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 관객’은 ‘천만 영화평론 시대’ 예고편?···부산행·인천상륙작전·덕혜옹주·터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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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엔=전찬일 영화평론가·한국외국어대 대학원 겸임교수] <국가대표2>(감독 김종현)는 아직 보지 못했으니 논외로 치자. 외국영화도 언급하지 말자. 목하 대한민국 영화판이, 최근의 찜통 무더위 못잖게 뜨겁다. 무엇보다 몇 주째 열띤 흥행 레이스를 펼치고 있는 몇 편의 한국영화들 때문이다. <부산행>(연상호), <인천상륙작전>(이재한), <덕혜옹주>(허진호), <터널>(김성훈)이 그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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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부산행’

<부산행>은 정체불명의 좀비 바이러스가 발생,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긴급재난경보령이 선포된 와중에 단 하나의 안전한 도시 부산으로 향하는 KTX 안팎에서 벌어지는 ‘재난성 액션스릴러’이자 ‘휴먼드라마’다. 영화는 개봉(7월 20일) 19일만인 8월7일 ‘1000만 영화’에 등극했다. 한국영화로는 14번째, 외국영화까지 포함하면 18번째다. 이러저런 텍스트 내·외적 요인들 덕분일 터.

무엇보다 극적 긴장감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완급을 조합한 연출력이 으뜸 요인임은 굳이 강조할 필요가 없을 듯. 감독은 좀비 캐릭터 등에 내포된 사회비판성 시대적 메시지를 긴박감 넘치는 오락적 재미로 솜씨 좋게 풀어냈다. 재미와 의미의 적절한 결합은, 작금의 거의 모든 국산 흥행 화제작들의 어떤 공통점이라 할 수 있는 바, <부산행>도 예외가 아닌 셈이다.

우리네 인간군상을 대변하는 전형적 성격화(Characterization)도 그 주요변수다. 다채로운 캐릭터들이 보여주는 가족애·연대성·희생성·악마성 등은 ‘호모 사피엔스’의 특질들로 손색없다. 그 특질들을 공유·정유미·마동석·김수안·최우식·안소희·김의성 등 출연진의 실감 호연이 인상적으로 체현한다. 세계 최고영화제인 칸영화제 ‘비경쟁 미드나이트 스크리닝 부문’에서 월드 프리미어 되며 발휘하게 된 ‘칸 이펙트’도, 700만에 근접하는 흥행몰이를 한 나홍진 감독의 <곡성>을 통해, 한국 주류 상업대중영화로서는 낯선 좀비 캐릭터를 대중 관객들이 맛보았다는 점 등도 변수로 작용했을 성 싶다.

긍정적 요인만 있는 건 아니다. 정식 개봉 전 3일간의 주말을 이용해 하루 430개 전후의 스크린에서 무려 56만여 명을 끌어들인 변칙 유료 시사가 가능케 했을, 그래 그 어떤 비판이 가해지더라도 반박하기 힘들 사전 홍보효과도 주요 요인으로 들 수 있을 듯하다. 만약 이 56만여명을 뺀다면 <부산행>의 천만 돌파는 19일째가 아니라 24일째인 12일(금요일)이 된다. 남이야 어떻게 되는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그만이라는 식의 폭력적이며 비도덕적인 신자유주의적 마케팅 전략·전술은 문제적 수작 <부산행>의 치명적 흠으로 두고두고 회자될 공산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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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천상륙작전’

<인천상륙작전>은 ‘1950년 9월15일 국제연합(UN)군이 맥아더의 지휘 아래 인천에 상륙하여 6·25전쟁의 전세를 뒤바꾼 군사작전’ 그 자체보다는 인천으로 가는 길을 확보하기 위해, 국제연합군 최고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리암 니슨 분) 지시로 대북 첩보작전 ‘X-RAY’에 투입된 일군의 해군 첩보부대 스토리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전쟁 드라마다. 개봉(7월27일) 이후 줄곧 크고 작은 논란을 야기시켜온 일방적 반공 이데올로기나 역사왜곡 등이 영화에 대한 전문가들의 혹평에 주된 계기로 작용하고 있음은 두 말할 나위 없다. 하지만 이 점만은 강조하지 않을 수 없을 듯. ‘국책영화’ 냄새 물씬 풍기는 이데올로기적 이유 이전에 실망스러운 완성도가 어느 모로는 유의미한 영화의 의의를 적잖이 퇴색시켰다는 바로 그 사실이다.

