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실화소설 ‘더미’ 20] 그녀의 허영을 채워주기엔 턱없이 모자랐다
차돌에 바람 들면 석돌보다 못하다
[아시아엔=문종고 <필리핀 바로알기> 저자] 나이 40이 넘어서자 고승대는 사장이 되고 싶어 안달이 났다. 그가 눈여겨 보았던 재벌들이나 갑부들은 모두 다 사장 또는 회장이었고, 그들은 탁월한 두뇌의 소유자들이라고 믿었다. 그렇기 때문에 범부들은 감히 상상도 못하는 탈법과 탈세와 온갖 불가사의한 수완을 부릴 수 있다. 그러한 고도의 기이한 수완을 가난뱅이들과 범부들은 존경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머리 나쁜 인간들 밑에서 일하는 게 너무나 자존심 상했다. 아이큐 낮은 인간들이 그보다 높은 직책에 있다거나 그보다 부자인 것에 불같은 질투심이 일었다. 사장이 되어 미련한 인간들을 노예 부리듯이 맘껏 부려먹고 싶었다. 인간이 품는 감정 중에서 자존심과 질투심만큼 쉽게 제어하기 힘든 것도 아마 없을 것이다. 그의 어이없는 자존심과 질투심은 나이가 들어 갈수록 더욱 심해졌다.
2006년 가을, 승대가 SNC의 인천지사에서 부산본사로 발령이 났다. 부산으로 이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대학 선배 한 사람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퇴근길에 대학 동기생을 만났는데, 그와 함께 길을 가던 윤원규 사장을 소개 받은 것이다. 그 사람의 키는 평균적인 남자들보다 조금 작아 왜소해 보였고 특별히 잘 생긴 구석이라고는 한 군데도 없었다. 그렇다고 옷을 폼 나게 잘 입고 다니는 것도 아니었다. 양복과 구두, 넥타이와 벨트, 시계와 지갑 등 신사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소품들이 다 중저가였다.
승대는 많은 사람들의 눈에 띄는 장소에서는 값비싼 옷차림을 하고 다녔다. 성공한 사람들은 첫인상이 중요하고, 뭐 좀 있어 보이기 위해서는 좋은 치장과 보조도구가 필요하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 보니 그의 눈에는 원규의 중저가 행색이 인품까지도 중저가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또 말수가 적은 편은 아니었지만 어눌하게 말해서 첫 눈에 시시했고, 동기생 녀석이 ‘사장님’이라며 호칭하였지만 타고 다니는 자가용도 소형이어서 사장으로서의 품위나 체통 같은 것이 눈에 띄지 않았다. 한 마디로 말해서 원규에 대한 첫인상은 촌스럽고 좀스럽고 쩨쩨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동기생이 슬쩍 흘린 말에 그의 귀가 대번에 솔깃해졌다. 원규는 사업 수완이 좋을 뿐만 아니라, 권위를 따지지 않는 지인들과 대학 동문들에게는 무조건 잘 대해 준다고 했다. 타지에서 원규를 찾아오는 지인들 누구라도 그의 널찍한 집에서 공짜로 먹여 주고 재워 준다고 했다. 특히 후배들을 좋아한다고 했다.
원규는 부산 앞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영도의 전원주택에서 살고 있었다. 넓은 마당의 한 쪽에 방 3개짜리 손님용 거주구역을 따로 마련하고는 거의 매주 놀러오는 친구들과 대학 동문들을 반갑게 맞아 챙겨주었다. 손님들은 원규와 안주인에게 폐가 되지 않도록 음식 준비와 설거지만큼은 자진해서 했다. 청소와 정원의 나무손질, 잔디 깎기도 도왔다. 그래서인지 원규의 아내 역시 그러한 손님치레에 아무런 불평이나 불만이 없는 듯 했다.
