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실화소설 ‘더미’⑫] IMF사태로 한국은 어려워졌지만···

Photo courtesy to b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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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엔=문종구 <필리핀 바로알기> 저자] “엿 먹어라! 개새끼야!”

사무실을 나서는 인채의 뒤통수에 대고 속으로 욕을 퍼부은 달후는, 눈썹을 찌푸리며 지금까지의 재정상태를 정리해 보았다. 그가 관리하고 있는 통장에는 17만 페소의 잔고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만약 박인채와 결별하게 되면 당장 다음 달부터 회사 운영경비와 체류 비용조차도 달랑거리게 된다.

‘에라,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지!’

달후는 일찍 퇴근하여 백화점에 있는 극장으로 가서 아무 영화나 보았다. 한글 자막이 없어서 무슨 내용인지 도통 알 수 없었고, 그의 머릿속에는 영화보다는 그를 힘들게 하고 있는 인채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어슴푸레한 저녁 공기가 떠돌아다닐 쯤에야 극장을 나와 적당한 술집을 고르러 나섰다.

그는 JD정비소의 등록이 끝난 후부터 리나와 함께 밖에 다니는 것을 꺼려하기 시작했다. 영화를 보러 갈 때에도, 외식을 하러 나갈 때에도 혼자 다녔는데, 그녀의 존재는 그의 사업을 보호하는 더미주주, 그리고 낮에는 사무실 부하 직원, 밤에는 공짜로 그의 성욕을 해소할 수 있는 여체일 뿐이었다.

그의 천대에 리나는 침대에 우울하게 움츠려 앉아 밤을 새는 날이 늘어갔다. 훗날 그녀는 지인들에게 말했다.

“몰랐어요.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한다고, 결혼하겠다고 했던 말이 거짓이었다는 것을 그땐 정말 몰랐어요. 그런 사람을 사랑했던 내가 어리석었죠.”

달후의 약속을 믿고 어학원에 사표를 던졌던 승호는 배신을 당한 후 한동안 어려운 나날을 보냈다. 교민들이 경영하고 있는 여러 회사들에 이력서를 낸 결과 한 달 급여가 겨우 2만 페소에 불과한 어느 물류회사에 취직이 되었다.

여자친구 애니카는 승호가 근무했던 어학원에서 계속 한국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지만 그녀의 급여가 만 페소 밖에 안 되었고 그마저도 절반은 세부에 살고 있는 부모에게 보내고 있었다. 그래서 두 사람은 2만 5천 페소로 매달을 견뎌야 했는데, 그것은 한국인으로서 최소한도의 체면유지도 안 되는 생활비였다.

1997년 11월, 승호와 애니카는 세부로 이주했다. 이주를 결심한 이유는, 달후가 있는 마닐라가 싫었고, 너무 크고 복잡한 마닐라를 떠나 공기 좋고 해변이 깨끗할 뿐만 아니라 물가가 저렴한 세부에서 살자고 애니카가 졸라댔기 때문이다. 그러다 얼마 후, 승호는 양희승 사장을 만났다. 희승은 겨울방학을 이용하여 어학연수 중인 외아들을 방문하러 세부에 들렀고, 승호는 그 어학원에 취직하여 일하고 있었다.

희승은 전원주택건설을 하는 조그마한 회사를 경영하고 있었는데, 한국의 IMF사태로 회사 사정이 어려워지자 새로운 사업을 찾기 시작하던 무렵이었다. 그는 승호를 만나 얘기를 나누다보니, 더미들의 어리석고 순종적인 성격을 이용하면 노력하지 않고도 큰돈을 벌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승호를 친 동생처럼 여기며 수시로 밥과 술을 사주었다.

어느 날, 희승과 승호는 사업을 함께 하기로 약속했다. 사업자금을 준비하기 위해 희승은 부도 직전의 회사에서 치밀하게 조성한 비자금을 애니카의 통장으로 빼돌리기 시작했다. 애니카는 자신의 돈이 통장에 입금되자마자 희승의 아내 명의로 세부에서 개설된 계좌로 이체했다.

1998년 3월, 5억원의 자금이 확보되자 희승은 세부로 들어왔고, 그의 회사로 만기가 되어 돌아온 어음들은 줄줄이 부도가 났다. 승호와 애니카에게는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4만 페소를 주었다. 그 무렵, 어학연수를 마친 아들은 호주에서 살고 있는 여동생 집으로 보내 그곳에서 학업을 계속하도록 조치했다.

어학원을 퇴사한 승호는 희승과 함께 돌아다니다가, 세부시의 남쪽에서 1헥타르 규모의 비어있는 정부 땅을 발견했다. 그들은 곧바로 코필개발회사라는 부동산 회사를 설립한 후 정부와 협상하여 50년 임대계약을 체결했다. 회사의 주주들과 지분은 승호 40%, 애니카와 그녀의 가족들 60%로 구성했다, 하지만 회사설립이나 사무실 유지비용 같은 금전전인 부분은 모두 희승이 부담했다.

3개월이 지난 어느 날, 승호는 한국인들만을 위한 별장마을이라는 멋들어진 팸플릿과 청사진을 들고 입주자들을 모집하기 위해 한국으로 갔다. 회사의 홈페이지에는 세부 시장이 공문서 형식으로 보내온 격려사를 게재했기 때문에 홍보가 아주 쉬웠다. 희승이 준 리스트를 가지고 각 지역의 부자들을 만나러 다녔다. 그들은 거의 하나같이 돈은 많지만 지식이 적고 허세를 부리는 졸부들처럼 보였다. 필리핀에서는 외국인이 토지를 소유할 수 없기 때문에 50채의 별장을 회사 소유로 지어 한 채당 5천만 원에 50년 기간 동안 한국식 전세 개념으로 분양한다고 설명했다. 분양은 한 달 만에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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