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실화소설 ‘더미’ 23] “더미주주가 필요하고 배당도 정합시다”

[아시아엔=문종구 <필리핀 바로알기> 저자] 회사의 결정을 통보받은 승대는 이문식을 만나 뭔가를 오랜 시간 숙의했다. 그런 다음 주말을 이용하여 부산으로 들어와 원규를 만났다.

“윤 선배님, 이문식 사장님의 자동차정비소를 인수하여 사업을 해보고 싶으니 도와주십시오.”

“자동차정비소를? OSC 말인가?”

“네, 맞습니다. 정비 분야는 현재 있는 직원들을 그대로 쓰면 되고 제가 주력할 분야는 중고차량 수입과 판매니까 제가 지금 하고 있는 무역업의 일부에 불과합니다.”

“이문식 사장하고는 얘기가 되어 있어?”

“네. 그분은 이제 연세도 많은데다가 혼자서 모든 일을 다 처리하기 힘들다고 하십니다. 멍청한 필리핀 직원들만 데리고 사업하는 데에 한계가 있지 않습니까. 정비소의 지분 70%를 양도하고 경영에서는 손을 떼겠다고 했습니다.”

“내가 어떻게 도와주기를 원하나?”

“선배님도 이 사장의 지분을 일부 인수하셔서 동업에 참여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필리핀에서 사업을 하려면 더미주주가 반드시 필요하니 선배님의 친구 분인 박 사장님도 함께 동업에 참여하도록 설득해 주십시오. 그래야 선배님의 투자 지분을 박 사장님의 사모님 명의로 안심하고 맡길 수 있을 테니까요.”

“나야 자네를 믿으니까 자네가 원한다면 당연히 동업에 참여하겠지만, 박 사장의 경우는 다르니까 그 사람에게 물어본 후에 알려주겠네.”

“감사합니다, 선배님! 선배님이 저를 이토록 믿어주시니 너무나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 은혜 꼭 갚겠습니다!”

승대는 원규를 만나고 나서 이 상무를 찾아갔다. 그가 이 상무의 격려를 받고 있는 시각에 원규는 인채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뭐라고? OSC의 지분을 인수해서 같이 사업을 하자고? 그리고 고 차장에게 경영을 맡기고 싶다고?”

“고 차장이 워낙 사업을 해 보고 싶어 해서 도와주고 싶거든.”

“난 별로 내키지 않아. 예전에 정비소에 투자했다가 한국 사기꾼한테 걸려서 2년 간 엄청난 고생을 했잖아. 네 후배 고 차장 성격을 잘 모르고 있기도 하고……”

“네가 사기꾼한테 당했다는 얘기는 예전에도 들었지 않나. 이번에는 달라. 우리 A대학 동문들끼리는 절대로 사기를 칠 수 없어. 동문들 사이에 알려져 남은 인생 종칠 것을 각오하지 않는다면 고 차장이 내가 참여하는 동업에 사기를 칠 수 없으니 그 점은 걱정 마. 그리고 고 차장 말로는 필리핀에서 사업하려면 반드시 현지인 명의가 필요하다고 하니, 내가 투자하는 부분을 네 와이프 명의로 해 주었으면 해서, 이왕이면 너도 참여해라.”

원규의 전화를 받은 후 인채는 아내와 상의했다. 마리셀은 별로 탐탁스럽지 않은 듯 뜨악한 낯빛으로 남편을 흘겨보았다.

“10여 년 전에 한국 사람과 동업하다 곤욕을 치렀는데 또 한국 사람들하고 동업을 해요?”

“지난번에는 내가 전혀 모르는 사람한테 당했지만, 이번에는 내 고향 친구 미스터 윤과 그 친구의 대학 동문들이 함께 동업에 참여한다고 하니 염려할 필요는 없겠소. 한국 사람들을 다시 한 번 믿어 주시오!”

인채는 아내의 어깨를 꼭 껴안아 주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 후 2년이 지난 뒤에야 그날의 대화가 매우 중요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잠시 후 승대는 박인채 사장이 동업에 동의했으니 마닐라에 돌아가거든 박 사장과 최종 협의를 해 보라는 원규의 전화를 받았다. 모든 것이 자신의 뜻대로 척척 진행되어 승대의 가슴은 한껏 부풀어 올랐다.

마닐라로 돌아온 승대는 이문식 사장, 박인채 사장과 거의 매일 만나 동업회의를 했다. 원규의 투자는 인채에게 일임해 놓았고, 세 사람이 결정한 대로 따르기로 했다. 12월 초까지 그들은 지분 구조를 집중적으로 협의했다. 처음에 인채는 원규와 함께 두 사람의 지분이 50% 이상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원규는 승대가 더 많은 지분을 갖도록 양보하자고 설득했다. 나이든 사람은 젊은이에게 더 많은 기회를 양보하고 날개를 달아주어야 한다는 것이 원규의 지론이었다. 인채는 아무래도 돌팔이 의사한테 수술을 맡기는 불안한 기분이 들었지만 친구의 믿음을 존중하기로 했다. 그래서 네 사람의 동업자들이 합의한 지분구조는 이문식 30%, 고승대 30%, 박인채 20%, 윤원규 20%가 되었다.