무역업을 하는 원규의 사무실은 남포동에 있었고 승대가 근무하는 사무실도 그곳에서 이웃인 중앙동에 있었기 때문에 승대는 원규의 사무실에 뻔질나게 드나들면서 얼굴을 익히고 공짜 점심을 얻어먹었다. 그리고 주말에는 식구들을 데리고 원규의 집에 가서 무전취식을 했다. 과연 듣던 바대로 원규와 원규의 아내는 언제나 승대 식구들의 방문을 반기며 좋아했다.
승대가 원규의 두뇌가 어떤지 알아보기 위해 대화를 유도해 보았다. 그랬더니 매사에 제법 아는 것은 많지만 두뇌 회전이 상당히 느리다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특히 숫자에 대한 감각이 둔했다. 승대는 이렇듯 상대를 순식간에 파악하는 것도 그가 천재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원규에게 아이큐를 넌지시 물어보았다. 초등학교 다닐 때 딱 한 번 테스트 받았던 것 같아 잘 기억나지 않는다면서 120은 넘지 않았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럼 그렇지! 예상했던 대로 멍청이구먼! 그는 속으로 원규를 비웃었다. 그런데 이 아이큐 낮은 선배는 운이 얼마나 좋았던지 무역회사를 꽤 키워가며 스무 명이 넘는 직원들을 호령하고 있었다. 암상궂은 그의 가슴속에 분노와 질투와 음흉이 도사렸다.
‘세상 참으로 불공평하다! 어찌하여 나보다 머리 나쁜 자가 나보다 잘 살고 있는 것인가! 이 녀석을 이용해서 부자가 되어 볼까?’
오래지 않아 그는 원규의 치명적인 약점을 발견했다. 한 번 누군가를 믿고 좋아하게 되면 어지간해서는 의심하지 않았다. 마음속에 이미 굳힌 생각이나 가치관은 타협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 아집이 있었고, 떠도는 소문보다는 자신의 판단을 지나치게 우선시하는 교만함이 있었다. 그래서 승대는 자신을 겪어보아 잘 아는 사람들이 원규에게 얘기하여 경계하기 전에 원규의 마음속에 얼른 들어가기로 했다. 그는 속마음을 철저히 숨긴 채 원규가 관심 있어 하는 분야와 시사문제에 대해 무조건 원규의 의견을 지지했다. 원규는 솔직담백한 성격이어서 마음속에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 상대방이 금세 알아차린다. 승대가 자주 찾아와 말벗이 되어주는 것을 진심으로 기뻐하는 마음도 수월하게 알 수 있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그는, 자기처럼 머리 좋고 열정적인 사람이 사업을 하면 크게 성공할 것이라고 원규로 하여금 서서히 믿게 만들어 갔다. 그의 계획적인 접근에 원규는 창호지에 먹물 스미듯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빠져들어 갔다.
그렇게 승대는 원규의 마음을 사로잡는데 일 년을 투자했다. 그런데 갑자기 회사에서 그를 필리핀의 마닐라로 발령을 냈다. SNC는 5년 전에 필리핀 파트너 ETRA사와 합작으로 필리핀 법인 SN-ETRA사를 설립했었다. 그 합작법인에서 필리핀의 건설프로젝트를 개발하기 위해 한국인 관리자를 파견하기로 했는데, 그 자리에 승대가 선발된 것이다.
처음에 그의 아이큐로는 마닐라로 발령이 난 것이 그에게 이득인지 손해인지 얼른 가늠하지 못했다. 현지법인의 규모가 워낙 작은데다 후진국에서 일한다는 것이 그에게 영 마뜩찮았다. 하지만 애들 영어교육을 위해 좋은 기회일 뿐만 아니라 후진국에서는 사업 아이템 찾는 것이 수월하다며 마닐라 발령을 축하해주는 친척들 말에 그의 아이큐가 흔들렸다.
며칠 후 원규를 만난 승대가 약간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윤 선배님, 마닐라로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축하하네! 마닐라에는 내 고향 친구가 오래전부터 자리를 잡고 있으니 가거든 한 번 만나 보게. 나도 그 친구한테 자네 얘기를 미리 해 둘게.”
