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윤 감독·배우 정우·강하늘·김해숙의 영화 ‘재심’···박준영 변호사·이대욱 기자 만나 ‘빛 보다’
[아시아엔=전찬일 <아시아엔> 문화비평 전문기자] 재심(再審, new trial)은 “확정된 판결에 대하여 사실인정에 중대한 오류가 있는 경우에 당사자 및 기타 청구권자의 청구에 의하여 그 판결의 당부(當否)를 다시 심리하는 비상수단적인 구제방법”이다.
“확정판결에 대한 구제수단이라는 점에서 항소·상고와 구별되며, 사실인정의 오류를 시정한다는 점에서 법령의 해석적용의 잘못을 시정하는 비상상고와도 구별된다. 비상구제방법이므로 법령에 정한 사유에 한하여 그 신청을 허용한다.”(네이버 지식백과)
정우, 강하늘, 김해숙, 이동휘, 한재영 주연·조연, 김태윤 감독(<또 하나의 약속>)의 <재심>은 아주 특별한 실제 재심을 극화한 휴먼 드라마다. 2000년 익산 약촌 오거리에서 발생했던 택시기사 살인사건, 즉 ‘사실’(Fact)에 영화적 상상력, ‘허구’(Fiction)를 가미해 그 사건이 재심에 이르게 되는 드라마틱한 과정을 재구성한 ‘팩션(Faction) 영화’다.
사실 영화 이전에 일명 ‘약촌 오거리 사건’의 재심이 이뤄지고, 그 재심이 영화화된 과정 자체가 한 편의 드라마라 할 만하다. 자료를 빌려 그 과정을 자세히 소개해보자.
2000년 8월 10일 새벽 2시경, 전북 익산 약촌 오거리에서 택시기사가 12차례나 칼에 찔린 채 무참히 살해당하는 끔찍한 사건이 발발한다. 경찰은 동네 다방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던 열다섯살 소년으로부터 한 남자가 뛰어가는 것을 목격했다는 진술을 확보한다. 하지만 3일 후, 소년은 용의자가 돼 수사를 받는다. 수사 결과 경찰은 “소년이 택시기사와 말싸움을 하다 택시기사를 잔인하게 살해하고 증거를 인멸한 뒤, 목격자인 것처럼 보이려고 다시 돌아와 경찰에 진술을 했다”고 밝힌다.
이후 소년은 15년형을 선고받고 투옥돼, 수감 중 하게 된 ‘거짓 자백 덕’에 5년을 감형 받아 10년의 형기를 마치고 출소한다??.
한 개인의 억울한 사연으로 치부되고 넘어갔을 사건이 재조명받게 된 계기는 어느 방송 프로그램이었다. SBS의 추적 탐사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2013년 6월 15일(898회), 2015년 7월 18일(994회) 2회에 걸쳐 그 사건의 전말을 중점적으로 다룬 것. 그 프로그램에 의하면, ‘증거 없는 자백’만으로 목격자를 살인자로 둔갑시켜 한 청춘의 삶을 짓밟았던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경찰과 검찰, 법원이 3년 후 체포된 유력한 용의자를 ‘증거 없는 자백’이라는 동일한 이유를 들어 풀어주었다는 것 아닌가. 믿어지는가?
영화 <재심>은 도저히 믿기 힘든 그 드라마틱한, 너무나도 드라마틱한 사연을 설득력 가득히 극화하는데 성공했다. 영화화의 출발은 그 사건을 취재하던 SBS 이대욱 기자의 제안. “억울한 누명을 쓴 한 친구가 있는데, 이 친구의 이야기를 한번만 들어봐 달라”는 진심 어린 요청이 제작진을 움직인 것이다. “재심이 이루어질지 모르겠어. 사실 형사사건이 재심이 되는 건 극히 드물거든. 하지만 아니잖아. 법이 해결하지 못한다면, 사람들이라도 최군이 살인범이 아니라는 걸 알았으면 해. 최군은 현실을 살아갈 거고,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될 거야. 살인범이라는 멍에를 벗겨주고 싶어.”
자료들에 근거해 이렇게 상술하고 있지만, <조작된 도시>도 그렇고 사실 영화 <재심>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두 영화 모두 매체 시사를 놓쳤지만, 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내 주변에는 두 영화를 추천하기는커녕 언급하는 이조차 거의 없었다.
영화를 좋아하는 한 제자가 <조작된 도시>가 볼만했다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며칠 전 부산에 갔다 약속까지 시간이 나 영화관을 찾은 것도 실은 <조작된 도시>를 볼까, 해서였다. 하지만 시간이 맞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재심> 티켓을 끊었다. 명색이 영화전문가라면서, 부끄럽게도, 시간 때우기용으로 영화를 선택한 것이었던 셈이다. 헌데 웬걸, 영화 도입부부터 눈길을 잡아끄는 게 아닌가. 연출 호흡부터가 단연 주목감이었다. 실제 사건을 전혀 모르고 보더라도 영화 속으로 몰입하기에 충분했다. 여러 장치에 의해 비판적 거리를 견지하면서 말이다.
현우(강하늘)와 준영(정우) 사이를 오가는 극적 완급도, 개별 캐릭터의 성격화도, 그 캐릭터들을 연기하는 배우들의 연기도 혹할 만했다. 현우와 정우 두 캐릭터의 대조적 사연을 둘러싸고 긴장과 이완이 적절히 오가다 서서히 두 인물 간에 조성되는 연대를 지켜보는 맛이 여간 진하지 않다. 사법 정의와는 무관하게 오로지 돈도 벌고 자리를 확보하기 위해 마지못해 현우의 사건을 맡게 된 준영이 점차 사법 정의로 기울어지고, 변호사로서의 사명감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설사 심심치 않게 맛볼 수 있는 식상한 설정이라도 해도, 가슴 벅차다.
