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실화소설 ‘더미’ 19] IQ 156 고승대의 ‘종북 몰이’
[아시아엔=문종구 <필리핀 바로알기> 저자] 부산에 스스로 천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고승대라는 40대 사내가 살고 있었다. 그의 믿음은 제주도의 어느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승대는 제주도에서 태어났고 어린 시절 그곳에서 자랐다.) 전교생을 대상으로 치른 적이 있었던 아이큐 테스트에서 156이라는 경이로운 점수를 받았던 것에 기인했다.
그때 그는 선생님들의 비상한 관심을 받았고, 많은 학생들로부터 질투 가득한 눈길을 받았다. 당시의 아이큐 테스트가 어느 정도 신뢰성이 있었는지 또 아이큐가 사람의 인성이나 창의성과 어느 정도 연관이 있는지 모르지만, 아인슈타인의 아이큐가 160이었다고 알려져 왔으니…… 자랑스러움과 기쁨, 흥분으로 들뜬 그의 부모는 천재가 났다는 부추김에 우쭐해져서 이웃 사람들을 불러 모아 잔치를 벌였다.
그날의 감격과 짜릿한 쾌감을 세월이 흐른다 하여 어찌
잊을 수 있으랴! 젊음이 해마다 시들어 간다 할지라도 그의 아이큐는 죽는 날까지 결코 시들지 않을 것이리라고 승대는 믿었다. 천재라는 그 말이 강력하고 황홀한 마약처럼 그의 뇌 속에 주입되었고 차차 굳어져서 나중에는 결코 깨뜨려지지 않는 차돌이 되어 남았다. 경험이 양육되어 본성이 되어버린 예라 하겠다. 과학자들은 이러한 예를 두고 ‘평생의 행동이 어린 시절의 결정적인 경험에 의해 고착된다’고 말한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그는, 장차 높은 자리에 올라 친구들을 발아래에 두고 내려다보며 종처럼 부려먹을 것이라는 자부심과 우월감에 젖어 살았다.
머리의 크기는 보통이고 어깨는 좁으며 팔이 길고 중지가 유난히도 긴 그는, 텔레비전이나 책을 통해 소개된 성공한 모든 사람들이 자기와 같은 천재들이라고 믿었다. 천재들만이 성공유전자를 타고 났다고 믿었다. 출세와 야심만 좇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솔깃했고, 점차 명예욕과 세속적인 욕심이 많아졌다.
중학교 때부터 수원에서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고, 그때쯤에는 그가 스스로 말해주기 전에는 아무도 그의 아이큐가 156인 줄 알지 못했으며 그를 천재라고 인정해주는 사람도 없었다. 그러나 스스로 천재라고 믿어 의심치 않은 그는 아이큐 낮은 멍청한 애들과는 잘 어울리지 않으려 했다. 그러니 그의 주위에 친구가 있을 리 만무했다.
아무튼 승대는 어찌어찌하여 부산의 A대학에 특수하지 않은 성적으로 입학하여 특수하지 않은 성적으로 졸업했다. 겉멋에 유난히도 관심이 많았던 그는 제복이 좋아서 학사장교에 지원했고 장교로 군에 입대했다.
평범한 군 생활도 마치고 세월이 좀 더 흐르면서 이제 가족과 친척들은 그의 아이큐가 얼마인지 기억조차 하지 않으려 했고, 아무도 그를 천재라고 인정하지 않았다. 다시 말하면 그의 두뇌는 평범했다. 툭 까놓고 있는 그대로 말하자면, 머리가 썩 좋은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아이큐 156을 한시도 잊어먹은 적이 없었다.
승대는 천재답지 않은 군 장교 생활을 마친 후 장교 출신을 우대하는 어느 중견기업에 취직했다. 그리고 몇 년 후 회사를 옮겼다. 그리고 또 몇 년 안 가 회사를 옮겼다. 자주 회사를 옮겨 다닌 이유를 그는 사석에서 이렇게 설명하곤 했다.
“나 위에 있는 과장이 내가 자기보다 아는 게 많고 똑똑하니까 질투하는 게 아니겠어요? 나를 어찌나 힘들게 하는지 견딜 수가 있어야 말이지요……”
하지만 그가 다녔던 회사의 직원들은, 그가 부하직원들이 실수를 하면 머리가 나빠서 그렇다며 심한 모욕을 주는 반면, 상사들 앞에서는 눈치를 심하게 보는 이중적인 성격이었다고 말했다.
승대는 스스로의 천재성을 학창시절에는 입증한 적이 한 번도 없었지만 (그는 아이큐 테스트 이외의 모든 테스트를 신뢰하지 않았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입증한 바 있는 명백한 증거 두 가지를 가지고 있었다.
하나는 김영삼 정권 시절 군 복무 중에 일어난 일이었다. 제주도에서 상황실 장교로 야간 당직 중인 어느 날에 해양 경찰이 수상한 어선을 나포했고 그 배 안에서 수백만원 상당의 거액을 소지한 수상한 사람을 잡아서 조사 중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는 수상한 사람이 간첩이며, 그 돈은 분명히 야당 정치인에게 전달될 공작금이라고 직감했다.
