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테러 한인희생⑨이수진] “그해 겨울 밴쿠버 스키여행 계획하고선”

9.11 희생자 이수진씨


2001년 9월 11일 테러로 300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들 무고한 희생자 중에는 한인 21명도 있었다. 두개 동의 세계무역센터 건물이 있던 자리에 조성된 추모의 연못 ‘노스풀과 사우스풀에는 신원이 확인된 희생자 2983명의 이름이 있다. 9.11테러 현장인 로어 맨하탄 그라운드 제로에 세워진 9.11추모박물관에는 한인 희생자 21명의 이름도 새겨져 있다. 한인 희생자들은 노스 풀에 경희 케이시 조, 파멜라 추, 프레드릭 한, 강준구, 앤드류 재훈김, 로렌스 돈 김, 구본석, 린다 이, 리처드 이, 스튜어트 수진 이, 박계형, 크리스티나 성아 육, 대니얼 송씨 등 모두 13명이, 사우스 풀에는 대니얼 이, 이동철, 수 김 핸슨, 이명우, 이현준, 진선 박 웰스, 데이빗 이, 아놀드 임씨 등 8명 등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아시아엔>은 이들의 사연을 독자들께 전한다. 먼저 언론에 알려진 한인 희생자 이름을 인터넷에서 찾아내고, 추모박물관 데이터베이스에서 이름을 검색해 사진과 이야기를 직접 카메라로 찍어서 기사에 첨부했다. 또 인터넷 등에 있는 희생자 가족이나 지인들 인터뷰 등을 찾아 기사에 붙였다. <편집자>

이수진 (Stuart Soo-jin Lee, 1970년 10월 31일 ~ 2001년 9월 11일), 향년 30세

이수진씨는 한국에서 태어나 6살에 가족과 함께 캐나다 밴쿠버로 이민 가 자랐다. 참사 당시 부인 린(Lynn)과 함께 뉴욕 이스트빌리지에 살고 있었다. 여행을 좋아했던 이수진씨 부부는 9월 10일 막 한국과 일본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었다.

그리고 바로 그 이튿날, 스타트업 소프트웨어 회사 ‘데이터시냅스’(DataSynapse) 부사장이자 채권 분석가로 일하고 있던 이수진씨는 북쪽 타워(1번 빌딩) 106층에 위치한 레스토랑 윈도스 온 더 월드(Windows on the World)에서 열린 기술 컨퍼런스에 참여하고 있었다.

2001년 12월 1일자 <뉴욕타임즈>에 실린 그의 추모기사를 보자.

작년에는 파리와 칠레에 스키여행을 갈 정도로 이수진씨는 한시라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사람이다. 9.11 바로 전날, 이수진씨는 여행에 대해서 모르는 게 없는 아내 린 우드뵤르그(Lynn Udbjorg)와 함께 일본과 고국인 한국 여행을 마치고 미국 뉴욕 자택에 돌아왔다. 부인이 기억하는 이수진씨는 샴페인, 쿠바산 시가, 스시를 가리지 않을 정도로, 세계 방방곡곡의 요리와 문화를 좋아했다. 추모식에는 스시 셰프까지 초청했다.

이씨는 여행지 가운데 뉴욕을 가장 좋아했다. 특히 그가 살던 동네 이스트빌리지에는 다양한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 아내 린은 자신의 고향인 스칸디나비아를 좋아했던 남편 이수진씨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저희 남편은 스칸디나비아라면 뭐든지 좋아했어요. 특히 그곳 사람과 사귀어 보고 싶어했는데, 마침내 노르웨이 출신인 저를 만나서 결혼에 골인했죠.”

어린 나이에 밴쿠버에 이사와 자란 이수진씨는 훗날 미국으로 다시 옮겨왔다. 그는 소프트웨어 회사 데이터시냅스를 직장으로 선택했다. 사고 당일, 시차 적응에 들어갈 즈음 이수진씨는 쌍둥이 딩에서 열릴 기술 컨퍼런스에 참석하기 위해 일찍 집을 나섰다.

스키 매니아였던 이수진씨는 평소 아내 린에게 밴쿠버 북쪽에 위치한 휘슬러(Whistler)에 가서 친구들과 함께 스키를 타자고 말하곤 했다. 아내는 “올해는 먼저 떠나보낸 남편을 위해 그곳으로 다같이 가기로 했다”며 남편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친구들과 밴쿠버 여행을 준비하고 있었다.

데이터시냅스사 동료들도 이수진씨를 회고하는 글을 올렸다. 2011년 캐나다 토론토 인터넷신문 기사다.

데이터시냅스사의 공동 창업자 피터 리(Peter Lee)에 의하면, 이수진씨는 어떤 일이 닥쳐도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의심과 불만으로 가득찬 고객들에게 새로운 IT기술을 설명하는 일을 하면서도 항상 침착하게 행동했다. 그는 매우 도전적이고, 열정적이고, 에너지가 넘쳤다. 창사 1년밖에 안 된 스타트업 회사에서 그는 고객 및 동료들과 유대감을 쌓는데 노력을 아까지 않았다.

테러 당시에도 침착한 모습을 잃지 않았던 그의 모습에 모두가 놀라워 했다. 그는 당시 회사 사장과 이메일로 긴급 연락을 취하고 있었다.

이수진씨는 항공기 충돌로 생긴 화재로 빌딩 내부에 고립된 사람들이 산소가 부족해지자 유리창을 깨서 공기를 통하게 하는 방법을 찾고 있었다. 그가 소지하고 있던 블랙베리 휴대전화로 급히 보낸 아래 메시지가 생전 마지막 글이 됐다. “지금 다같이 의견을 모아도 모자란 상황입니다.”

데이터시냅스사 임원진들은 이수진씨의 노고 덕분에 회사가 크게 성장할 수 있었다며 감사의 메시지를 전했다. 매년 9.11 무렵엔 직원들이 이수진씨를 그리는 이메일을 피터 사장에게 전하고 있다고 한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