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재심’···’약촌 오거리 사건’ 재심 과정 통해 부패공화국 고발

2일 오후 서울 CGV왕십리에서 열린 영화 ‘재심’ 언론배급 시사회 및 기자간담회에서 김태윤 (왼쪽부터)감독, 배우 강하늘, 김해숙, 정우, 이동휘, 한재영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 ‘재심’은 대한민국을 뒤흔든 목격자가 살인범으로 뒤바뀐 사건을 소재로 벼랑 끝에 몰린 변호사 준영과 살인 누명을 쓰고 10년을 감옥에서 보낸 현우가 다시 한번 진실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현재진행형 휴먼드라마다.

[아시아엔=전찬일 <아시아엔> ‘문화비평’ 전문기자] 재심(再審, new trial)은 “확정된 판결에 대하여 사실인정에 중대한 오류가 있는 경우에 당사자 및 기타 청구권자의 청구에 의하여 그 판결의 당부(當否)를 다시 심리하는 비상수단적인 구제방법”이다.

“확정판결에 대한 구제수단이라는 점에서 항소·상고와 구별되며, 사실인정의 오류를 시정한다는 점에서 법령의 해석적용의 잘못을 시정하는 비상상고와도 구별된다. 비상구제방법이므로 법령에 정한 사유에 한하여 그 신청을 허용한다.”(네이버 지식백과)

정우, 강하늘, 김해숙, 이동휘, 한재영 주연·조연, 김태윤 감독(<또 하나의 약속>)의 <재심>은 아주 특별한 실제 재심을 극화한 휴먼 드라마다. 2000년 익산 약촌 오거리에서 발생했던 택시기사 살인사건, 즉 ‘사실’(Fact)에 영화적 상상력, ‘허구’(Fiction)를 가미해 그 사건이 재심에 이르게 되는 드라마틱한 과정을 재구성한 ‘팩션(Faction) 영화’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오른쪽 두번째), 박준영 변호사(오른쪽), 김태윤 감독(왼쪽 두번째), 김종대 인혁당 재건위 사건 피해자가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CGV에서 영화 ‘재심’ 관람을 앞두고 기념촬영 하고 있다. 2017.02.24.

사실 영화 이전에 일명 ‘약촌 오거리 사건’의 재심이 이뤄지고, 그 재심이 영화화된 과정 자체가 한 편의 드라마라 할 만하다. 자료를 빌려 그 과정을 자세히 소개해보자.

2000년 8월 10일 새벽 2시경, 전북 익산 약촌 오거리에서 택시기사가 12차례나 칼에 찔린 채 무참히 살해당하는 끔찍한 사건이 발발한다. 경찰은 동네 다방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던 열다섯살 소년으로부터 한 남자가 뛰어가는 것을 목격했다는 진술을 확보한다. 하지만 3일 후, 소년은 용의자가 돼 수사를 받는다. 수사 결과 경찰은 “소년이 택시기사와 말싸움을 하다 택시기사를 잔인하게 살해하고 증거를 인멸한 뒤, 목격자인 것처럼 보이려고 다시 돌아와 경찰에 진술을 했다”고 밝힌다.

이후 소년은 15년형을 선고받고 투옥돼, 수감 중 하게 된 ‘거짓 자백 덕’에 5년을 감형 받아 10년의 형기를 마치고 출소한다⋯⋯.

한 개인의 억울한 사연으로 치부되고 넘어갔을 사건이 재조명받게 된 계기는 어느 방송 프로그램이었다. SBS의 추적 탐사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2013년 6월 15일(898회), 2015년 7월 18일(994회) 2회에 걸쳐 그 사건의 전말을 중점적으로 다룬 것. 그 프로그램에 의하면, ‘증거 없는 자백’만으로 목격자를 살인자로 둔갑시켜 한 청춘의 삶을 짓밟았던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경찰과 검찰, 법원이 3년 후 체포된 유력한 용의자를 ‘증거 없는 자백’이라는 동일한 이유를 들어 풀어주었다는 것 아닌가. 믿어지는가?