며칠 후 그는 그 사건에 대한 소문을 들었다. 그때의 수상한 사람은 스스로 이북에서 내려온 간첩이며 유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 김대중에게 공작금을 전달하려는 목적으로 남파된 것이라고 자백했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천재성이 빛나는 직감이란 말인가! 천재는 직감으로 즉시 아는데 범부들은 며칠이 걸려 자백을 받아내고서야 알게 된다는 차이를 그는 실감했다.
언젠가 아이큐가 120 정도밖에 안 되는 직장 동료 박씨가 감히 아이큐 156에게 도전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나? 김대중씨가 간첩과 연루되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 없고 그 후 그는 대통령에 당선되었잖아.”
그는 범부 박씨의 미련함에 치를 떨면서 오만하고 빈정거리는 듯한 말투로 대답했다.
“김영삼 정부가 멍청해서 간첩과의 연루를 입증하지 못했거나, 김대중이가 영리해서 빠져나갈 구멍을 잘 만들었겠지.”
박씨가 오히려 비웃으며 되물었다.
“그 수상한 사람이 진짜 간첩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진짜 간첩이었다 해도 간첩의 자백을 곧이곧대로 믿는다는 것은 좀 그렇지 않나?”
이러니 그는 아이큐 낮은 인간들하고 말을 섞고 싶지가 않다. 간첩의 자백을 믿지 않고 간첩의 지원으로 당선된 김씨를 두둔하고 있는 박씨 저 놈도 혹시…… 간첩 아닐까? 신고해 버릴까?
그는 말이 통하지 않아 고통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대며 목에 핏대를 올렸다.
“그 사람은 간첩이 틀림없어! 이미 잡혀서 실토한 간첩의 말을 안 믿으면 도대체 누구 말을 믿나? 그러니 김대중이도 북한과 내통한 고정간첩이 분명해!”
박씨는 흐리멍덩하고 어처구니없는 그의 논리를 상대하는 게 피곤해지기 시작했다. 그들 주위에 있는 테이블에서 남녀 손님들이 그들의 대화를 엿들으며 곁눈질로 노려보고 있다는 것을 박씨가 눈치 채고는 수치심을 느꼈다. 승대의 말을 그냥 무시해 버리고 싶었지만 그런 멍청한 말에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으면 남들이 자신을 그와 똑같은 수준의 인간이라고 평가해 버릴까봐 걱정이 되어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더 했다.
“그렇다면, 고승대! 북한에서 남한과 미국 사이를 이간질할 목적으로 간첩을 보냈고 그 간첩이 일부러 붙잡혔다고 하자. 그리고 그가 남한에 있는 미군기지의 핵무기로 청와대와 서울을 초토화하기로 북한과 미국이 합의했다고 자백하면, 그 간첩의 말만 믿고 우리 군은 미군기지 안에 있는 핵무기를 탈취하거나 미군기지를 선제공격해야 하나?”
승대는 정부에서 종복세력이라고 발표하는 모든 단체와 인물들을 빨갱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말을 믿지 않는 박씨를 포함한 모든 인간들을 종북이라고 단정했다.
정말 박씨도 간첩일까? 진짜 신고해 버려? 에이…… 저 사람이 끌려 들어가면 병신이 되어서 나올 것인데…… 그러면 박씨의 처자식만 불쌍하니……
그는 박씨를 그냥 봐 주기로 했다.
그래서 승대가 신고하지 않아 고문의 처절한 고통에서 벗어나고 그들의 처자식이 불쌍한 지경에 처하지 않은 많은 가련한 인간들이 그의 주변에 널려 있게 되었다. 스스로의 관대함에 도취한 그는 너무나 인간적인 천재라고 자평했다.
또 하나는 직장에서 일할 때, 하자가 없을 것 같은 물건인데 통관이 늦다며 과장에게 심한 잔소리를 듣고 난 후 그는 담당 세관원이 분명히 통관을 미끼로 뇌물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라고 직감했다. 즉시 청와대 민원실에 인터넷으로 접속하여 진정서를 접수시켰다.
한두 달이 지난 후 담당 세관원이 바뀌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보직 이동을 한 것인지 해고를 당한 것인지 굳이 확인해 볼 필요는 없었다. 자신의 투서 때문에 해고당한 것이 분명하다고 믿었던 그는 그 후 세관원 한 명이 뇌물을 요구하다 자기에게 걸려서 옷을 벗겨 버렸다는 무용담을 자랑스레 떠벌리곤 했다.
천재의 직감과 직관이 이토록 정확하고 빠른 것임을 범부들이 몰라주는 게 못내 아쉬웠지만 어쩌면 그들의 낮은 아이큐 수준으로는 당연한 것이리라 치부했다. 인정에 약한 천재인 것은 맞지만, 천재를 욕보이려 하는 자는 인정사정 보지 않고 혼을 쪽 빼주는 성격이라고 자평했다. 그것은 승대와 같은 아이큐 천재만이 가질 수 있는 이상한 자존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