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종구의 필리핀바로알기] 한국과 필리핀이 가까워진 이유

두 나라가 가까워진 이유는 다음과 같다.

‘아시아의 노벨상’ 막사이사이상···장준하 장기려 박원순 오웅진 이태영 등 수상

이 상은 재임 중이던 1957년 비행기 사고로 숨진 7대 대통령 라몬 막사이사이를 기리기 위해 그해 제정된 국제적인 상이다. 미국 록펠러재단이 제공한 50만달러를 기금으로 하여 설립된 재단은 ‘아시아의 노벨상’으로 불리며 해마다 아시아 국가들 중 정부 봉사, 공공 봉사, 국제협조 증진, 지역사회 지도, 언론문화 등 6개 부문에서 수상자를 뽑아 1만달러의 상금과 메달을 수여하고 있다. 수상자 중에서 한국인으로는 장준하(1962년) 김활란(1963년) 김용기(1966년) 이태영(1975년) 윤석중(1978년), 장기려(1979년) 엄대섭(1980년) 강정렬(1981년) 제정구(1986년) 김임순(1989년) 오웅진 신부(1996년), 법륜 스님(2002년) 시민운동가 윤혜란(2005년) 박원순(2006년) 김선태 목사(2007년)가 있다.

한국전 참전···미국, 영국 이어 세번째로 전투병 파견

유엔이 한국에 대해 군사원조를 결의하자, 1950년 9월 19일 1367명으로 구성된 필리핀 전투단이 부산에 상륙함으로써 미국, 영국에 이어 3번째 지상군 참전국이 되었다. 총 7420명이 참전해 112명이 전사하고 229명이 부상당했다. 2012년 마닐라 시내 남쪽 Taguig 지역에 한국정부가 12억원의 건설비 전액을 지원하여 한국전 참전기념관(3층 건물)이 세워졌다.

장충체육관

1963년 준공된 8000명 수용 규모의 한국최초 실내경기장. 필리핀 기술과 자금지원으로 세워졌다는 설과, 건축디자인은 김정수씨, 구조설계는 최종완씨가 맡았다는 설도 있으나, 한국전 이후 50년대 말부터 60년대 지어진 공공건축물들이 미국의 기술과 자금지원으로 세워졌음을 고려할 때, 당시 미국의 영향 아래 있던 필리핀 기술자들이 장충체육관 건설에 참여했을 가능성도 많다.

필리핀 국민가수 아낙

페르디난드 아길라가 불러 한국에서도 1980년 크게 히트 친 명곡. Metro Pop Song Festival에서 결선에 올랐던 곡으로 56개국에서 26개 언어로 불렸으며 1980년 빌보드차트 세계 2위에 올랐다. 1953년 태어난 아귈라는 음악을 하고 싶어 18세 때 가출하고 학업도 중단하였다. 5년 후 자신의 실수를 부모에게 사과하는 마음을 담아 작곡한 노래라 한다. Anak은 필리핀어로 ‘자식(child)’이라는 뜻이다. 이 노래를 들고 아버지를 찾아가 용서를 구했을 때 아버지는 아귈라를 안으며 크게 기뻐했다 한다. (부자간 상봉 며칠 후에 아귈라의 부친 별세) 필리핀 사람들에게는 Anak 발표 5년 후에 번안하여 부른 노래 ‘Bayan Ko(My Country)’로 더 유명해졌다. 이 노래는 당시 마르코스 대통령의 독재정치에 저항하는 시위대들이 가장 많이 불러 제2의 필리핀 애국가로 인정되었다. EDSA 시민혁명 당시 시민들에게 큰 힘이 되었다. Bayan Ko는 원래 1928년 미국 식민정치에 저항하는 노래로 발표되었는데 (작사 Jose Corazon de Jesus, 작곡 Constancio de Guzman) 아귈라가 번안하여 마르코스 독재 치하에서의 저항심을 일깨우는 노래로 퍼지게 되었다. 아귈라는 한국에서 열린 2008년도 아시아모델 시상식(Korea Asia Model Award Festival)에서 ‘아시아스타(Asia Star)’상을 수상했다.

