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종구의 필리핀바로알기] 서민층②···경험 및 상상의 두가지 종교관
필리핀 서민들은 두 가지의 믿음으로 살아가는 듯하다.
첫째는 경험으로 믿는 것이다.
-잘못을 즉시 인정하면 큰 불이익을 당한다.
-시키지 않는 일을 하면 비록 그 결과가 좋았다 하더라도 큰 불이익을 당한다.
-지배층이 원하는 대로 살아주면 착하다고 평가해 주고 지배층이 보호해 준다.
-지배층들은 언약을 잘 지키지 않는다. 역사는 강자가 만들어 가기 때문에 강자 편에 서 있어야 안전하고 유리하다.
-승진이나 급여 인상은 열심히 일하는 것과 무관하게 사장의 개인적인 선호도에 좌우된다.
-사장이나 상관이 내게 화를 낸다면, 그것은 내가 일을 잘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나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오늘 하지 않아도 내일 하면 된다. (이러한 인식은 기후의 영향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일 년 내내 과일이 풍성하고 때를 맞출 필요 없이 언제든지 농사를 지을 수 있으며, 겨울과 같은 혹독한 계절을 미리 준비해야 할 필요가 없는 자연의 혜택 때문일 수 있다.)
-사장의 자녀가 대학 졸업과 동시에 상관(Manager, 임원)으로 부임할 것이다.
-가족과 친척들만이 진심으로 나를 보호해 줄 것이고, 친구들이나 동료들에게 기대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신분이 비슷한 사람과 사랑으로 결혼해야만 행복한 가정생활을 할 수 있다.
-기득권층들이 아무렇게나 함부로 두는 물건(돈이나 귀금속 포함)들은 기득권층들에게 별로 소용없는 것들이므로 허락 없이 가져가도 될 것이다.
-오늘 2개 받는 것이 내일 3개 받는 것보다 낫다. 장래의 일은 항상 신이나 기득권층이 결정해 왔으므로, 그의 마음이 변하기 전에 받을 수 있는 것은 즉시 받아야 한다.
-항상 웃음과 미소로 남을 대해야 안전하다. 불쾌한 감정을 노출 시키는 것은 위험할 뿐만 아니라 거만한 사람이다.
-누군가의 요청이나 초대를 명확하게 “No”라고 거절하는 것은 무례한 짓이다. 무엇이든 핑계를 찾아서 받아들이지 못할 가능성을 설명하되 “I will try”라고 마무리 지어야 상대에 대한 배려이다. 직설적인 표현으로 상대방을 기분 나쁘게 하거나 불쾌하게 해서는 안 된다.
-모든 종교는 신에게로 향하는 계단이므로 타종교를 비난해서는 안 되며, 타종교인들과도 화목하게 지내야 한다.
둘째는 상상으로 믿는 것이다.
-가난을 인내하고 착하게 살면 사후에 천당에 갈 것이다.
-재물을 쌓아두거나 아끼느라 가난한 이웃을 돕지 않으면 지옥에 갈 것이다.
-재산을 많이 가지고 있으면 걱정거리도 그만큼 늘어난다. (그런데, 재산이 없는 편이 걱정거리가 더 많다는 유태인 속담을 잘 모르고 있는 듯하다.)
-죄를 짓더라도 진심으로 회개하면 용서받을 것이다.
-회개한 후 또 다시 죄를 짓더라도, 다시 회개하고 선행을 쌓으면 용서받을 것이다.
-자식(생명)은 신의 축복이 있어야만 탄생하는 것이다. 성행위를 한다고 해도 신의 축복이 없으면 자식(생명)은 주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모든 자식(생명)은 귀중하며, 부부에게 자식이 없다는 것은 신의 축복을 받지 못한 것이기에, 신에게 회개하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 자식이 많을수록 신의 축복을 많이 받은 증거이다. (‘아이들은 너의 것이 아니라 신이 너에게 잠시 빌려준 이들이다’라는 어느 속담을 떠올리게 한다.)
