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톨릭 국교’ 필리핀 기자의 한국 기독교회 ‘특별한 체험’

알린 기자 “베이직교회 예배서 성령이 함께 하셨어요”

[아시아엔=알린 페레 필리핀 <온타깃미디어컨셉> 기자] 필리핀에서 기자이면서 억울한 사람들을 돕는 엔지오 ‘Isumbong Mo Kay Tulpo’(툴포에게 물어봐)에서 활동하는 나는, 오늘은 한국에서의 ‘특별했던 경험’을 소개하려 한다.

나는 2013년 9월 문화체육관광부 아시아문화중심도시추진단이 주최하고 아시아기자협회·아시아엔·전남일보가 공동주관한 ‘아시아문화언론인포럼’ 발표를 위해 한국에 처음 온 이후 5번 한국을 방문했다.

지난 3월 11일 일요일 오후 나는 그동안 못 느꼈던 정말로 특별하고, 아니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무척 은혜롭고 잊지 못할 체험을 했다.

내가 한국의 기독교 교회 예배에 난생 처음 참석한 것이다. 국민 대다수가 카톨릭 신자인 필리핀 국민인 내게 주일 미사는 아주 일반적인 전통이다. 우리 가족은 매주 성당 미사에 참석하는 게 큰 기쁨이자 책임이기도 하다.

지난 3월 한국기자협회 주최 세계기자포럼에 이은 아시아기자협회(아자) 초청 ‘2018 아자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나는 4일 오전 서울에 도착했다. 일요일이던 이날 호텔 근처에서 성당을 발견하지 못해 나는 미사를 드릴 수 없었다. 나는 늘 스스로에게 “언제 어디서나 조용히 기도할 수 있고, 하나님은 그런 나와 함께 하신다”고 말하곤 한다.

도착 이튿날인 3월 5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의 세계기자포럼 개막식에 이어 수원~안동~대구~부산~제주~광명~인천 등 한국의 주요도시를 순방하면서 1주일이 금세 지나갔다. 날짜와 요일도 잊고 지나고 있었다.

아자 회원인 각국 동료기자들과 길거리를 이동하면서 지붕이나 탑 꼭대기에 십자가 형상이 있으면 그곳이 교회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3월 11일, 두 번째 일요일이었다. 나는 그날만은 미사를 드려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평소 천식을 앓는데다 그 2~3일 전 눈까지 내린 꽃샘추위로 감기 몸살이 나를 찾아왔다. 나는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서울로 오기 전 나는 아자 사무국에 “몸이 너무 아파 도저히 못 견디겠다. 일요일 아침 출국했으면 좋겠다”고 투정 아닌 투정을 다 부렸다. 몸이 아파서 생긴 스트레스에다 성당미사를 또 빼먹게 될 것같은 불안감이 나를 힘들게 했다.

물론 조기 귀국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런데 뜻밖의 희소식이 들려왔다.

일요일 아침 아자 이상기 창립회장이 “오늘 오후 5시 교회에서 채플을 드리려하는 괜찮겠느냐”고 해외에서 온 아자 회원 일행들에게 물었다. 아마도 우리 가운데 절반 이상이 이슬람이며, 싱가포르의 이반 림 한 사람과 나 정도만이 기독교나 카톨릭 신자인 것을 알기 때문에 그렇게 얘기했을 것이다. 이상기 창립회장은 “작년, 재작년엔 템플스테이를 했으니 이번에는 교회에서 채플을 함께 하는 것도 좋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는 “목사님이 우리처럼 기자출신이며, 엠비시방송에서 앵커를 한 후 50살 넘어 신학공부를 하고 뒤늦게 목사가 된 분”이라고 소개했다.

일행들은 모두 찬성이었다. 우리는 그것을 ‘크게 환영할 만한 변화’라고 생각했다. 말레이의 노릴라, 베트남의 칸 번, 인도네시아 마난처럼 동남아는 물론 파키스탄, 캄보디아, 키르기스스탄, 인도, 이란, 이집트, 시리아, 독일 등에서 온 아자 멤버들은 난생 처음 프로테스탄트 처치에서는 어떻게 예배를 드리는지 궁금해 했다. 아마 일정이 10일 가까이 되면서 피로가 쌓여 정서적·감정적으로도 휴식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는 듯도 했다.

