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소설 ‘갤리온 무역’ 20] 중국의 비단·도자기와 멕시코 은의 물물교환
<4부> 마닐라 인트라무로스 요새 1
[아시아엔=문종구 <필리핀 바로알기> 저자] 마젤란이 필리핀을 발견하고 정복한 지도 벌써 100년 가까이 흐른 1615년 12월의 마닐라 항. 사 계절이 있는 스페인이라면 겨울이라 불러야 하는 계절이지만 일 년 열두 달 내내 무덥기만 한 필리핀은 언제나 여름이다. 그리고 항해사들이나 상인들에게 있어서는 해마다 11월부터 이듬 해 3월까지 편서풍이 불어주니 항해와 무역을 하기에 가장 적당한 계절이다.
마닐라에 있는 인트라무로스 (Intramuros : ‘벽 안에서’라는 뜻) 요새는 사방 800 미터의 면적으로 1571년에 레가스피 총독에 의해 건설되었다. 그 곳은 식민통치의 지휘소 역할 뿐만 아니라 유럽이나 멕시코에 왕래하는 화물들 중 귀중품들 (특히 금과 은)을 보관하는 창고 역할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요새 안에서 뿐만 아니라 요새 밖에서도 각 나라에서 온 상인들과 선원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그들 중에는 가끔 총독 위세를 등에 진 스페인 상인들과 쪽수와 단결로 버티는 중국 상인들이 크고 작은 마찰을 빚기도 했다.
12 년 전인 1603년에는 스페인 상인들과 중국 상인들이 시장에서 영역문제로 패싸움을 벌였는데, 요새에 주둔하고 있던 스페인 군인들이 출동하여 무려 이만 사천 명이나 되는 중국인들을 학살한 적도 있었다.
일본 상인들과 인도 상인들도 눈에 뜨였지만 극히 소수여서 마닐라 상권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는 못했다.
유럽이나 아시아 각국에서 배를 타고 온 선원들은 밤낮으로 독한 술에 취해 어기여차 노래를 불러 제켰다. 뱃사람들의 노래란 파도의 리듬과 파도를 타며 노 젓는 리듬이 세상 어느 바다에서나 비슷하기 때문이어서인지 노랫말만 다르지 흥은 엇비슷하여 서로 국적이 다르더라도 쉽사리 섞여 목이 터져라 뱃노래를 불렀다. 여기에 술집작부들까지 어울려 마닐라의 여관이나 선술집에서는 언제나 왁자지껄한 활기와 열기에 차 있었다.
인트라무로스 요새의 북쪽에는 파식 강이 흐르는데, 그 강 건너에는 백여 년 전부터 중국 상인들이 집단적으로 거주하는 디비소리아Divisoria라고 불리는 마을이 강을 따라 길게 자리하고 있었다. 디비소리아의 강변에는 중국에서 들여온 각종 비단, 도자기, 상아, 후추 등을 하역하는 10톤에서 30톤 사이의 작은 범선들이 빼곡히 접안해 있었고, 배와 부두 인근에 있는 창고 사이를 부지런히 오가며 화물을 나르고 쌓아 놓는 광경을 날마다 볼 수 있었다. 그 화물들은 멕시코에서 들여 온 은과 교환될 것이었고 500톤 이상 크기의 갤리온 선에 의해 멕시코로 실려 갈 것들이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