“아, 그러세요? 선배님 친구 분은 마닐라에서 무슨 일을 하시는 데요?”
“마사지 숍을 하고 있어. 나도 일 년에 한두 번 놀러 가면 그 친구한테 신세를 지곤 해.”
“알겠습니다, 선배님!”
그는 함박미소를 지으며 말했지만 속으로는 ‘에게게! 겨우 마사지 가게? 그것도 사업이야?’ 하고 비웃었다.
2007년 12월 초부터 승대는 마닐라의 SN-ETRA 사무실에 출근하기 시작했다. 사무실의 위치는 마닐라의 중심부에 있었다. 마닐라베이, 즉 해변에서 시내 쪽으로 본다면 한복판에 로빈슨 백화점이 있고, 백화점에서 백여 미터 떨어진 곳이었다. 20층의 서향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마닐라만의 저녁노을을 매일 감상할 수 있었다.
그런데 한 달 정도 살아보니 맘에 들지 않는 구석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우선 현지 파트너 사장인 다닐로의 태도가 가장 불만이었다. 다닐로는 외국에 취업하는 필리핀 근로자를 소개하고 관리하는 업으로 큰돈을 벌었는데, 월급쟁이여서 자기를 무시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승대는 의심했다.
필리핀 직원들도 가관이었다. 시키는 일 아니면 절대로 하지 않았고, -그 말은, 시키는 일은 군말 없이 한다는 뜻이다- 두 가지 이상의 일을 동시에 시키면 허둥대며 일의 순서를 까먹곤 하는, 정말이지 멍청한 족속들이었다. 왜 이따위 머리 나쁜 사람들을 해고하지 않는 것인지, 그가 다닐로에게 몇 번 따져 물었지만 다닐로는 피식 웃기만 하고 대꾸도 안 해줘서 그는 자신을 무시하는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고, 그때부터 다닐로에게 악감정을 품기 시작했다.
필리핀 사람들의 영어발음도 그의 귀에 거슬렸다. 자기들끼리 얘기할 때에는 주로 자기들 말인 따갈로그어로 했는데, 그 발음이 꼭 자갈밭에서 돌 구르는 소리처럼 들렸다. 그러다보니 그들이 영어를 할 때에도 그런 발음을 해 대었다. 그는 애들 영어발음이 망가질까 염려했다.
하지만 그의 아내는 필리핀 생활에 대만족이었다. 가정부가 있으니 음식 준비하는 것만 빼고 설거지와 청소를 죄다 가정부에게 맡길 수 있어서 너무 편했다. 시장에 갈 때나 애들 학교에 갈 때에도 운전수가 척척 미리 대기하였다가 태워주니 이런 호사는 그 전에 상상해 보지도 못했던 것이었다. 사람을 부리는 것이 이렇게 재미있는 것인지 이제야 제대로 깨달았다. 친척들이나 지인들의 경조사 챙길 일도 없고, 제사니 명절이니 뭐니 신경 쓸 일도 없어서 좋았다. 하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남편의 급여가 그녀의 허영을 만족시키기에는 턱없이 적다는 것이었다.
마닐라 사무실에서 근무한 지 6개월이 지나자 다닐로와 승대는 점차 노골적인 적대감을 내비치기 시작했다. 다닐로 입장에서는 주재원 승대가 SN-ETRA의 업무에 전혀 도움이 안 되었다.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개발하기 위해 그를 파견하는 것이라고 한국의 파트너가 설명했는데, 승대는 그때까지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런데도 사무실에서는 매사에 불만이었다. 필리핀 직원들과의 사이도 점점 벌어지더니 이제는 모두가 그와 얘기하는 것을 꺼려하여 외톨이가 되어 있었다. 그의 급여와 수당을 한국 본사에서 부담하니까 참고 내버려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