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화 철에 듣는 ‘상사병 걸린 처녀뱀’과 하룻밤 지낸 ‘이순신 전설’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상사화(相思花)라는 꽃이 있다. 꽃말이 “잎과 꽃이 만날 수 없어 서로 생각만 한다”이다. 서로를 그리워 하지만 만날 수 없는 사랑을 ‘상사화사랑’이라고 한다. 상사화란 ‘화엽불상견 상사화(花葉不相見 相思花)’에서 나왔다.
상사화에는 몇 가지 전설이 있다. 어느 스님이 세속의 처녀를 사랑하여 가슴만 태우며 시름시름 앓다가 입적(入寂)한 후 그 자리에 피어났다는 설이다. 그리고 어떤 처녀가 수행하는 어느 스님을 사모하였지만 그 사랑을 전하지 못하고 시들시들 앓다가 눈을 감고 말았다는 얘기도 있다. 어느 날 스님 방 앞에 이름 모를 꽃이 피자 사람들은 상사병으로 죽은 처녀의 넋이 꽃이 되었다고 했다.
상사화의 전설 중에 ‘이순신 장군과 상사뱀 이야기’가 있다. 이순신이 젊은 시절 공부를 할 때였다. 낯선 사람이 이순신을 찾아와 뜻밖의 이야기를 한다. 자기 딸이 연못에서 목욕하는 이순신을 우연히 보고 상사병이 들어 죽을 지경이 됐는데 죽기 전에 꼭 한번 만나보기를 갈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순신은 마침 그날 집안에 일이 있던 터라 다음날 그 집에 찾아가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밤사이 큰 비가 내려 강물이 크게 불어났다. 이튿날 이순신이 그 집에 가려고 길을 나섰으나 아무리 해도 강을 건널 방도가 없었다.
결국 하루를 더 지체하고 그 다음날이 되어서야 처녀의 집에 이르렀는데, 도착하고 보니 이순신을 기다리던 처녀가 설움을 못 이겨 세상을 떠난 뒤였다. 그런데 한을 품고 죽은 처녀는 커다란 뱀이 되었다는 것이다.
처녀의 부모가 만류했으나 이순신은 처녀의 죽음이 자기 탓이라며 그 곁에서 밤을 지내겠다며 뱀이 있는 방으로 들어간다. 이순신이 방으로 들어가자 뱀이 그의 몸을 칭칭 감았다. 이순신은 뱀의 행동을 말없이 받아주었다.
이순신의 몸을 꼭꼭 감고 있던 뱀은 다음날 날이 밝자 스스로 몸을 풀더니 전날 이순신이 목욕하던 연못 속으로 스며들어가 용이 되었다. 이후로 용은 이순신을 따라다니며 지켜주고 도와주어서 이순신이 임진왜란 때 큰 공을 세울 수 있도록 했다고 하는 전설이다.
처녀가 이순신을 만나기를 소망한 것은 명분이 없는, 욕망에 해당하는 일이다. 이순신으로서는 무시해도 그만인 일이었다. 그 뜻을 받아주기로 하면 오히려 조롱과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있는 터였다.
그렇지만 그것은 명분을 따지기에 앞서 한 인간의 애절한 소망이었다. 한 사람의 목숨이 달린 일이었다. 그 마음 받아주고 풀어주는 것, 그것이 인간에 대한 진정한 예의가 아닐까? 그래서 이순신은 처녀의 집으로 향하였던 것이다.
거기까지는 누구라도 그리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뒤의 일이다. 뱀으로 변한 여인과 밤을 함께 지낸 일이 그렇다. 그 집을 찾아오기 위해 최선을 다한 터이니 할 일 다했다고 돌아설 수도 있으련만, 이순신은 끝까지 인간에 대한 예의를 버리지 않았다.
징그러운 뱀이 도사린 방문을 열고 들어가 자신의 몸을 감는 뱀의 행동을 묵묵히 받아주는 그의 행동이 얼마나 경이로운 것인지? 그 선택을 통해 원한은 거꾸로 은혜가 되었다. 그야말로 ‘은생어해(恩生於害) 해생어은(害生於恩)’의 진리 아닌지? 이것이 바로 해에서 은혜가 생기고, 은혜에서 해가 나오는 인간사의 섭리(攝理)다.
이순신에 관한 전설과 역사적 진실의 연관이 한갓 전설이라 여기고 버리면 안 된다. 이름 없는 한 여인을 진정으로 품어주고 지켜주는 이순신이다. 그런 이순신이 어찌 이 땅의 백성들을 지키기 위해, 군사들의 안위를 책임지기 위해 오죽이나 마음을 쓰고 노력했을까?
처녀가 용이 되어서 이순신을 도왔다지만, 그것은 하나의 서사적(敍事的) 상징일 뿐이다. 이순신은 스스로 그 자신을 도운 것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바로 이것이 신의다. 신의는 믿음과 의리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그 신의를 어떻게 지키는 것인지 그 방법을 알아보자.
1. 무슨 일이나 정당히 약속한 것은 반듯이 실행한다.
2. 무슨 물건이나 남의 것을 빌려온 때에는 약속한 날에 반드이 돌려보낸다.
3. 무슨 일이나 남의 부탁을 승락하였을 때에는 성의껏 그 일에 힘써준다.
4. 무슨 물건이나 남의 것을 맡게 된 경우에는 성의껏 보관한다.
5. 무슨 회계(會計)를 할 경우 그 회계를 신속 또는 분명히 한다.
6. 사람의 환경을 따라 옛 정의(情誼)를 변하지 않는다.
7. 이해의 경우를 따라 의리를 저버리지 않는다.
8. 선진과 후진 사이에 서로 공경하고 사랑하는 예도를 잃지 않는다.
9. 사람의 한 가지 잘못으로 다른 잘 한 것까지 버리면 안 된다.
10. 대의를 발견한 때에는 어떠한 난관에서도 죽기로써 실천한다.
11. 진리에 근본한 서원은 영세(永世)를 일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