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종구의 필리핀바로알기] 진보적인 지배층, 보수적인 서민층
진보와 보수, 자본주의와 사회(평등)주의를 서로 대립하는 개념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필자는 조화롭게 협력하는 개념으로 본다. 모든 인간의 몸속에 남성 호르몬과 여성 호르몬이 함께 존재하면서 남성 호르몬이 우세하면 남성이 되고 여성 호르몬이 우세하면 여성이 되듯이, 또는 나무의 가지는 하늘을 향해 뻗어나가고 뿌리는 땅속으로 깊이 내려가 안정을 유지하듯이, 또는 음양이 서로 조화를 이뤄야 하듯이 이들 모두가 사회를 형성하는데 필수적인 요소이며 상호 협력하고 보완하는 개념이어야 할 것이다. 남성이라 하여 몸속의 여성호르몬을 척결(剔抉)하면 온전한 인간이 될 수 없듯이, 뿌리를 척결하면 줄기 혼자서 생존할 수 없듯이, 음이 없는 양이 존재할 수 없듯이, 자본주의 사회라 하여 사회(평등)주의 요소를 척결의 대상으로 여겨서는 온전한 사회를 유지할 수 없다고 본다.
어느 시기에는 진보 성향이 우세하여 자본주의 편향적으로 기울었다가도 또 다른 시기에는 보수 성향이 우세하게 되면서 사회(평등)주의 편향적으로 기울기도 하면서 시소를 타듯이 또는 파도에 좌우로 흔들리며 항해하는 배처럼, 그때마다의 시류와 사회 상황의 변화에 따라 좌우로 흔들리며 가는 것 아닌가. 너무 크게 흔들리면 전복하여 침몰하는 배와 같이, 극단적인 자본주의도 극단적인 사회(평등)주의도 사회의 발전과 안전을 위해서 바람직하지 않다.
진보적인 자본주의를 오른발이라 하고 보수적인 사회(평등)주의를 왼발이라고 가정하면 더욱 이해하기가 쉽겠다. 사회가 앞으로 발전해 나가기 위해서는 왼발과 오른발이 번갈아 앞으로 나가줘야 한다. 그런데 필리핀의 역사와 현재의 상황을 관찰해보면 수백 년 동안 오른발만 항상 앞서 걷고, 왼발은 거의 사용하지 않아 불구 상태 또는 퇴화되어 버린 듯하다. 오른발만 진화하여 외발로 깡충거리면서 나아가고 있는 기형적인 걸음걸이를 연상하게 된다. 그렇기에 한국 전쟁 이후 최근까지 비교적 고르게 발육한 두 발로 힘차고 안정적으로 걷고 있는 한국에 평균적으로 뒤쳐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누차 표현했지만, 필리핀은 진보·자본주의 성향의 지배층 및 중산층 10%가 보수·사회(평등)주의 성향의 서민층 90%를 장악하고 있는 구조이다. 한국은 신분과 산업의 붕괴 시대(한국 전쟁)와 진보적인 개발시대, 보수적인 사회 정의를 위한 민주화 투쟁 시대를 두루 경험하면서 알게 모르게 양측의 성향을 고르게 가지고 있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그토록 오랜 세월동안 순순히 억압당하며 살고 있는 필리핀 서민층의 성향과 생활을 쉽게 이해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거칠고 비윤리적인 지배층과 중산층의 성향에도 쉽게 공감하지 못한다.