-콘돔이나 피임제를 사용하는 것은 신의 축복을 거부하거나 방해하는 불경한 짓이다.
-진심으로 정성을 다해 기도를 하더라도 이뤄지지 않는다면, 신에게 뭔가 다른 계획이 있기 때문이다.
-주위의 모든 이들(지배층이든 서민이웃이든 타종교인이든)에게 성실하게 대하는 것은 천당에 이르는 길이다.
-자유 의지(free will)는 신이 인간을 시험하기 위해 준 것이다. 그러므로 자유 의지를 무시하고 신의 의지대로만 산다면 현실 세계에서도 행복할 것이고 사후에 천당에 갈 것이다.
필리핀 서민들의 생활을 가까이에서 엿보게 되면 다들 가난하지만 즐겁고 편안하게(느슨하게) 살다가 어느 순간 죽음이 찾아와 신의 곁에 가게 되면 그동안 원했던 모든 것들을 신에게서 한꺼번에 보상 받는다고 믿으며 살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필리핀 서민들에게 있어서 죽음은 슬픈 것이 아니라 ‘지상에서 사는 동안 착하게 살았다’는 것에 대해 신으로부터 큰 선물을 받게 될 기회를 맞이했다고 받아들인다.
“하느님께서 그(녀)를 데려가시기로 결정하신 것을 받아들이나이다!” 서민들의 장례식장에 가보면, 너나없이 이제 신의 곁으로 갔으니 “고생 끝, 행복시작!”이라는 식의 덕담을 유가족들과 나누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미래에 발생할지 모르는 재난이나 불행에 대해서도 신에게 맡겨버려 개인적인 보험은 들지 않는다. 보험에 들 정도의 여윳돈이 있다면 당연히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던지 놀고 즐기는데 써버린다.
즉, 미래의 재난은 신에게 의지하지 보험 회사에 의지하지 않는다. 보험을 들고 있는 모든 종교 지도자들은 필리핀 서민들의 신앙심 앞에 부끄러워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자신의 재산을 움켜쥐고 가난한 친척이나 이웃과 나누지 않는, 신보다는 보험 회사에 장래를 의지하는 한국인들이 필리핀 서민들의 생활과 의식 구조를 이해하기는 힘들 것이다. 중산층과 부유층들의 집에서 일하는 가정부들은, 가난한 서민들과 가진 것을 나눌 줄 모르는 이기적인 주인 가족들이 지옥 갈 것이 분명해 보이기에 불쌍해하며 신이 용서해주실 것을 매일 기도 할지 모른다.
불쌍해서 보살펴줘야 하는 주인 가족들이 먹을 음식에 해로운 것을 몰래 집어넣는 짓 같은 죄악은 상상도 하지 않을 것이다. 신의 축복 속에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 있으면서 사후에 천당 갈 것이 분명하다고 믿고 사는 필리핀 서민들을, 가난하고 지저분하다고 업신여기는 사람들이 있다면, 오히려 그들의 비웃음과 동정심을 살 것이다. 이러한 환경속의 필리핀에서 굳이 선교(포교)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면, 그 대상은 서민들보다는, 불공정한 분배 구조로 해마다 재물을 늘리면서도 서민들의 재난과 기초 생활(교육, 의료, 주택, 상하수도 시설) 개선에 대해 면피용 지원만 하고 있는 지배층들이지 않나 싶다.
예를 들어, 북한 주민들이 불쌍하다면서 탈북을 유도하는 것보다는 신의 가호 아래 김정은을 선교(포교)하여 북한 주민들을 가난과 속박에서 해방시켜 주는 것이 수천 배, 수만 배 효과적일 터인데 말이다. 만일, 자신이 믿는 종교나 신앙의 복음을 김정은이나 지배층들에서 전파하려다 박해를 받아 죽임을 당한다 하더라도 순교자(martyr)가 되어 천당에 오를 것이 분명할 터인데, 그러한 순교자들이 아직은 없는 것 같다. 어쩌면 그들의 자유의지는 무시하고 신의 의지를 따르고자 하는데, 아직 신으로부터 계시나 명령을 받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