기존의 존재감을 무색케 하는 리엄 니슨을 비롯해 첩보부대 리더격인 대위 장학수 역의 이정재, 북한군 인천방어사령관 림계진 역의 이범수 등 주연·조연진에서부터 드러나는 연기의 비균질성(非均質性)이나, 그 원인 격이라 할 수 있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표피적이며 단선적인 인물 해석, 성공확률 5000분의 1로 불가능에 가까운 작전이었다면서 불가능은커녕 하도 술술 풀려나가 성기기 짝이 없는 허점투성이 플롯, 그 결과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실화를 극화했다는 데서 발생하는 극적 긴장감을 무위로 귀결시키는, 완급에 서툰 연출 호흡 등등···. 안타까운 지점이 수두룩하다.

영화는 그럼에도 전문가들의 혹평을 비웃기라도 하듯, 8월13일(토요일)을 기해 600만명 선을 넘어 700만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영화는 결국, 여러모로 전문가들과는 다른 시각으로 영화를 즐기기 십상인, 적잖은 일반대중에겐 꽤 재미있고 감동적으로 다가선 셈이다.

17일 새벽 기준으로 일부 영화 전문가들의 평균 평점이 10점 만점에 3.41점인데 반해 관람객 평점이 8.57점으로 꽤 높다는 사실이 그 증거일 테다. 헌데 30억원을 투자했다는 KBS측이 수억, 아니 수십억에 값할 홍보에 노골적으로 나서왔다고 한다. ‘공영방송’이 그래도 되는 건지 하는 생각은 나만의 것은 아닐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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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덕혜옹주’

한편 <덕혜옹주>는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전기성 서사드라마다. 영화는 옹주(손예진)을 축 삼아, 어릴 적엔 친구였고 청년시절엔 일본군으로 위장한 독립군이었으며 해방 이후 나이 들어서는 대한민국 기자로 옹주의 귀향을 위해 동분서주했던 김장한(박해일), 옹주의 충실한 하녀이자 평생동료였던 복순(라미란), 대한제국 독립을 꿈꾸는 김장한의 동료 복동(정상훈) 등 다양한 캐릭터들의 사연 많은 스토리를 펼쳐 보이면서 대한민국의 가슴 아픈 과거와 현재를 냉철하게 투영·반성한다. 영화는 묻는다. “덕혜옹주를 아십니까?” 그리고는 영화에 대해 간략히 설명한다. “그녀를 아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중략) 권비영 작가의 소설 <덕혜옹주>를 원작으로 하며,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더해 만들어진 팩션(Fact+Fiction)으로 스토리에 활력을 더했다.

“영화 <덕혜옹주>는 기록에 남아있지 않은 ‘덕혜옹주’의 불운했던 삶, 그리고 그 속에서도 평생 고국으로 돌아오고자 했던 그녀의 모습을 그려내려” 했다. <덕혜옹주>는 단적으로 “<8월의 크리스마스>의 시대극 버전”이(라는 게 내 총평이)다. 무엇보다 생략과 절제를 겸한 연출 호흡이 그 걸작 멜로를 영락없이 빼닮았다. 120여분의 짧지 않은 러닝타임에도 플롯 상 군더더기가 거의 없다. 특히 해방 전까지만 해도 매국에 앞장서며 서사적 비중에서도 꽤 큰 캐릭터 한택수(윤제문)를, 해방 후 잠깐 보여주고 넘어가는 플롯의 압축미는 압도적이다. 그런데도 영화는 개봉(3일) 14일만인 16일 400만선을 돌파 500만선을 향해 순항 중이다.

덕혜옹주라는 캐릭터부터가 매혹적이다. 감독의 말마따나 한때 아이돌그룹처럼 반짝 관심을 끌기도 했으나, 만 13세인 1925년 일본으로 강제 유학 후 생애 대부분을 거의 잊힌 채 살다, 정치적 이유로 고향 땅을 밟는데 수십년 세월을 보내야 했던 비운의 여인. 그 여인의 삶은 아주 특별했으나, 그 안에는 우리네 보통사람들도 겪기 마련인 삶의 비극성이 내포돼 있다는 점에서 보편적이다. 그 특수성 겸 보편성이 기대 이상의 흡인력을 발산한다. 더욱이 그 역할을 다름 아닌 손예진이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배역의 만만치 않은 무게를 성공적으로 견뎌내면서. 박해일·라미란·정상훈·윤제문 등도 제 몫을 100% 수행했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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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터널’

마지막으로 <터널>은 한건 올리고 딸의 생일케이크를 싣고 집으로 가는 길, 갑자기 붕괴된 터널 안에 갇히게 된 자동차 대리점 영업과장인 한 남자와 그의 구조를 둘러싸고 변해가는 터널 밖의 이야기를 그린 재난드라마다.