왕년의 농구스타 ‘신동파’···아시아 최고 득점왕

1944년 함경남도 안변 출생. 전 한국 국가대표 농구선수이며 감독으로 1969년 고등학생 신분으로 국가대표에 발탁된 신동파는 아시아선수권대회 필리핀과 결승전에서 혼자 50점을 쏟아 부으며 한국남자 농구가 처음 우승을 차지하는데 맹활약했다. 필자가 필리핀에서 생활을 시작한 1990년 이후 처음 몇년 동안은 내가 한국인이라고 소개하고 나면 거의 언제나 받는 질문이 “신동파 아느냐?” “신동파는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느냐?”였다. 스포츠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던 필자는 처음에는 중국 시인 ‘소동파’로 잘못 알아들은 게 아닌가 했을 정도로 ‘신동파’라는 한국선수에 대해 무지했는데, 필리핀 사람들은 그다지도 애정을 표하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자랑스럽기도 하였다. 당시 한국에 있는 지인들에게 물어보니 농구 국가대표 선수였고 어느 실업팀의 감독으로 활약하고 있다고 하여, 근황을 필리핀 사람들에게 알려줄 수 있었다. 신동파 선수를 아시아선수권대회 때 지켜봤다는 필리핀 사람들에 의하면, 그 이전이나 지금이나 신동파 선수만큼 골을 잘 넣는 선수를 본 적이 없다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다. “신동파, 슛”하고 나면 어김없이 “골인!”이었다는 것이었다. 신동파 선수의 슛은 100% 성공이었다! 필리핀 생활이 20년을 넘긴 지금도, 나이 50이 넘어 보이는 필리핀 사람들과 가벼운 얘기 나눌 때 ‘신동파’를 살짝 언급하면 그들로부터 매우 즐거운 ‘신동파 전설’이야기를 얻어들을 수 있다.

인삼차, 태권도 그리고 ‘정력제?’ 빈대

필리핀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의 정력이 자신들과 중국, 일본인에 비해 엄청나게 세다고 믿고 있다. 그 비결에는 인삼의 상시 복용과 태권도로 육체를 단련하고 빈대와 같은 정력제가 있다고 믿고 있다. 인삼에 대한 인식은 ‘만병통치약’ 또는 거의 ‘불로초’ 수준이다. 필리핀과 같은 더운 나라에서는 재배되지 않는데다가 언론 매체를 통해 인삼의 효용에 대해 자주 언급되고, 특히 인간을 닮은 모양에서 주는 신비로움에 크게 자극된 것이다. 어떤 병이건 인삼차를 먹으면 쉽게 나을 수 있거나 병을 막아줄 것이라고 믿고 있는 필리핀 사람들에게 인삼차는 아주 좋은 선물이다. 한국인들이 주관하는 대형 행사장에서는 어김없이 태권도 시범을 보이고, 올림픽 종목에까지 채택된 태권도를 한국 선수들이 거의 휩쓸어 버리기 때문에, 한국 남자들은 모두가 태권도 유단자인 줄 안다.

그래서 필리핀 남자들과 사소한 시비라도 붙으면 처음부터 맨손으로는 당하기 어렵다고 단정하고 흉기를 드는 경우가 많다. 필리핀 남자들로부터 한국 빈대(Korean Bug)를 구해 달라는 부탁을 가끔 받았다. 그게 뭐냐고 오히려 되묻는 필자를 이상하게 쳐다보는 그들이 처음에는 무척이나 이상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필리핀 서민들에게 인기 있는 닭싸움 장에서 한국 빈대를 먹인 쌈닭이 훨씬 사나워지고 지구력이 강해진다는 것이다. 한국인들 정력이 세다하는 소문은 창녀들이 퍼뜨린 게 아닌가 싶다. 대체로 하룻밤에 한두 번의 성행위로 끝나는 여러 나라 남성들을 경험하는 그들에게, 한국인들은 거의 대부분 젊은이건 늙은이건, 술에 취해있건 멀쩡하건 상관없이 세 번 이상 하려고 덤벼든다는 것이다. 정력이 세어서가 아니라 한국인에게 유별나게 강한 ‘본전생각’ 때문인 것으로 보여지는데, 필리핀 창녀들이 거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해 한국남성들의 강한 정력에 대해 선전하고 다녔을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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