물론 나는 너무나 너무나 정말로 정말로 기뻤다. “3월 둘째 일요일 오후에, 우리가 정말로 교회를 방문하다니···!” 안도의 한숨과 함께 내 입에서는 탄성이 터져나왔다. 만일 그날도 미사에 참석 못하게 될 경우 나 홀로라도 어떻게든 성당을 찾으려고 단단히 맘을 먹고 있었던 터였다.

오후 5시, 우리는 강남구 논현동에 있는 건물의 지하로 내려갔다. 건물 외부에는 십자가도, 교회 이름을 쓴 간판도 없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아주 깨끗이 정돈된 예배실이 보였다. 내부에도 종교적인 이미지나 그림 같은 것이 전혀 없었다. 무대 위에 놓인 작은 테이블에 십자가가 안 보였다면 여기가 예배장소인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이곳이 바로 우리가 그날 예배에 참석한, 아니 예배를 드린 ‘베이직 커뮤니티 처치’(베이직교회)였다.

아시아기자협회 동료들과 예배를 드리고 있는 모습. 가운데 줄 보라색 자켓이 필자(사진 김민수)

나는 앞에서 두 번째 자리에 앉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300명은 더 될 것 같았다. 예배시작을 기다리는 동안 사람들은 명상을 하는 것 같았다. 연주 음악도, 말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냥 침묵할 뿐이었다. 나는 장소와 안에 있는 사람들을 관찰하고, 또 느끼고 있었다.

기도가 곧 시작될 것이라고 추측하는 사이, 한없는 평안함이 느껴졌다. 그때 갑자기 내 뺨에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왜 그런지 모르게 눈물이 계속 흘러내렸다.

나는 하나님께 중얼거렸다. “이렇게 멋진 선물을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잠시 후 예배가 시작되었다. 나는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서 정말 해야 할 일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참석자들은 피아노 반주에 맞춰 찬송을 불렀다. 그리고는 한 플루티스트가 멋진 연주로 우리를 매료시켰다.

잠시 후 목사님(조정민)이 무대 위로 올라와 성경 구절을 읽고 설교를 했다. 그는 우리들을 참석자들에게 소개하고 이야기를 계속해 나갔다.

통역기를 통해 들은 바로는 조정민 목사님은 언론인인 우리들로 하여금 좋은 메신저가 돼 ‘배드 뉴스’ 대신 ‘굿 뉴스’를 전하길 바란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조정민 목사님이 설교가 끝난 후 그보다 젊은 목사님(안신기)이 무대에 올라와 두분이 토크를 했다. 베이직교회에서는 이것을 ‘아름다운 동행’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매주 일요일 5시 목사님 두분이 진행한다고 했다. 참석자들이 궁금해 하는 것을 받아 안 목사님이 정리해 질문하면 조 목사님이 대답하는 형식이었다. 그날 무슨 얘기가 나왔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중간중간 웃음과 박수소리가 터져나왔던 것 같다.

1시간 조금 지났을까? 예배를 마칠 즈음, 나는 내가 성령에 의해 감동받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분명 성령이 나에게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너무 감사해 마음을 어쩔 수가 없었다.

그날 나는 주님을 찬양하고, 내가 받은 모든 축복과 사랑과 은혜와 삶의 도전에 대해 감사를 드렸다.

내가 그날 찾았던 곳은 카톨릭성당도 아니었다. 우리 가족이 평소 드리던 성당의 미사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날 베이직교회에서 느꼈던 사랑과 기쁨은 필리핀에서 내가 매주 일요일 느끼던 그것과 똑 같았다. 나는 그날 말 그대로 넘치는 축복을 받았다.

필자는 필리핀에서 매주 성당에서 예배와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사진은 2017년 1월 필자와 함께 일하는 라몬 툴포 기자(왼쪽 두번째) 70회 생일잔치 모습. 툴포 오른쪽이 두테르테 대통령, 필자는 두테르테 대통령 뒤 흰색 블라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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