보도자료를 빌려 영화에 대해 소개하면, “믿고 보는 배우 하정우, 배두나·오달수와 <끝까지 간다> 김성훈 감독의 만남으로 제작 당시부터 화제를 모아온 올 여름 최고의 기대작이다. 여름 대작 전쟁 속에 가장 마지막 주자로 나선 <터널>은 거대한 재난·수많은 희생자·영웅 면모를 지닌 주인공 등 일반적인 재난영화가 가진 공식을 과감히 비튼 색다른 재난 드라마로, 언론과 평단으로부터 ‘새로운 한국형 재난물의 탄생’이라는 뜨거운 호평을 받으며 관객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중이다.”

영화를 보며 수준급 연출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가슴 아픈 드라마로 그렇게 유쾌한 웃음을 안겨주다니···. 이 시대의 권력층을 향해 확실히 한방 먹이면서도, 극적 페이스를 잃지 않은 채 말이다. 사실 난 <끝까지 간다>를 다소 맹목적이라고 평했던 터라, <터널>은 우리 대중 상업영화가 가야 할 어떤 정점을 찍었다고 여기고 있다. 류승완 감독의 <베테랑>처럼!

<터널>은 창의적(Creative) 각색, 창의적 연출이 어떤 것인가도 여실히 보여준다. 영화의 토대가 된 소재원의 원작소설 <터널: 우리는 얼굴 없는 살인자였다>는 세월호 사건 발발 8개월여 전에 발간됐다. 하지만 영화 <터널>은 시종 세월호 사건을 상기시키고 시사해주고 있다.

그렇다고 영화가 세월호에만 머무는 것은 아니다. 영화가 제시하는 메시지는 세월호를 포함한 ‘안전불감증 공화국’ 대한민국을 향한 통렬한 비판이다. 영화의 터널 밖 세상은 우리네 사회와 다름없다. 연상호 감독이 그렇듯, 기본적으로 영화는 엔터테인먼트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 그가 선택한 방법론은 오락적 풍자(Allegory) 내지 비유(Analogy)다. <터널>은 따라서 알레고리 및 아날로지로서 비판적이면서도 오락적인 다층적 텍스트라 할 수 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감독 김성훈에게서 그렇게 기다리던 ‘포스트 봉준호’의 가능성을 감지했던 건 그래서였다. <터널>은 개봉(10일) 6일만인 15일 300만을 넘어 400만선을 향해 질주 중이다,

<부산행>에서 <터널>에 이르는 네 편의 영화들은 오늘날의 한국영화와, 한국영화 관객의 ‘어떤 현재’를 웅변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이들은 우선 이 땅의 4대 메이저 투자배급사의 산물이다. 순서대로 말하면 뉴(N.E.W.), CJ엔터테인먼트, 롯데엔터테인먼트, 쇼박스다. 총제작비 기준으로 한결같이 100억원 이상이 투하된 한국형 블록버스트들이다. 매체에 발표된 총제작비/순제작비는 <부산행> 115억/86억, <인천상륙작전> 170억/147억, <덕혜옹주> 110억/85억, 터널 100억/77억원이다. 최종 스코어는 좀더 두고 봐야겠지만, 이들 모두 손익분기점을 넘어 제법 큰돈을 벌어들일 게 틀림없다. 그 결과 날로 심화되고 있는 빈익빈부익부 현상은 한층 더 심화될 게 뻔하다. 독과점의 강도도 한결 더 강해질 것이다. 찾아보니 <덕혜옹주>만 아니었지 세 영화 모두 최대 스크린 수가 1000개 이상이었으며, <부산행>은 1800개에 육박했다.

네 영화의 흥행성공은 한국영화 관객의 영화보기 성향에 대해서도 시사하는 바가 적잖다. 이들은 소재나 장르 등에서 꽤 다르지만 공통점 또한 지니고 있다. 보수적이건 비보수적이건, 체재 비판적이건 순응적이건, 웰메이드든 非웰메이드든 간에 예외 없이 시대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역설컨대 시대적 의미를 오락영화적 재미와/나 감동으로 잘 포장해 관객에게 전달한다는 것이다. 영화적 수준에서 평균이하의 평가를 받은 <인천상률작전>도 예외는 아니다.

혹자는 <인천상륙작전> 같은 수준 이하의 영화가 600만이 넘는 대성공을 거둔다고 대한민국 관객의 수준을 탓하기도 한다. 만약 한국관객들이 <인천상륙작전>만 성원하고 다른 세 편의 영화를 외면했다면 한국 대중관객을 향한 위의 비난은 합당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니지 않는가. 그렇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한국영화 관객들은 한국영화와, 한국사회 전체 구성원들처럼 다채로울 대로 다채로와진 것이다. 그만큼 모순적이면서도 역동적이라고 할까. 이쯤 되면 <부산행>에서 <터널>에 이르는 4편은 한국영화와 한국영화 관객의 ‘어떤 현재’를 증거한다고 주장해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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