빈부 격차와 계층화가 확대되고 고착되기 위해서는 활발하고 힘차게 움직이는 특성인 역동성(力動性)을 저지해야 한다. 물과 기름은 빠른 움직임(진보적) 속에서는 층을 만들기 어렵다. 움직임을 줄여야 (보수적)층을 만들 수 있다. 진취적이고 진보적이어야 할 젊은 서민들을 기존 체제와 자본에 예속시켜 움직임을 제한해야만 사회의 보수화와 계층화가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
중세시대라 함은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삼은 392년 이후 14세기 기독교로부터의 속박에서 벗어나 인간성 해방을 추구한 르네상스(Renaissance)운동이 확산되기 전까지의 1천년 동안을 말한다. 이 기간 동안 유럽은 거의 변화가 없는 상태로 인간의 합리성과 명석함, 노력해서 무엇인가 이루어 내려는 자유로운 발상과 인간의 창조성 및 진보성향이 억압받았던 시대였다. 중세 시대처럼, 필리핀 서민들은 기독교(일부는 이슬람교)의 문화 때문인지 몰라도 식민 시절 이후 지금까지 거의 변화가 없는 상태로 합리성과 명석함을 드러내지 않고, (진보의 최고 가치들인) 노력해서 무엇인가 성취하고자 하는 역동성과 창조성을 잠재우고 있다. 중세 시대를 혹자는 암흑시대(Dark Age)라 하듯이, 필리핀 서민들은 아직도 한밤중의 잠에서 깨어나지 않고 있는 것이고, 이들을 깨우려는 어떠한 시도도 지배층들은 허용하지 않을 것 같다.
한편, 필리핀 지배층들과 사업가들은 돈을 버는 방법은 진보적(불법, 탈법, 비도덕적)이지만 투자하는 방법은 보수적(안전과 신용 위주, 모험 배제)이다. 불확실하거나 리스크가 큰 사업에는 투자를 꺼린다. 진취적이었던 스페인 식민 통치 시절의 선조들과는 달리, 현재의 지배층들과 사업가들은 리스크가 30% 이상만 되어도 사업 자체를 검토하지 않으려 한다. 자신들이 통제 가능하다고 자신하고 있는 내수시장을 겨냥한 제조업에는 투자하지만, 먼 나라의 시장에 수출하는 상품을 생산하는 제조업에는 투자하기를 꺼려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수출 상품들은 (많지도 않지만) 외국계 회사들이 투자한 공장에서 생산하고 있어서 한국에 비해 필리핀의 제조업 기반이 아주 취약하다.
매년 3000만톤 니켈 광석을 수출하면서도 부가가치를 높여 수출할 수 있는 니켈 제련 공장에는 투자하지 않는 이유가, 외국 수입업자들과 수입국들의 시장 상황을 통제하기 힘들어 제련 공장에 투자한 금액을 회수하는데 예상보다 장기간 시일이 소요될 수 있다는 리스크를 꺼려하기 때문이라 한다. 지금 땅(니켈 광석)파서 조그마한 이익을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남기는 것이, 거액을 투자한 몇 년 후에 배 이상 이익(이익은커녕 손해가 발생할 지도 모르므로)보는 것보다 낫다는 인식이다. 통제 가능한 국내해운업에는 투자하지만, 통제가 불가능하고 리스크가 큰 국제해운업에 진출하려 하지 않는 이유도 보수적인 투자마인드 때문이다.
2008년 이후의 세계 금융위기도 필리핀만은 크게 영향을 받지 않고 있는 듯하다. 수십 년 전부터 필리핀의 은행들과 기업들은 PF(Project Financing) 사업을 비롯한 신용 대출을 거의 하지 않기 때문이며, 해외에 취업해 있는 노동자들이 송금해 오는 엄청난 금액이 내수시장을 안정적으로 지탱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필리핀의 지배층들과 사업가들은 돈을 투자함에 있어서는 보수적인 자세를 견고하게 유지하여 부침이 거의 없이 꾸준히 부를 축적해 가고 있다.
국민의 약 2% 또는 200만명 정도가 지배층에 속한다. 중견기업, 대기업의 오너들, 대지주들, 고위직 공무원들 및 중, 대도시 정치인들(시장, 도지사, 상/하원 의원), 고위 성직자들이 이 계층에 속한다. 한 가정의 월 평균소득은 5천만원 이상으로 중산층보다 10배 이상, 서민층보다는 100배 이상 높은 생활수준이다. 다만, 여기에서 고위 성직자들은 지배층에 속하더라도 소득이나 자산 부문은 예외이다. 평균 자산이 30억원 이상이므로 한국의 상류층과 수준이 비슷하지만, 한국인 상위 2% 정도를 상류(지배)층이라고 한다면 100만명 정도 (5000만명의 2%)이므로 필리핀의 상류(지배)층 숫자가 한국보다 두 배나 많은 셈이다. 성격은 대체로 여유만만하고 거만해 보인다. ‘조폭두목 스타일’이라는 거친 표현을 쓰는 사람도 있으며 법, 도덕, 종교 교리 등의 원칙과는 예외적인 삶을 살고자 한다. 스페인과 미국의 지배층 후손들이므로 의식과 행동은 다분히 서구적이다.
