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겸 칼럼] 2003 미 이라크 침공 뒷얘기, 그곳에 대량살상 무기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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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엔=김중겸 전 인터폴 부총재] 2001년 부시 행정부의 중동정책은 신보수주의자(neo-conservatives)가 장악했다. 부통령 체니, 국방장관 럼스펠드, 국방차관 월포위츠가 그들이다.

그들은 “중동의 안정은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대통령을 제거해야 달성된다. 그래야 이스라엘의 안전도 확보된다”고 생각했다. 이같은 정책 실행을 모색하던 중 9.11테러가 발생했다. “사담 후세인이 알카에다 스폰서다. 제거할 찬스다. 전쟁이다.” 그리고 구실 만들기에 들어갔다.

첩보세계에서 정보(information)는 돈, 즉 법화(法貨, the coin of the realm)다. 많이 줄수록 많이 얻는다. 정보의 호혜교환(reciprocal exchange of information)이다.

“미 국방부에서 이라크를 공격할 구실을 찾고 있다!” 스파이 세계에 퍼진 소문이었다. 암흑가 도둑놈들과 사기꾼들(the netherworld thieves and con men)이 정보 암거래 시장으로 몰려들었다.

정보원은 무조건 보호하라
세계 3위 우라늄 생산국 니제르와 이라크 사이의 비밀거래 핵무기 제조용 우라늄(yellowcake) 수출입 서류가 돌연 시장에 나왔다.

정보거래 표준관행(standard practices) 입증서류 원본은 제공하지 않는다. 불필요한 부분은 검게 칠한 사본을 주고받는다. 누구에게서 입수했는지도 묻지 않는다. 정보원(sources)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서로간 양해된 사항이다.

이런 물건을 미 국방부의 Feith-Wurmser intelligence unit가 덥석 물었다. 물론 가짜정보(phony information)였다. 국무부에서는 이를 믿지 않았다. 터무니없는 얘기(an old wives’s story)라 했다. CIA는 한물간(second hand and third hand) 중고정보라 반박했다. 케케묵은(a twice-told) 얘기라 했다.

이라크 사람이 미국망명을 대가로 정보를 내놓기도 했다. 대량살상무기(Weapons of Mass Destruction, WMD) 즉 핵무기(A), 생물무기(B) 화학무기(C)는 지하 벙커에 있다. 아이스크림 트럭으로 위장한 생물병기 연구, 제조 시설도 있다고 했다.

선전공작으로 믿게 만들어라
미 국방부의 Perle-Feith-Wurmser 고위정책 브레인 즉 첩보생성팀은 친유태계였다. 후세인만 없으면 이스라엘과 중동에 평화가 온다고 주장해 왔다.

뒷받침할 자료는? 검증 불가능한 설익은(half-baked) 정보를 짜깁기해 만들었다. 이런 방식이 동원됐다. 어제 슬그머니 언론에 흘리고 오늘 국방장관과 백악관 안보수석 보좌관이 토크프로에 출연했다. 사실인 양 대담하고 토론했다. 말 그대로 선전활동(propaganda)이다.

국제여론은 토니 블레어 영국 수상이 찬조 출연해 주도했다. 영국의 MI6는 수상더러 세 번 이상이나 “찬동하지 마시라”고 했다. 미국은 헐리우드 영화회사처럼 전쟁구실을 제작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도 빅브라더 미국의 편을 들었다.

도청은 필수다
국제연합(유엔)이라는 구색도 갖추었다. “안보리의 전쟁 결의를 이끌어 내자, 말썽꾸러기는 어느 나라냐? 국가보안국 NSA가 이를 알아내라, 대표단 훈령 도청하라!” UN 창설 때부터 해온 첩보활동이다. 뭐 어려운 거 있냐.
1945년 4월 샌프란시스코 오페라하우스. 유엔 창립회의가 열렸다. 50개가 넘는 국가가 참석해 전후 새 국제질서를 짰다.

미국은 시내 북부지역 Two Rock Ranch에 임시 도청초소(listening post)를 설치했다. 오가는 전신과 통화를 다 가로챘다. 육군 암호부대(Arlington Hall in Washington, D. C.)팀이 파견 나와 해독했다. 미국의 관심사항은 미국 안에 UN본부를 유치하는 일이었다. 세계 각국과 국제기관 대표단이 상주하게 된다. 내 울 안에 놔두고 내 맘껏 국제정책을 스파이 할 심산이었다. 소련은 “유엔을 제발 미국에 두어라”고 했다. 왜냐구? 외교관 단 1명 증원도 국무성과 교섭해야 한다. 그런데 유엔에 상주시키게 되면 그만큼 스파이를 미국에 많이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 세계의 양대세력 미국과 소련의 이해가 딱 맞아떨어졌다. 그래서 유엔본부는 뉴욕으로 결정됐다.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이 전임 사무총장 부트로스 갈리로부터 인계받은 게 있었다. “도청은 일상다반사로 생각하고 지내시라. 사무실, 관사, 차, 전화는 기본이다. 식당을 비롯해 즐겨가는 곳도 그렇다.”

말 안 들으면 자금지원으로 회유
이라크와의 전쟁 결의를 이끌어 내는 안보리 역시 스파이가 활약했다. 정탐한 내용을 토대로 미국에 대한 찬성-반대-유보로 분류해 집요하게 공략했다.

반대하는 앙골라엔 수력발전소 건설자금, 파키스탄엔 신형 전투기 구매 지원, 그리고 멕시코엔 마약전쟁자금을 추가로 보조해 안전보장이사회를 통과시켰다. 마침내 2003년 3월 20일 이라크를 공격해 들어갔다.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는 없었다. 거짓 정보를 팔고 구매하고 이용해 이라크를 전쟁으로 몰아넣은 자들은 본국 이라크에 돌아가 큰 자리를 차지했다. 허위제보를 산 미국인들은 아직 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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