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겸 칼럼] 日해군이 2차대전서 미군에 패한 이유는?
[아시아엔=김중겸 전 인터폴 부총재] 2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이미 해전에선 잠수함과 항공기의 공격이 벌어졌다. 암호강국 독일은 잠수함으로 재미 봤다. 일본은 해군정세 파악을 그르쳤다. 대포 한 발로 격침시키는 대함거포를 고집한 것이다.
큰 배는 움직임이 둔하다. 잠수함이 물속에서 치고 들어오고 전폭기가 하늘에서 급강하해 기습하면 이를 피해 선회하거나 전진 또는 후진하기가 쉽지 않다. 당할 수밖에 없다.
일본 잠수함은 공격용으로 운용하지 않았다. 미군 후방 보급로 차단용이었다. 수송선 격침에 쓰였다. 비행기는 자폭용, 자살 특공대였다. 귀환은 비겁한 행동으로 용서받지 못했다. 죽어야 했다.
일본 잠수함은 200척 보유에 격침 피해가 128척으로 손실비율이 64%에 이른다. 상대방 선박 격침은 170척, 그나마 대부분이 수송선이었다.
미국 잠수함은 288척을 보유하고 64척이 격침됐다. 손실비율은 18%에 불과한 반면 적 선박 1300척을 격침시켰다. 그것도 대부분 전투함이었다.
폭격에서도 미국은 조선소 공격은 선호하지 않았다. 조선시설과 건조 중인 배 정도를 파괴할 뿐이었다. 해상의 함대를 공격하면 군인(人)+군수품(物)+함정(船)을 일거에 공략하는 효과가 있었다.
일본 정보활동 경시는 ‘멸시 수준’
일본은 미국의 국력에 눈을 감았었다. 알면서도 정직하게 평가하지 않았다. 5.5분에 전투기 1대, 40분에 상선 1척을 만들어내는 잠재력을 외면했다.
일본 해군은 전략전술정보 수집에 소홀했다. 게다가 암호가 해독된 상태였다. 미군은 일본군 동향을 소상히 알고 있었다. 비밀통신 암호문을 독파했기 때문이다.
직업군인은 첩보를 군인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일본이 특히 그랬다. 정보강국이라는 미국도 그런 과거가 있다. 미 육해군 고위 장교는 한때 정보에 전혀 관심 없었다.
1920년대와 1930년대 미군은 대령까지 엄격한 연공서열로 승진했다. 정보는 뒤쳐진 녀석이 승진하려고 이용하는 뒷문으로 매도당했다. 정보활동은 적시(敵視) 대상이었다.
미국 의회는 참모본부 설치를 허용치 않았다. 프러시아 군국주의 냄새가 난다는 게 이유였다. 그 결과 보병-기병-포병-공병-통신이 독립군처럼 움직였다. 1903년에야 참모본부를 설치했다. 정보참모 설치는 말 꺼낼 처지가 아니었다.
정보요원 평가절하로 첩보내용 인정 않아
일본군도 정보업무 관계자는 비정상인 취급을 당했다. 가령 “성격에 문제가 있다” “병에 걸려 그 분야로 쉬러 갔다” “직무수행에 문제가 있어 그쪽으로 돌려졌다”고 내돌렸다. 정보 경시풍조가 지배한 것이다.
정보를 제공하면 그렇지 않다고 했지만 웬 헛소리라며 불신만 가중됐다. 일종의 부정심리(否定心理)다.
정보쪽 행태도 문제다. 이거다 저거다가 아니다. 딱 부러지지 않고 애매모호했다. 알맹이 있는 그 무엇(something)이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그러다 보니 거부당하기 일쑤였다.
게다가 뒷받침하는 근거도 빈약하다. 군인들은 확실한 증거를 군인은 원한다. 그런데 첩보는 추측이다. ‘누가, 무엇을,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왜’를 다 제시하지 못한다. 꼭 두 셋이 빠진다. 그러니 어디 믿을 수 있었겠나?
그런 실정인데도 정보가 왜 필요할까? 저 언덕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산과 바다 너머 저 적의 속셈은 무언지? 그게 궁금하기 때문이다.
정보가 있어야 적의 능력과 의도를 파악하게 되는 거다. 제대로 알면 힘이 된다. “정보가 힘이다”(Intelligence is Power). 정확하고 빠르면 더욱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