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겸 칼럼] ‘마이 홈’의 역설···민주혁명 저지에 이보다 더 좋은 정책은 없었다

[아시아엔=김중겸 전 인터폴 부총재] 19세기 전반기는 왕정을 공고히 하고 민주혁명을 저지하려던 시대였다. 그때 오스트리아와 독일을 중심으로 전개된 정책이 바로 비더마이어 시대의 ‘마이 홈’(my home) 정책이다.

1910년대 일본에도 그 개념이 들어 왔다. 종래에는 집 내부가 다 터져 있었다. 여기서 저쪽으로 가려면 각 방과 실을 다 거쳐 갔다. 사생활, 그런 건 없었다.

서양식의 독립된 방과 공간을 적용했다. 이른바 문화주택이다. 남의 방을 들르지 않고 내 방으로 갈 수 있도록 마루도 만들었다. 프라이버시가 보장됐다. 화장실도 실내로 끌어들였다. 편리해졌다.

1923년 관동 대지진 이후 주택은 방 둘에 식당과 부엌 즉 ‘2DK’(dining room+kitchen)가 기본형이 됐다. 2차대전 후에는 방 셋에 거실과 식당, 부엌의 3LDK(living room+dining room+kitchen)가 보급되기 시작했다.

장항은 일제 때 바다 메워 땅을 늘렸다. 북쪽은 제련소 부지, 남쪽 매립지는 주택단지였다. 문화주택으로 시멘트로 건축했다.

일본의 통일 목전에서 측근에게 암살당한 오다 노부나까와 그 틈을 타 정권을 장악한 도요도미 히데요시가 전국을 통일했다. ‘내 자리를 내 아들에게 물려주어야 하는데 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걸림돌이야. 세력 약화시켜 돼. 손을 쓰자.’ 그리고는 이에야스를 불렀다.

“어이, 이에야스. 저 위 에도지방이 기름진 곳이야. 영지를 그곳으로 바꿀 참이야. 바로 이사 가시게.”

일본 수도 도쿄의 직전 이름이 에도(江戶) 즉 강마을이다. 비옥한 내 고향을 뺏기고 갔다. 습지로 발이 빠지고 농사도 고기잡이도 어렵다. 살집 짓기는 더욱 엄두도 안 났다.

꼼짝없이 굶어 죽게 생기자 측근, 가신부터 삽 들고 나섰다. 산에서 흙을 져 와 황무지를 메웠다. 네덜란드 같은 개발방식이다. 바다 밑(nether)과 땅(land)으로 이뤄진 네덜란드(Netherland)처럼 얕은 갈밭을 메워 사람 사는 곳을 조성했다.

히데요시가 사망하자 아들은 이에야스와 패권 쟁탈전을 벌이다 패배해 자살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천하가 됐다. 그 자손들이 1603~1867년 에도시대를 이어갔다.

이어 메이지유신(明治維新) 시대. 낡은 아시아를 버리고 서양을 따라가는 탈아입구(脫亞入歐), 제국주의 정책을 택했다. 한국을 침탈하면서 장항과 그 건너편 군산에는 일제의 흔적이 많다. 바다 메워 땅을 만든 게 특히 그렇다.

매립지 북과 남 가운데쯤에 초등학교 때 집이 필자 부모의 마이 홈이다. 일본식 목조로 1920년대 모델인 듯하다. 아직도 튼튼하게 남아 누군가 살고 있다.

충남 서천군 화양면 망월리 157 생가는 조부모의 한옥 ‘마이 홈’이다. 대문이 셋, 큰문, 옆문, 그리고 뒤 담벼락 작은 문이 있다. 역시 아직도 견실하다.

미국의 마이 홈은 2차대전 후 꽃을 피웠다. 공병의 군대막사 짓던 능력과 비행장과 다리 건설하던 역량 그리고 스피드와 공기 단축 실력으로 민간건설 사업에 호재로 작용했다.

아울러 주택단지제도도 도입했다. 이곳에 방 둘 즉 침실과 거실에 주방 및 욕실을 구비한 집을 8천달러에 보급했다. 자녀는 대학에 보내고 자가용은 두 대. 아빠는 직장 나가고 엄마는 집안 살림을 했다.

아메리칸 드림, 단지 꿈만이 아니었다. 단순히 생각에 그친 게 아니었다. 현실이었다. “My Dream Come True! drink in one hand, cigarette in the other.”(한 손에 술잔, 한 손에 담배) 기호품 즐기는 시대였다.

후버 대통령 시대엔 음주를 금지했다. 상공부 장관 때 퇴근길에 벨기에 대사관에 들려 친구인 대사와 위스키를 마셨다. 대사관은 외국영토로 분류되기에 적법했다.

술은 밀주도 아니고 질 좋은 수입 고급품으로 마시고 죽을 염려도 없다. 외국 땅에서 외국 술 마신다? 편법이라는 이름의 준법정신으로!

대통령선거 운동 때 금주법은 ‘고상한 실험’이라며 찬성표를 긁어 모아 당선했다.

자신은 남의 집 즉 벨기에대사관에 가서 술 여전히 마시면서도 그럴듯한 표현으로 현혹시켰다. 대통령 되려면 그 정도는 돼야 하다는 듯이.

공적 생활의 윤리기준은 무사성(無私)-청렴성-객관성-설명 책임-공개성-성실성 등이다. 이같은 행동을 솔선수범해야 한다. 1990년대 확립된 영국 국회의원 윤리규범이다. 실제 모든 공공기관에 적용되고 있다. 예컨대 미술관과 박물관도 공공이 이용·하는 열린 공간으로 이 기준에 의해 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다. 영국인들은 지도자에 대한 신뢰가 여기서 우러나온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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