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한국영화 결산②] ‘무현, 두 도시 이야기’···박근혜와 노무현 누가 “참 나쁜 대통령?”
[아시아엔=전찬일 영화평론가, 한국외국어대 대학원 글로벌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그 간의 삶의 직·간접적인 경험을 통해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그 속내가 하도 사실적·공포적…이어서 그 충격을 어찌 형용키 힘들다. 말단 직원부터 일선 검사들을 거쳐 최고위 공직자인 청와대 비서실장 및 국정원장까지 이르는, 간첩 조작 사건의 주·공범들의 철면피성을 지켜보다 보면, “이게 나라냐!”라는 절망적 장탄식을 내뱉지 않기 불가능하다. 일국의 현직 대통령이 목하 드러내고 있는 후안무치를 감안하면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말이다. 일찍이 20세기 최고 사상가이자 철학자인 한나 아렌트가 악의 평범성·편재성 등을 역설한바, 아예 ‘호모 사피엔스’ 자체에 대한 근본적 회의에 빠질 만도 하다. 판단컨대 이런 유의 고발성 다큐에는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을, 더러 세련미까지 뿜어내기도 하는 추적 스릴러적 플롯이나 OST 등의 영화적 장치가 아니라면, 영화가 안겨주는 그 절망감을 감당치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이렇듯 그 어느 공포영화보다 공포스러운 <자백>도 10월 13일 전국 125개 스크린에서 개봉돼 총 330회 상영되며 7천8백여 명을 불러 모았다. 박스 오피스 순위는 7위. 10월 26일 개봉된 <무현>은 하지만 <자백>의 4분의 1선인 31개 스크린에서 총 67회 상영되는데 그쳤다. 관객 수도 1천4백에 채 못 미쳤다. 박스 오피도도 11위에 지나지 않았다. 이쯤 되면 지금과 같은 <무현>의 ‘대박’은 기대하기 무리였다. 검열적 정권의 위세 앞에 짓눌려 어떻게든 스크린을 내주지 않으려던 극장들의 높은 장벽 앞에서 속수무책이기 십상이었다. 하지만 뜻 있는 관객들의 은은하지만 지속적인 성원에 힘입어, <자백>이 그랬던 것처럼 <무현>도 현실의 숱한 장벽들을 이겨내고 기적적 성과를 올렸다. 그리고 그 성과는 현재진행형이다. 개봉 이후 박스 오피스 순위는 줄곧 10위 안에 위치하고 있다. 스크린 수도 서서히 늘어나 100개 전후를 유지하고 있다. 이러니 어찌 역사적 대기록이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시사 다큐는 아니나 그 영화적 의미 면에서는 <자백>과 <무현> 못지않게 유의미한 <시소>로 눈길을 돌리면, 위 두 다큐의 처지는 양호하다 못해 호사스러운 감마저 있다. 40대 중년의 두 장애남의 가슴 시린 우정 이야기. 11월 10일 개봉한 영화는 <무현>보다 18개 많은 49개 스크린에서 개봉됐으나, 안타깝게도 4백 명도 채 들지 않았다. 21일에는 5개 스크린에서 총 7회 상영되며, 38명밖에 찾지 않았다. 누적 총 관객 수는 5천여 명. <자백>과 <무현>과 비교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다. 허나 다양성 영화의 성공 기준이 과거에는 1만명이었던데 반해 요즘엔 5천 명으로 그 기대치가 낮아졌다(11월 4일 경향신문 22면,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성공의 기준” 참고)는 현실을 고려하면 실패라 단정하기 주저되는, 역시 귀한 성취다.
보도자료를 빌려 영화 속으로 다소 깊이 들어가 보자. 두 중년남의 운명적 조우는, 망막색소변성증으로 시력을 잃은 재즈 뮤지션 이동우에게 걸려 온 한 통의 전화로부터 시작된다. 어느 날 그는 천안에 사는 40대 남자로부터 망막 기증 의사를 전달받는다. 사연의 주인공은 혼자서는 몸을 움직이기조차 힘든 근육병 장애를 가진 임재신. MBC에서 방영된 <휴먼다큐 사랑-내게 남은 5%>에서 딸의 모습을 한 번만이라도 보고 싶어 하는 이동우를 보고 연락을 해 온 것. 자신의 병으로 인해 너무 일찍 철들어 버린 딸에 대한 미안함과 애틋함, 남다른 애정을 임재신 자신도 딸을 가진 아버지로서 그 마음을 잘 이해하고 공감하기에 “내 남은 5%를 저 사람에게 주면 100%가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며 마지막 남아 있는 시력을 이동우에게 기증하고 싶다는 뜻을 밝히게 된 것. 이런 임재신의 마음에 이동우는 처음에 너무 큰 충격을 받아 한동안 말을 잇기조차 힘들었다고 전했다. 그래 그 사람을 직접 만나고 싶다는 생각에 임재신을 찾아가고, “나는 하나를 잃고 나머지 아홉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데, 그분은 오직 하나 남아있는 것마저 주려고 했다”라며 임재신과 진정한 친구가 되기 위해 특별한 여행을 떠난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