여길 뿐이었다. 그러나 중국과 일본의 항구들을 자주 오가면서 무역을 하는 유럽 상인들과 선원들은, 조선이 중국과는 전혀 다른 민족의 나라이지만 중국에 정치와 외교가 종속되어 있어서 독립국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하다고 알고 있었다.

그렇게 초라하고 힘없는 나라의 장수에 대해 유다양이 알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예상치 못한 듯 애드문은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오 대단하시네요. 애드문 씨. 아하하하!”

유다양이 손뼉을 치며 웃었다.

“맞습니다. 지금부터 30년 전에 동쪽 끝에 있는 조선이라는 나라와 일본 간에 전쟁이 있었잖아요. 그때 조선의 해군제독이 애드머럴 리죠.”

유다양은 안면에 환한 미소를 지었는데 그건 맞장구를 쳐 주면서 호감을 얻기 위해서였다. 애드문은 물론 그 전쟁을 비교적 자세히 알고 있었다.

“그렇습니다. 애드머럴 리는 패망 직전에 있던 조선을 구해냈지요. 겨우 열 두 척의 배로 열배가 넘는 일본의 전선戰船들을 거의 모두 수장시켰으니 실로 대단한 거죠. 물론, 조선의 판옥선과 거북선이 일본의 군선軍船들보다 훨씬 컸다는 이점이 있기는 했지만, 유럽의 그 어느 해군 제독들 보다 훌륭한 지휘관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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