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상우 감독 ‘광주 5·18’ 독립다큐 ‘김군’···‘택시운전사’, ‘화려한 휴가’ 이은 역작

영화 ‘김군’의 한 장면

[아시아엔=전찬일 아시아엔 대중문화 전문위원, 영화‧문화콘텐츠 비평가, 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회장]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발발하기 3일 전인 1980년 5월 15일, 전국학생연대가 서울역에 모여 대규모 민주항쟁 시위를 벌였을 때 나는, 근처 종로학원에서 재수 중이었다. 박정희의 전체주의적 유신교육에 쪄들 대로 쪄든 나는, 대학생들이 하라는 공부는 않고 왜, 소위 ‘데모’나 일삼는지 거의 이해할 수 없었다. 부모나 학교는 말할 것 없고, 내 주변의 그 누구로부터도 의식화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1979년 12월12일 고3 수업 중 중앙정보부(현 국정원) 부장 김재규에 의한 독재자 박정희의 암살 소식을 들었을 때도 창밖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릴 정도였으니, 더 말해 뭣하겠는가. 영락없이 <택시운전사>(장훈 감독, 2017)의 그 택시운전사 김만섭/김사복과 별반 다를 바 없었다.

39번째 ‘기(념)일’을 맞이하며 그 민주화운동이 그 어느 때보다 남다른 함의를 띠고 다가서는 것은 어인 일일까. 서울 출신이라 지역적 연고도 없을뿐더러, 上記 만섭처럼 그 역사적 항쟁에는 제3자요 아웃사이더에 지나지 않았으면서? 언제부터인가 나를 사로잡고 있는, 일제 식민교육이나 분단현실 등이 안겨주는 ‘역사의 무게’ 같은 거창한 명분 따위는 들먹거리지 않으련다.

강상우 감독 ‘김군’

그 무엇보다 이 영화 때문이다. 그 간의 경우들과는 또 다른 시선‧스타일로 그 한국현대사의 비극을 진지하게 짚은 저예산 독립 다큐멘터리 <김군>(강상우)이다.

영화는 지난해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첫 선을 보인 이후, 2018 제23회 인천인권영화제에 초청 상영됐고, 제44회 서울독립영화제에서는 경쟁부문 대상을 안았다. 5월 23일부터는 일반 개봉도 됐다. 24일부터 3일간 군산시와 서천군에서 열리는 제2회 금강역사영화제에서도 선보였다. 필자는 금강역사영화제 집행위원 겸 객원 프로그래머로 프로그램 노트에도 진단했듯, ‘5·18 영화’는 멀게는 이은, 장동홍, 장윤현 (공동)감독의 <오! 꿈의 나라>(1989)부터 가까이는 박기복 감독의 <임을 위한 행진곡>(2018)에 이르기까지 15편쯤 된다고 한다.

<김군>은 대중적 영향력 면에서 주저 없이 내세울 수 있을 <택시운전사>나 <화려한 휴가>(김지훈, 2007)에 이어 ‘주목할 만한’ 또 한편의 광주민중항쟁 영화로 기록될 공산이 크다. 흥행 성적이나 비평적 호불호와 상관없이 말이다. <김군>의 모든 건 항쟁 당시 찍혔던 한 장의 사진에서 출발했다. 영화는 어느 무장 시민군의 행방을 추적한다. 광주를 직·간접적으로 겪었던 적잖은 실제 인물들을 인터뷰하면서 펼치는 추적을 통해 영화는 “한 이름 없는 청년이 어떻게 항쟁에 참여하게 되었고, 왜 총을 들었으며, 이후에 어디로 사라졌는가에 대한” 답을 제시한다.

영화는 꽤 정교한 편집, 공들인 OST 연출 등 다채로운 영화적 기교들을 동원한다. 그 기교들은 이 문제적 다큐를 돋보이게 하는 美德이면서 동시에 중립적‧객관적이고자 무던히 애쓰는 영화의 작의(作意)에 적잖이 위배되는 흠으로 비칠 수도 있다.

‘김군’은 특정인이라기보다는, 항쟁의 모든 주역을 가리키는 보편적 호칭임은 물론이다. 그런 청년을, 한 극우인사는 600명에 달하는 북한특수군 ‘광수들’ 가운데 그 첫 호인 ‘제1광수’라고 명명한다. 망언만들기를 주도하는 등 광주민주화운동을 앞장서 왜곡해온, 현 ‘500만야전군 의장’이며 ‘시스템클럽 대표’라는 군 출신 극우 군사평론가의 주장이 얼마나 터무니없는가는 명백하다. 그 점은 비록 지지부진한 상태이긴 해도 법적으로도 드러났다.

마침 그가 허위사실을 유포시켜 5‧18 광주시민들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를 받고 있어도 재판 시작 3년이 다 돼가도록 법원은 결론을 내지 않고 있다. 그 사이 또 다른 망언들이 계속되면서 왜곡과 고통이 커지고 있다는 취지의 언론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영화 <김군>은 바로 그 극우논객 지만원을 단죄하지 않는다. 설득력 여부에 아랑곳없이 그의 입장 또한 충분히 전하겠다는 의도를 대놓고 드러낸다. 가능한 객관적이며 중립적이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랄까. 영화의 관객들 중에는 ‘태극기 부대’로 통칭되는 또다른 지만원도 적잖을 터.

그와 같은 영화의 시각은 신중한 것일까, 애매한 것일까? 아니면 비겁한 것일까? 정치적 입장 없는 역사다큐란 존재할 수 없기에 던져보는 의문이다. 모든 판단은 관객들의 몫임은 두 말할 나위 없다.

감독 강상우는 1983년 서울 출생으로, 대학에서 물리학과 컴퓨터과학을 전공한 뒤 프로그래머로 활동하던 중 영화만들기에 뛰어들었다. <만신>(박찬경, 2013)의 연출부, <위로공단>(임흥순, 2014)의 촬영을 거친 후 연출한 <우리는 없는 것처럼>(2016), <클린 미>(2014), <안마도>(2014) 등의 단편들은 뱅쿠버영화제, 서울국제실험영화제, 국립현대미술관 등에서 선보였다. <김군>은 그의 첫 장편 다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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