사업상 항상 ‘갑’의 위치에 있으려 하고, 남의 지시를 받는 것을 굴욕으로 느낀다. 미국이나 유럽인들을 부하직원으로 거느리고 있는 경우도 많이 있으며, 자녀들은 대부분 미국이나 유럽에서 수년 간 학업을 마치고 돌아와 부모의 사업체에 젊어서부터 임원(Manager)으로 참여한다. 집 안에서는 하인들로부터, 집밖에서는 부모의 보좌관, 집사, 직원들로부터 중세 시대의 왕자(공주)처럼 대접받고 성장하기에 빈부 격차와 그에 따른 차별화된 삶을 당연시하고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동정심이 부족하다.
개발도상국에서는 해마다 말라리아로 1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죽고 수백만명이 시달리고 있지만, 세계는 말라리아 치료약 개발보다는 살 빼는 약 개발에 20배나 많은 연구비를 투자하고 있다고 한다. 수년 전 한국의 어느 상류층이 “내와 자식을 제외하고 모든 것을 바꿔라”는 신사고(新思考)를 직원들에게 주문한 적이 있었다. 내와 자식 이외에 바꿔야 하는 모든 것에는 법과 도덕, 상식과 원칙, 종교적 신념과 교리도 포함되어 있음을 직감할 수 있을 정도로 극단적인 진보성향을 보였는데, 필리핀의 지배층들도 이와 유사한 성향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한국도 진보적 자본주의 사회로 질주해 온지 40년이 흘렀으니, 그 기간 동안 부와 권력을 공고히 하고 자녀들에게 성공적으로 세습한 특수 지배층이 존재한 것이리라. 대체로 어느 나라이든지 피라미드의 꼭대기에서 살고 있는 지배층들의 사고방식은 비슷하다고 보면 될 것이다. 어쩌면 장구한 역사를 가진 필리핀 지배층들의 삶과 의식을 한국의 신흥 지배층들이 배워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조상 때부터 상류(지배)층의 생활을 하고 있는데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며(신라시대의 성골문화와 유사함), 자손 대대로 그러한 지위를 누릴 수 있는 세습의 전통과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일본 메이지 대학의 사이토 다카시 교수가 했던 적절한 표현을 옮겨본다.
“부와 권력이 자신의 대에 한한 것이라면 자기가 죽음으로써 모든 것이 끝나니까 지나치게 욕심 부릴 필요가 없어지지만 대대손손 이어질 경우에는 욕망의 한계가 사라진다. 무한대로 치닫게 되는 것이다. 일족을 중요한 자리에 앉히는 것도 그 근저에는 유전자를 남기려는 욕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자식은 자신의 유전자에 의해 만들어진 복제품이다. 자신의 복제품이 자신이 죽은 후에도 거대한 제국을 지배한다는 쾌감. 그것이 자신의 유전자를 (부와 권력의 높은 위치에) 남기고 싶다는 생물학적인 욕구와 이어지는 것이다.”
최상류층들은 자기들 재산이 얼마인지 정확히 모를 것이라는 얘기들도 오간다. 오랜 미국 망명 생활을 청산하고 필리핀에 돌아온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미망인 이멜다에게 어느 날 기자들이 질문을 했다. “망명생활 중에도 경제적으로 힘든 경우가 없었다고 들었고, 필리핀에 돌아와서도 최고급 호텔 등에서 생활하는 등 씀씀이가 아주 크다는 얘기들이 들리는데, 여사님의 재산은 어느 정도 됩니까?” 이멜다 여사가 대답하기를, “자기 재산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는 사람은 진짜 부자가 아니랍니다.” 참고로, 이멜다는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영부인으로서 독재와 부정축재의 화신처럼 회자되곤 하지만, 수백 년 동안 (현재까지도) 필리핀의 지배층 거부 열 번째 안에 들어가는 로페즈 가문의 여자이다.
