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종구의 필리핀 바로알기] 책도, 종교도 착한 서민들 지배수단일 뿐

책구매 가능층 한국의 1/5···인터넷 발달 서민들 의식 깰 지 주목?

필리핀 전역에 책을 파는 서점과 책을 빌려주는 도서관이 거의 없다. 학교 교재는 학교에서 판매하고 일반 서적들은 인구가 5만명 이상 정도 되는 도시들에만 전국 유통망을 가진 2~3개의 서점들에서 팔고 있으며, 한국에서와 같은 ‘동네서점’이나 도서관 등은 찾아보기 힘들다.

소설이나 교양서적들의 책값은 서민들의 임금수준에 비해 턱없이 높은데, 필리핀 사람들이 책 한 권 구입하는데 서민들의 하루 일당과 비슷한 400페소 정도를 써야 하므로 한국인들이 하루 일당 정도인 10만원을 책 한 권 사는데 쓰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필리핀 서민들(국민의 90%)에게는 과도하게 비싸다. 국민의 10%(1000만명)인 중산층과 지배층들은 평균적인 한국인들만큼 책을 구입해서 읽고 있지만 책 구매 가능층이 한국에 비해 1/5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서 필리핀 작가들은 책을 출간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광고가 절반 이상 차지하는 수준 낮은 대중잡지들에 기고하는 정도여서 대부분 경제적으로 어려운 서민층 생활을 하고 있다. 중산층이나 지배층의 가문에서 성장한 작가들도 책 출간은 거의 하지 않고, 그들의 가족 또는 사업과 관련 있는 신문과 잡지들에 정기적으로 기고하고 있는 정도이다.

위와 같은 사정으로 인해, 필리핀 교육 당국과 지배층은 고전과 명작들의 줄거리를 윤색하고 편집하여 학교 교재에 실음으로써 서민들을 쉽사리 교화할 수 있다. 일부 학교와 극히 일부의 도서관에 책들이 진열되어 있지만 숫적으로 너무나 초라하여, 깨어있는 서민들이 있다 하더라도 관심 있는 분야의 좋은 책을 통해 스스로 지적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기회가 너무나도 제한적이다.

“우리 손에는 성경, 그들 손에는 땅문서가···.

프랑스의 철학자 사르트르(1905~1980)는 “내가 세계를 알게 된 것은 책을 통해서였다”고 했는데, 좋은 책을 쉽게 접할 수 없는 필리핀 서민들은 세계를 알 수도 없고 자신의 인생과 사회를 고찰할 수 있는 자료가 항상 부족하다. 그에 반해 지배층과 중산층은 많은 독서와 값어치 있는 정보의 수집으로 자신들의 두뇌를 항상 충실하게 채워놓고 있다. 다만, 인터넷의 발달로 서민들도 지식과 정보에 예전보다 쉽게 많이 접근할 수 있으므로 앞으로 어떤 변화가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헤르만 헤세(1877~1962)는 “사랑은 우리들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이 가난과 고뇌에서 얼마만큼 견딜 수 있는가를 보기 위해서 존재한다”고 했다. 사랑을 종교로 바꿔서 표현하면, “종교는 서민들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민들이 가난과 고뇌에서 얼마만큼 견딜 수 있는가를 보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라고도 말할 수 있다.

종교와 천국에 대한 믿음은 경험이 아니라 순수한 믿음에 근거한 것이며, 그 믿음 자체만으로도 커다란 권위를 가지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종교적 믿음에 어긋나는 생각이나 증거를 거부한다. 예를 들면, 환자를 위해 열심히 진심으로 기도해도 치료에 별 효과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따위의 과학적 연구를 좋아하지 않는다. 성스러운 미래와 완벽한 삶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종교적 믿음과 사회적 권위에 대한 복종을 강요받는다.

사람들은 의심하는 것에는 불안함을 느끼고 믿는 것에는 편안함을 느끼기 때문에, 교리에 충실한 신앙인일수록 예의바르고 복종심이 강하며 이는 필리핀 서민들의 주요한 특징 중 하나이다. 한국에도 착한 서민들이 많다. 학교와 사회에서는 정직하고 착하게 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국이든 필리핀이든, 대다수의 착하고 성실하지만 소심한 서민들은 언제나 손해만 보거나 자신의 몫은 빼앗기는 딱한 운명을 짊어지고 있다.

1960년대 말기 남미지역을 중심으로 일어난 해방신학(Liberation Theology, liberation from unjust economic, political or social conditions) 운동은 가난한 자가 희생한 대가로 지배층들이 부유해지고 있음을 역설하고 교회가 가난하고 억압받는 자들을 위해 사회 개혁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는 운동이다. 교황청도 1986년 들어서는 해방신학의 공산주의적 요소는 배척하지만 가난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의 저항을 위한 투쟁을 인정했다고 하는데, 필리핀에서는 해방신학 운동이 일어날 것 같지 않다.

1511년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멕시코에서 법관 및 기업인으로 활약했던 Juan de Matienzo는 이런 말을 남겼다. “우리는 원주민들에게 종교교육을 제공하여 인간답게 사는 법을 가르친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에게 금과 은 그리고 기타 값나가는 것들을 제공한다.”

아프리카에도 이런 말이 전해 내려온다 한다. “백인(정복자)이 왔을 때 그들 손에는 성경이 있었고 우리 손에는 땅이 있었다. 그 백인이 우리 더러 눈을 감고 기도하라고 말했다. 이제 그 백인 손에는 땅이 있고 우리 손에는 성경이 있다.”(“When the white man came, he had the Bible and we had the land. He told us to close our eyes and pray. Now we have the Bible, and he has the l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