세상이 너무 야속해 마음 문을 닫고 살던 현우가 준영의 진심을 접하며 끝내 그 문을 여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플롯이나 성격화 차원에서만 그런 게 아니다. 두 청춘 배우의 인물해석도 만족스럽다.
당장 <동주>의 강하늘이 반갑다. 윤동주와는 판이하게 다른 캐릭터이거늘, 그 고통이 동주의 고통 못지않을 터기에 그 사연의 흡인력이 배가된다. <바람>(2009) 이후 제대로 출연 영화를 본 적 없는 정우도 반갑기는 마찬가지다. 영화의 실존인물 박준영 변호사와는 적잖이 다른 이미지를 투영시켰을 정우(와 감독)의 탄력적 인물 소화는, 자칫 지나치게 무거워져 버거워질 수도 있을 영화보기를 덜 힘겹게 하면서, ‘좋은 영화’라면 의당 지녀야 할 일말의 거리감을 조성한다.
준영과 정우는 영락없이 <변호인>의 송우석과 송강호의 ‘리틀 버전’이다. 두 주인공 캐릭터와 연기자들의 어떤 ‘기시감들’은, 여느 영화들과는 달리 흠은커녕 으뜸 덕목으로 비상한다.
다른 배우들은 어떤가? 연기력에선 더 이상 부연설명이 필요 없을 김해숙은 현우의 엄마 순임 역으로 <마더>의 도준 母 김혜자나 <변호인>의 진우 모 김영애 등과 나란히 서기 부족함 없다. 준영의 친구 변호사 모창환 역의 이동휘는 비중 있는 감초 역할로 영화의 질감을 한층 더 풍성하게 만든다.
한국 영화사상 최고 ‘악질 경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백철기역을 실감 넘치게 구현한 안재영은 어떤가. 개인적으로는 이번에야 비로소 주목하게 된 그 존재감은, 그 속내는 크게 달라도 <더 킹>에서의 최두일역 류준열에 버금간다. 그는 선-악의 구분이 모호해질 대로 모호해진 이 시대에 악당 캐릭터의 진면모를 맘껏 뽐낸다. <배드 캅>(아벨 페라라 감독)에서의 하비 카이틀이나, <레옹>(뤽 베송)의 게리 올드만 등을 연상시키면서 말이다.
영화 <재심>의 덕목은 그러나 영화 텍스트 안에만 머무는 것은 아니다.
우연찮게 조우한 영화에서 기대를 훌쩍 뛰어넘는, 상당 기간 오래 지속될 크고 깊은 감흥을 맛보게 된 요인들은 텍스트 바깥에도 존재한다. 영화를 만든 이들이 제작 노트에도 밝혔는 바, “영화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목표인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뜨거운 진심”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이다. 그 진심은 <도가니>나 <부러진 화살>부터 <내부자들>과 <더 킹>에 이르는 2010년대 이후 선보인 일련의 사회고발성 문제작들에 공통적으로 관류하는 한국 영화의 공론장(public sphere)적 속성과 맥을 함께 한다.
오락 및 산업으로서 자유로울 수 없는 대중 상업영화의 ‘본분’을 잃지 않으면서도, 우리 시대가 요청하는 크고 작은 정치·경제·사회·문화적 문제의식과 의미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일군의 한국 영화인들의 자존심 내지 자부심의 표출이랄까.
고백컨대 이렇게 뒤늦게나마 <재심>에 대해 이런 소회를 피력하는 것도 그 진심에 동참하고 싶어서다.
<재심>은 작금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왜 터졌는지를 웅변해주는 사례로도 손색없다. 그 게이트를 파헤치는 특검의 수사나, 헌법재판소의 탄핵 관련 재판을 에워싸고 벌어지고 있는 부끄럽기 짝이 없는 아수라판 등은 영화 속 드라마가 현재진행형이란 사실을 증거한다. 단언컨대 영화 속 사건의 진상은 충격을 넘어 절망을 안겨주기에 모자람 없다. 누명만으로도 인내키 어려운 공분이 일거늘 진범이 밝혀졌는데도 경찰-검찰-사법부가 작당해 사건을 덮어버렸다는 이 나라의 현실 앞에서 어찌 절망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럴 가능성이 열다섯 최군에서 30대 초반의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된 최씨 외에도 얼마든지 존재할 거라는 데 생각이 미치면 그 절망감은 더 커진다. 그래서일까, 영화를 보는 내내 사법 정의가 아니라 ‘사적 복수’를 욕망하기도 했다.
당혹스럽게도. 그 점에서 2016년 11월 17일, 16년만의 재심에서 사건의 진실에 부합하게 무죄가 선고됐다니, 감사할 따름(이라면 과도한 감상일까).
<재심>은 그러나 공분·고발에만 그치지는 않는다. 정우가 인터뷰에서 역설했듯 위안을 던져주면서 희망을 제시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비록 그 수가 많진 않더라도, 이 세상에는 박준영 변호사나 이대욱 기자, 김태윤 감독, 정우 강하늘 김해숙 등 좋은 배우들 포함해 영화를 함께 만들어낸 적잖은 이들 등, 더 나은 세상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뜻 깊은 의인들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현실을 영화가 입증하는 것이다.
문득 밀려드는 의문. 도대체 정의란 무엇일까? 인간이란 어떤 존재기에 그토록 불의하며 악마적일 수 있을까? 이 참에 읽다만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이창신 옮김, 김영사, 2011년 9월, 1판 190쇄)나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 인간 역사의 대담하고 위대한 질문>(조현욱 옮김, 이태수 감수, 김영사, 2015년 11월) 등을 다시 꺼내 통독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