2012년 미국의 경제잡지 <포브스>가 발표한 전세계 1226명의 억만장자들 중 필리핀 사람들은 6명이 포함되었는데 필리핀의 최고 갑부는 SM 쇼핑몰의 오너이자 부동산 개발업자인 Henry Sy로서 80억달러의 재산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었다. 그리고 이 잡지는 83억달러를 가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한국의 최고 갑부로 선정하였다. 한국의 최고 갑부가 제조업 기반인데 비해 필리핀의 최고 갑부는 부동산과 도·소매업 기반이다. 필리핀의 공시지가는 실제 가격의 절반 이하라고 봐야 하고, 도·소매업의 매출도 상당히 축소되어 알려졌을 것으로 여겨지므로, 필리핀 최고 갑부의 실제 재산은 한국 최고 갑부의 재산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물론 한국의 갑부들도 자산 가치와 매출을 줄였을 가능성이 있지만 필리핀보다는 줄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참고로 한국의 두 번째 갑부 정몽구 현대·기아 자동차 그룹 회장의 재산은 62억달러로 평가되었다 한다.
(실제의) 재력 면에서나 영주 같은 또는 천국 같은 생활을 하는 면에서나, 한국인 갑부들이 필리핀 갑부들을 부러워할 것 같고 열등감을 느낄 것만 같다. 보통 천국은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의 부유층이 거주하는 교외 주택지 같은 장소로 묘사되는데, 크고 화려한 문과 문지기가 있고 들어가려면 자격이 있거나 심사를 통과해야 하며, 아무나 들어갈 수 없다. 내부는 호화롭게 치장하고 미녀들과 하인들의 시중을 받으며, 산해진미 속에 살고 있으며, 언덕 꼭대기에는 모든 우두머리들의 우두머리가 거주하는 커다란 저택이 있다. 필리핀 지배층들의 삶과 현실이 이와 비슷하니 그들은 지상의 천국에서 사는 것이리라. 어느 선교사(포교사)라 할지라도 지배층들을 찾아가서 사후 천당 세계의 행복한 삶을 설명하며 복음주의를 설교한다는 것은 어쩌면 비현실적이고 이루기 힘든 희망에 불과할 것인지도 모른다. 그들 중에서 누군가는, 죽기 직전에 회개하면서 재물의 일부를 성전이나 자선 단체에 기부함으로써 생전에 누린 천국 생활을 사후에도 계속 누릴 수 있다고 믿을지 모른다.
상류층들은 아래 계층 사람들이 계층을 뛰어넘을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을 싫어한다. 중산층들이 상류 계층에 쉽게 진입하지 못하도록 변호사, 의사, 회계사들을 대량으로 배출하여 치열한 경쟁 구도를 만들어 놓았다. 변호사들의 경우 수요보다 공급이 넘쳐서, 매달 10만~20만원 정도 고정적으로 지불하면 방문 상담이나 전화 상담을 몇번, 몇 시간에 상관없이 어떤 분야이건 법률 서비스를 받을 수 있을 정도이다. 이 금액에는 소송이나 법률 서류작성과 같은 비용은 포함되어 있지 않지만, 변호사들마다 중·상류층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서비스 경쟁을 해야만 중산층 생활을 할 수 있는 구조이다.
필자에게 자수성가한 필리핀 사람에 대해 얘기해 준 사람이 있었다. 그는 서민 출신이었지만 열심히 일하고 운도 따라서 100억대 이상의 재산을 불렸다고 한다. 그런데, 그의 업종은 외국 회사의 하청업을 하는 ‘을’의 입장이어서인지 상류층 사람들이 동격으로 상대해주지 않는 것 같았고, 자녀들도 제법 유명한 사립학교에 다녔지만 상류층 자녀들과 제대로 사귀지 못했는지 중산층 자녀와 결혼했다는 것이다. 재산과 소득은 상류층 수준이지만 사회적인 위치는 중산층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