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실화소설 ‘더미’⑧] 안마숍 옆방서도 들릴 만한 소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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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엔=문종구 <필리핀 바로알기> 저자] 제대로 수익을 낼 수 있는 아이템을 하루 빨리 찾아 내지 못하면 인채의 투자금에서 발생하고 있는 커다란 펑크를 때울 재간이 없다는 것을 달후는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이런 후진국에서 큰 돈 벌 수 있는 아이템 찾기가 왜 이렇게 힘들지?’ 하고 그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5월 25일. 또다시 인채와 마리셀이 서명한 수표로 송 회장에게 잔금 지불을 하였고, 일부는 그의 개인계좌로 송금했다. 3월 초에 선적되어 왔던 열 대는 모두 보증기간이 만료되기 전에 심각한 고장이 나버렸기 때문에 잔금 회수가 거의 불가능했다. 4월 말에 통관되었던 열 대도 똑같은 방법으로 팔아 치웠고 똑같은 방식으로 송 회장에게 송금하였으며 똑같은 문제에 직면하여 바이어로부터 잔금을 떼이게 생겼다. 그런 식으로 6월과 7월이 지나갔다. 그동안에 무시무시한 태풍도 다섯 개나 지나갔다.

8월 중순, 송 회장이 광복절 연휴기간에 며칠 쉬겠다며 마닐라에 들어왔다. 달후는 평소에도 불쑥 정비소에 나타나는 인채가 송 회장과 마주치면 곤란하기 때문에 송 회장에게 여행을 가자고 꼬드겼다. 다음 날 두 사람은 민도로 섬으로 떠났다.

그 섬에는 바탕가스 부두에서 배를 타고 한 시간가량 가면 도착할 수 있는 사방 비치와 화이트 비치가 있다. 화이트 비치는 그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하얗고 드넓은 백사장이 있어서 해수욕하려는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왔다. 그리고 대체로 가족 단위 또는 커플들이 찾아와서 밤에는 썰렁했다

그와 달리 사방 비치는 모래사장은 별로 없고 해변 인근의 물속에서 아름다운 산호초와 열대어를 구경할 수 있어서 다이버들에게 유명한 곳이다. 다이버 동호인들끼리 오기 때문에 주간에는 다이빙을 하고 야간에는 늦도록 술을 마셔 대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술집이 늘어났고 접대부들도 덩달아 늘어났다.

두 사람은 사방 비치에 있는 리조트에 투숙했다.

3박 4일간의 일정은 매일 똑같았다. 두 사람은 다이빙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밤늦게까지 취하도록 술을 마시고 각자 맘에 드는 창녀를 골라 숙소에 가서 섹스를 한 후 늦잠을 잤다. 오후에는 안마 숍에 가서 몸의 긴장을 풀고 저녁 식사 후에는 다시 술집에 갔다. 따분한 것을 싫어하고 호기심이 많은 두 사람은 술집을 매일 바꿨다. 당연히 파트너도 매일 바꾸어 새로운 여체에 탐닉했다. 송 회장은 달후보다 나이를 더 먹은 만큼 몹시도 추저분하여, 언제나 달후의 파트너보다 더 어린 여자를 찾았다.

8월 17일 사방 비치에서의 마지막 날 오후였다. 그 다음날에 송 회장은 부산으로 떠날 예정이었다. 우기 철이라 그런지 온종일 구질구질하게 비가 내렸다. 두 사람은 리조트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외관상 보기에 오픈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것 같은 안마숍으로 갔다. 가게 안에 들어가 보니 실내 분위기가 한국 냄새를 많이 풍겼다. 1인실은 손님들로 다 차 버려 없다고 하여 커플실로 들어갔다. 1인실에서는 가끔 안마사에게 스페셜 팁을 주고 스페셜 서비스를 받아 볼 기회가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안마사들이 스페셜 서비스를 거부하기 때문에 그것은 운에 맡겨야 했다. 게다가 두 사람 모두 벌써 3일 동안 매일 밤 새로운 아가씨들과 잠자리를 하느라 지쳐 있었다.

달후는 언젠가 인채가 들려준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어느 날 바랑가이 홀(한국의 동사무소에 해당)에서 조사를 받으러 출두하라는 통보가 왔었네. 손님이 성희롱을 당했다며 고소를 했다는 거여. 매니저가 바랑가이 홀에 갔다 돌아와서 보고하기를, 전날 밤에 어느 여자 손님이 왔었는데, 우리 가게의 안마사가 오일 마사지를 하다가 허벅지 안쪽까지 깊숙이 손이 들어왔다는 거였어. 수치심을 느꼈으니 성폭행이라고 주장하더라는 게야. 아…… 우리 안마사 말인가? 당연히 여자 안마사였지. 그 손님을 마사지했던 안마사를 데리고 가서 해명했지만 이미 고소장이 접수되었기 때문에 우리 가게와 손님 사이에 합의를 보지 않으면 법원에서 다투어야 했네. 그런데 변호사 얘기로는 우리가 불리하다는 거지 뭔가. 그리고 소송으로 가면 변호사 비용도 만만찮을 것 같았고. 그래서 만 페소를 주고 합의했네. 그 전에도 안마사들에게 주의를 많이 주고 있지만, 그 후로는 더욱 엄격하게 교육하고 있어.”

달후가 생각하기에 그 여자 손님은 그런 식으로 안마숍을 돌면서 협박하여 돈을 갈취하는 프로 같아 보였다. 아무튼 그런 인간들 때문인지 몰라도 -아마 가톨릭 영향도 있을 것이지만- 필리핀에서는 안마가 너무 건전해서 재미가 덜하다.

이런저런 상상을 하며 안마사의 손길을 즐기고 있는데, 바로 옆 침상에서 안마를 받고 있던 송 회장의 걸걸한 목소리가 그의 귀를 불편하게 했다.