그 다음에 OSC의 주식양도가격을 어떻게 정할 것인지를 협의했다. 인채는 회사의 실사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인채와 원규의 위임을 받은 승대가 회사의 회계를 실사하기로 했다. 그리고 각자의 지분을 누구의 명의로 할 것인지 협의했다. 왜냐하면 필리핀의 법에 따르면 40% 이하만 외국인 지분을 허용하고 60% 이상의 지분은 필리핀인의 명의가 되어야 했다. 그리고 주식회사의 주주는 최소한 5명 이상이어야 했다. 이것 역시 최종적으로 다음과 같이 합의가 되었다. 이문식의 지분은 그의 오랜 여직원 헬렌과 그녀의 대부代父인 파블로의 명의로, 고승대는 그의 지분 중 25%는 자신의 명의로, 나머지 5%는 헬렌의 명의로, 원규와 인채의 지분은 마리셀과 마리셀의 오빠 마리오의 명의로 하기로 했다. 이렇게 하여 더미가 포함된 등기서류상 지분구조는 고승대 25%, 마리셀 38%, 마리오 2%, 파블로 10%, 헬렌 25%가 되었다.

12월 15일, 세 사람(이문식, 박인채, 고승대)은 OSC 사무실에 모여 그동안 협의해 왔던 동업계약에 대한 최종합의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투자자들의 협의기구를 통한 회사의 경영을 기대했던 인채는, 우선 한국인 경영자의 급여와 비용에 대해 상한선과 하한선을 정하자고 제안했다. 경영자는 승대가 맡기로 합의가 된 상태였다. 자신의 문제이어서인지 승대가 의견을 제시했다.

“제가 SNC의 주재원으로서 받고 있는 급여와 복지비용이 연 1억 5천만원 정도입니다. 그러므로 OSC에서도 그 정도 수준은 받아야 합니다.”

인채가 승대의 말에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승대와 이문식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엥? 연 1억5천만원 수준을 원한다고? 내가 알기로는 OSC가 아직 그 업계에서 아주 규모가 작다고 하던데…… 이 사장님, 현재 이 사장님이 OSC에서 받아가는 연간 급여와 비용이 어느 정도이지요? 그리고 회사의 연간 총 매출이 얼마입니까?”

인채의 질문에 이문식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내가 회사로부터 받는 임금과 비용은 년 3천만원 수준이고요, 회사의 올해 총 매출은 계산해 봐야 알겠지만 3억원 정도에 순이익은 500만원이 채 안될 것입니다. 지금은 회사의 매출과 순이익이 너무 초라합니다.”

“그렇다면, 현재의 상황에서 고 차장이 경영을 하더라도 매출과 수익이 지금보다 몇 배로 증가하지 않는 한, 고 차장 혼자 연간 1억원 이상을 가져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닙니까?”

“현재로서는 그렇지요.”

이문식이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승대의 제안이 터무니없다는 인채의 의견에 동의하는 셈이었다. 인채가 새로운 안을 내놓았다.

“고 차장도 처음에는 이 사장님이 지금까지 받아왔던 정도의 급여와 비용을 받고, 회사의 매출과 수익이 올라가면 거기에 따라 인상하면 좋을 것 같아.”

하지만 두 사람의 말을 기분 나쁘다는 듯이 팔짱을 끼고 듣고 있던 승대가 삐딱한 어투로 말했다.

“저는 박 사장님의 제안을 받을 수 없으니 수정된 안을 드리겠습니다. 저에게 무한책임 경영권을 주십시오. 그러면 저는 흑자로 전환될 때까지 급여와 수당을 받지 않을 것이며, 배당도 여러분들에게 우선적으로 해 드리겠습니다.”

“흑자가 확인될 때까지 급여와 수당을 받지 않고 배당도 받지 않겠다고?”

“네! 저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OSC의 경영을 완벽하게 해서 빠른 시일 내에 여러분들이 기대하는 만큼의 매출과 순이익을 달성하는 것입니다. 기껏 몇 천만 원 받자고 사업을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 정도 푼돈이라면 차라리 당당하게 한 푼도 받지 않고 경영하겠습니다.”

“그런데 배당은 왜 안 받겠다는 것인가?”

“배당을 안 받겠다는 것이 아니라, 제가 단독으로 무한책임 경영을 하는 동안에만 안 받겠다는 것입니다. 저에게 단독경영을 위임해 주신다면 그 대가로 여러분에게 순이익을 모두 드리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목표로 하는 수준까지 회사의 매출과 순이익이 달성되면 제가 만족할 만한 수준의 급여와 수당을 정당하게 요구할 것입니다. 그리고 만일 단독경영을 포기하면 당연히 저도 배당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인채와 승대의 대화를 듣고 있던 이문식이 끼어들었다.

“비록 고 차장이 흑자라는 것을 확인할 때까지 받지 않겠다고 했지만, 나는 회사가 흑자상태인 것을 잘 알고 있고, 실사가 언제 끝날지 불투명한 상태에서 경영자가 아무런 급여도 없이 일한다는 조항을 계약서에 넣는다는 것은 말도 안 되기 때문에 이 사안은 시한을 정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지난번 이야기할 때 고 차장이 SNC에 사표를 내고 난 후 마닐라로 돌아올 예정인 내년 3월 중순으로 했고 그에 따라 나도 계획을 잡고 있으므로, 이 부분은 최장 내년 3월까지로 협의하여 결정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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