영화 <재심>은 도저히 믿기 힘든 그 드라마틱한, 너무나도 드라마틱한 사연을 설득력 가득히 극화하는데 성공했다. 영화화의 출발은 그 사건을 취재하던 SBS 이대욱 기자의 제안. “억울한 누명을 쓴 한 친구가 있는데, 이 친구의 이야기를 한번만 들어봐 달라”는 진심 어린 요청이 제작진을 움직인 것이다. “재심이 이루어질지 모르겠어. 사실 형사사건이 재심이 되는 건 극히 드물거든. 하지만 아니잖아. 법이 해결하지 못한다면, 사람들이라도 최군이 살인범이 아니라는 걸 알았으면 해. 최군은 현실을 살아갈 거고,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될 거야. 살인범이라는 멍에를 벗겨주고 싶어.”

자료들에 근거해 이렇게 상술하고 있지만, <조작된 도시>도 그렇고 사실 영화 <재심>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두 영화 모두 매체 시사를 놓쳤지만, 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내 주변에는 두 영화를 추천하기는커녕 언급하는 이조차 거의 없었다.

영화를 좋아하는 한 제자가 <조작된 도시>가 볼만했다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며칠 전 부산에 갔다 약속까지 시간이 나 영화관을 찾은 것도 실은 <조작된 도시>를 볼까, 해서였다. 하지만 시간이 맞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재심> 티켓을 끊었다. 명색이 영화전문가라면서, 부끄럽게도, 시간 때우기용으로 영화를 선택한 것이었던 셈이다. 헌데 웬걸, 영화 도입부부터 눈길을 잡아끄는 게 아닌가. 연출 호흡부터가 단연 주목감이었다. 실제 사건을 전혀 모르고 보더라도 영화 속으로 몰입하기에 충분했다. 여러 장치에 의해 비판적 거리를 견지하면서 말이다.

현우(강하늘)와 준영(정우) 사이를 오가는 극적 완급도, 개별 캐릭터의 성격화도, 그 캐릭터들을 연기하는 배우들의 연기도 혹할 만했다. 현우와 정우 두 캐릭터의 대조적 사연을 둘러싸고 긴장과 이완이 적절히 오가다 서서히 두 인물 간에 조성되는 연대를 지켜보는 맛이 여간 진하지 않다. 사법 정의와는 무관하게 오로지 돈도 벌고 자리를 확보하기 위해 마지못해 현우의 사건을 맡게 된 준영이 점차 사법 정의로 기울어지고, 변호사로서의 사명감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설사 심심치 않게 맛볼 수 있는 식상한 설정이라도 해도, 가슴 벅차다.

세상이 너무 야속해 마음 문을 닫고 살던 현우가 준영의 진심을 접하며 끝내 그 문을 여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플롯이나 성격화 차원에서만 그런 게 아니다. 두 청춘 배우의 인물해석도 만족스럽다.

당장 <동주>의 강하늘이 반갑다. 윤동주와는 판이하게 다른 캐릭터이거늘, 그 고통이 동주의 고통 못지않을 터기에 그 사연의 흡인력이 배가된다. <바람>(2009) 이후 제대로 출연 영화를 본 적 없는 정우도 반갑기는 마찬가지다. 영화의 실존인물 박준영 변호사와는 적잖이 다른 이미지를 투영시켰을 정우(와 감독)의 탄력적 인물 소화는, 자칫 지나치게 무거워져 버거워질 수도 있을 영화보기를 덜 힘겹게 하면서, ‘좋은 영화’라면 의당 지녀야 할 일말의 거리감을 조성한다.

준영과 정우는 영락없이 <변호인>의 송우석과 송강호의 ‘리틀 버전’이다. 두 주인공 캐릭터와 연기자들의 어떤 ‘기시감들’은, 여느 영화들과는 달리 흠은커녕 으뜸 덕목으로 비상한다.

다른 배우들은 어떤가? 연기력에선 더 이상 부연설명이 필요 없을 김해숙은 현우의 엄마 순임 역으로 <마더>의 도준 母 김혜자나 <변호인>의 진우 모 김영애 등과 나란히 서기 부족함 없다. 준영의 친구 변호사 모창환 역의 이동휘는 비중 있는 감초 역할로 영화의 질감을 한층 더 풍성하게 만든다.