“김 사장, 잔금 회수는 문제없지?”

송 회장은 요 며칠 동안 달후가 사업얘기를 일부러 회피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얘기라고는 한심한 잡담이거나 필리핀 사람들에 대한 험담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적당한 기회에 확인해 볼 심산이었다.

“그것 때문에 저도 골치 아파 죽겠습니다. 회장님께 언젠가 말씀 드렸듯이 보증기간 안에 큰 고장이 나면 잔금을 못 받아요. 바이어들이 선금 돌려 달라고 소송 걸어오지 않는 것이 오히려 다행일 정도라니까요. 지금까지는 제가 손을 써서 잔금을 회수해서 회장님께 보내드렸지만, 앞으로는 잔금을 회수하지 못한다는 전제하에 선금을 최대한 높여서 팔아야 될 것 같습니다.”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게야?”

안마숍의 방들은 키 높이 정도의 칸막이로만 나뉘어 있었다. 그래서 소곤소곤 얘기를 해도 다른 방에서 안마를 받으며 휴식을 취하고 있는 손님들에게서 핀잔을 듣는데, 송 회장의 발끈한 목소리는 지나치게 고성이었다.

“김 사장! 그따위 변명 하지 말랬잖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잔금 회수해! 선금은 대당 150만원 정도밖에 안 되고, 그것은 차 수입 원가밖에 안 되지 않는가! 그러면 이익은 고사하고 내가 자네에게 보내고 있는 정비소 운영관리비와 자네 체류 경비는 어떻게 뽑는가 말이야!”

“쉿, 회장님. 목소리를 낮추세요. 이 가게에 있는 사람들이 다 듣겠습니다.”

그가 송 회장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러나 송 회장은 이미 화가 나 버린 터라 그가 주의를 주는 태도마저도 오히려 짜증스러웠다.

“누가 듣건 말건 무슨 상관이야! 지금 네가 그런 무책임한 말을 씨불이는데 잠자코 듣고 있으라는 게야?”

“알겠습니다, 회장님. 고정하시고 나중에 저녁식사 하면서 다시 상의하시죠.”

두 사람을 주무르고 있던 안마사들도 송 회장의 고성에 당황하였는지 손놀림이 어색해졌고 불편함마저 느껴졌다. 송 회장이 에잇! 하며 고개를 베개에 파묻었다.

안마가 끝나고 나서 카운터로 갔더니 아까는 보이지 않았던 한국 남자가 여직원 옆에 서서 인사했다. 웃음 띤 얼굴이지만 억지스러운 것이 아마도 송 회장의 언성으로 다른 손님들에게 피해를 준 것 때문일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남자가 명함을 건넸다. 남자의 이름은 영어로 토마스 황이었다.

“편안히 쉬셨습니까? 저희가 오픈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아. 괜찮았어요.”

“마닐라에서 정비업을 하시는가 보죠? 사장님들께서 워낙 큰 목소리로 말씀하셔서 안 들으려고 해도 들리더라고요. 헤헤헤! 제 친구가 마닐라에서 택시 사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차후에 교민이 운영하는 정비소하고 계약을 할 계획이라고 들었는데, 소개해 드려도 될까요? 혹시 사장님 정비소가 어디에 있는지……”

“아, 그래요? 이곳으로 연락하라고 하세요.”

달후는 시건방진 태도로 말하며 명함을 건넸다. 곁에 서 있는 송 회장도 필리핀이 가난한 나라라고 멸시하는 마음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필리핀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교민이든 필리핀 사람이든) 안하무인격인 태도를 숨기지 않아, 거만한 자세로 뒷짐을 진 채 두 사람의 대화를 귓등으로 흘려듣고만 있었다.

두 사람이 떠나자마자 황 씨도 밖으로 나가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박 사장님? 아, 네. 잘 지내고 계시죠? 저희 가게도 손님들이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잠시 덕담을 주고받은 후 황씨가 정색을 하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사장님…… 얼마 전에 제가 잠깐 사장님과 식사하면서 들었던 것으로 기억이 나는데…… 사장님께서 투자했다는 정비소가 혹시 JD인터내셔널 맞습니까? 퀘존의 락손 애비뉴에 있는……”

잠시 동안 황씨가 고개를 끄덕여가면서 상대방의 말을 귀담아 듣고 난 후 다시 말했다.

“아. 그러시군요. 그 회사 사장이라면서 명함을 준 김달후라는 젊은 사람이 60대로 보이는 다른 한국 사람하고 방금 저희 가게에서 안마를 받고 갔는데, 그들이 떠드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 회사에 무슨 큰 문제가 있는지 회장이라는 사람이 김달후 사장을 야단치면서 소리 지르고…… 건달들 같기도 하고, 사기꾼들 같기도 했습니다. 조심하시라고 전화 드렸습니다.”

황씨의 전화를 받은 인채는 뒷머리를 쇠방망이로 얼얼하게 얻어맞은 것 같은 통증을 느꼈다. 지난주에 달후가 연락을 해 와서 주말에는 바이어 만나러 세부로 출장 갈 것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왜 나한테 일부러 전화를 하여 거짓말을 했을까? 그러고 보니 그는 계약서에 나와 있는 분기별 재정보고를 하지 않고 있었다. 불현듯 나쁜 예감이 들자, 인채는 즉시 직원 한 명을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보내 정비소의 주주등기서류를 떼 오게 했다. 텔레비전에서는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이 르윈스키라는 통통하고 귀엽게 생긴 아가씨하고 어쩌고저쩌고하는 스캔들을 저질러서 미안하다면서 대국민 사과를 하였다는 뉴스를 하루 종일 지겹도록 반복해서 내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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