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필리핀 두테르테 대통령은 왜 기자 칠순잔치에 참석했나?
[아시아엔=문종구 <아시아엔> 필리핀 칼럼니스트, <필리핀 바로알기> <더미> 저자] 26일 밤 9시45분 필리핀 마닐라시티 상그릴라 호텔에 두테르테 대통령이 들어섰다. 필리핀의 대표적인 언론인 라몬 툴포의 70회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서였다. 참석자들 눈길이 두테르테에게 쏠렸다. 대통령은 보통 필리핀 서민들이 그렇듯 차분한 미소를 띠고 조용한 걸음걸이로 들어왔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1시간30분 가량 이곳에 머물며 하객들과 일일이 인사와 대화를 나누다 자리를 떴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무대 앞에 나와 별도의 인사말은 하지 않았지만 시종 겸손하고 온화한 말과 표정이었다.
툴포 기자가 도대체 어떤 인물이기에 현직 대통령, 그것도 5달 전 취임해 ‘마약과의 전쟁’과 ‘반미 발언’ 등으로 전세계를 놀라게 만들고 있는 두테르테가 그의 생일에 직접 참석했을까?
툴포 기자는 1946년 11월22일 다바오에서 태어났다. 생일잔치는 애초 툴포 생일인 지난 22일로 예정돼 있었으나 두테르테 대통령의 선약이 있다며 변경해달라고 요청해 나흘 연기돼 이날 열렸다.
독립투사 출신 부친과 일본계 모친 사이에서 4남1녀 가운데 장남으로 출생했다. 부친은 미국과 일본의 필리핀 점령 기간 게릴라 독립투쟁을 했으며 독립 후 군인으로 살다 생을 마감했다.
툴포는 집안이 가난해 선원이 되려고 2류급에 속하는 해양대학(PMI, 지금은 폐교된 상태)에 다니다 중퇴한 후 언론사에 입사했다.
그는 현재 필리핀 유력지인 <인콰이어러>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며 라디오 고정채널 ‘DWIZ 882 AM’을 운영 겸 진행하고 있다. 그는 20년 이상 가난하고 힘없는 서민들을 위한 ‘신문고’ 역할을 하고 있다. 그의 사무실엔 서민들이 줄지어 기다리며 제보하거나 억울한 사정을 호소하고 있다.
툴포 기자는 부자들이나 공직자, 특히 경찰의 비리, 서민 학대 등에 대한 제보를 받아 취재한 후 이같은 사실을 실명으로 라디오와 신문, 텔레비전에서 보도한다. 그는 틀히 알린 등 후배 기자 4~5명과 팀을 이뤄 전국적으로 서민들의 억울한 실태를 수집하고 공직자 비리근절에 앞장서고 있다.
그는 동생 2명과 함께 ‘툴포 브라더스’라는 채녈5 텔레비전 고정 코너도 운영해 오고 있으며, 현재는 두 동생이 계속 진행하고 있다.
툴포는 2년 전 어느 날 “필리핀을 개혁시킬 사람은 두테르테 외에 없다”며 당시 다바오 시장이던 두테르테를 공개적으로 소개하고 지지의사를 표했다. 두테르테는 “나는 대통령직에 미흡할 뿐더러 출마의사가 없으니 누구든 내 이름을 거론하지 말라”며 “만일 나를 부추기는 사람은 총으로 쏘아 죽이겠다”고 공개적으로 경고했다. 며칠 뒤 툴포는 칼럼을 통해 “국가를 위한 봉사와 의무를 회피하지 말라”며 두테르테에게 밝히고 “나를 쏴라”고 했다.
26일 밤 툴포 기자의 칠순 파티에는 아로요, 에스트라다 등 전직 대통령과 툴포와 뜻을 같이 하는 정치인(상하원 의원, 장관, 시장, 도지사 등) 20여명과 연예인, 언론인, 그리고 툴포 가족 등 200여명이 참석했다. 하지만 이름을 알만한 필리핀 갑부들은 한 사람도 초대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툴포 기자는 이날 인사말을 통해 “서민들과 약자들을 위해 뛰어다니는 나의 활동을 다바오 시장 시절부터 대통령이 된 지금까지?지원하고 후원하며 격려해주는 두테르테 대통령에게 깊이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툴포는 “나는 앞으로도 생명을 당할 때까지 나의 조국 필리핀 국민들이 안전하고 평화롭게 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며 “우리들의 행복을 위해 기자로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툴포는 두테르테의 대통령 당선 및 취임 이후에도 종전과 다름없이 칼럼을 쓰고 소외된 이들을 찾아 전국을 다니며 취재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한편 필리핀에서는 25세 실버, 50세 골드, 75세 다이아몬드 생일잔치를 성대하게 준비하며 70세 생일은 이들보다 다소 낮은 수준으로 마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