한국 영화사상 최고 ‘악질 경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백철기역을 실감 넘치게 구현한 안재영은 어떤가. 개인적으로는 이번에야 비로소 주목하게 된 그 존재감은, 그 속내는 크게 달라도 <더 킹>에서의 최두일역 류준열에 버금간다. 그는 선-악의 구분이 모호해질 대로 모호해진 이 시대에 악당 캐릭터의 진면모를 맘껏 뽐낸다. <배드 캅>(아벨 페라라 감독)에서의 하비 카이틀이나, <레옹>(뤽 베송)의 게리 올드만 등을 연상시키면서 말이다.

영화 <재심>의 덕목은 그러나 영화 텍스트 안에만 머무는 것은 아니다.

우연찮게 조우한 영화에서 기대를 훌쩍 뛰어넘는, 상당 기간 오래 지속될 크고 깊은 감흥을 맛보게 된 요인들은 텍스트 바깥에도 존재한다. 영화를 만든 이들이 제작 노트에도 밝혔는 바, “영화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목표인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뜨거운 진심”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이다. 그 진심은 <도가니>나 <부러진 화살>부터 <내부자들>과 <더 킹>에 이르는 2010년대 이후 선보인 일련의 사회고발성 문제작들에 공통적으로 관류하는 한국 영화의 공론장(public sphere)적 속성과 맥을 함께 한다.

오락 및 산업으로서 자유로울 수 없는 대중 상업영화의 ‘본분’을 잃지 않으면서도, 우리 시대가 요청하는 크고 작은 정치·경제·사회·문화적 문제의식과 의미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일군의 한국 영화인들의 자존심 내지 자부심의 표출이랄까.

고백컨대 이렇게 뒤늦게나마 <재심>에 대해 이런 소회를 피력하는 것도 그 진심에 동참하고 싶어서다.

<재심>은 작금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왜 터졌는지를 웅변해주는 사례로도 손색없다. 그 게이트를 파헤치는 특검의 수사나, 헌법재판소의 탄핵 관련 재판을 에워싸고 벌어지고 있는 부끄럽기 짝이 없는 아수라판 등은 영화 속 드라마가 현재진행형이란 사실을 증거한다. 단언컨대 영화 속 사건의 진상은 충격을 넘어 절망을 안겨주기에 모자람 없다. 누명만으로도 인내키 어려운 공분이 일거늘 진범이 밝혀졌는데도 경찰-검찰-사법부가 작당해 사건을 덮어버렸다는 이 나라의 현실 앞에서 어찌 절망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럴 가능성이 열다섯 최군에서 30대 초반의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된 최씨 외에도 얼마든지 존재할 거라는 데 생각이 미치면 그 절망감은 더 커진다. 그래서일까, 영화를 보는 내내 사법 정의가 아니라 ‘사적 복수’를 욕망하기도 했다.

당혹스럽게도. 그 점에서 2016년 11월 17일, 16년만의 재심에서 사건의 진실에 부합하게 무죄가 선고됐다니, 감사할 따름(이라면 과도한 감상일까).

박준영 변호사

<재심>은 그러나 공분·고발에만 그치지는 않는다. 정우가 인터뷰에서 역설했듯 위안을 던져주면서 희망을 제시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비록 그 수가 많진 않더라도, 이 세상에는 박준영 변호사나 이대욱 기자, 김태윤 감독, 정우 강하늘 김해숙 등 좋은 배우들 포함해 영화를 함께 만들어낸 적잖은 이들 등, 더 나은 세상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뜻 깊은 의인들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현실을 영화가 입증하는 것이다.

 

문득 밀려드는 의문. 도대체 정의란 무엇일까? 인간이란 어떤 존재기에 그토록 불의하며 악마적일 수 있을까? 이 참에 읽다만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이창신 옮김, 김영사, 2011년 9월, 1판 190쇄)나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 인간 역사의 대담하고 위대한 질문>(조현욱 옮김, 이태수 감수, 김영사, 2015년 11월) 등을 다시 꺼내 통독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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