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론가 전찬일은 왜 이 글을 썼을까? “8년간 몸담았던 부산영화제를 떠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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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엔=전찬일 영화평론가] 정식으로 ‘영화 평론가’라는 직함을 내걸고 활동을 시작한 계기는, 1993년 월간 <말> 지 11월호에 <비터 문>(1993) 리뷰를 쓰면서였다. 로만 폴란스키 감독과 휴 그랜트·크리스틴 스콧 토마스·피터 코요테·엠마뉘엘 세녜가 주연과 조연을 맡은 문제적 휴먼 성애 드라마다. 이후 지나치게 사적인 글쓰기를 하지 않으려고, 엄밀히는 내 사생활에 대해 말하지 않으려고 애쓰고 또 애써왔다.

돌이켜보면 가히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겠건만, 명사도 아닌 일개 영화평론가의 삶이 독자들에게 뭔 관심거리가 되겠나, 싶은 자의식에서였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독자들의 양해를 구하며, 내 사생활의 일면에 관해 쓰려고 한다. 지난 8년 가까이 몸담아온 부산국제영화제(이하 BIFF)가 내 삶의 터닝포인트적 인생 체험이었을 뿐 아니라, 바야흐로 공적 관심의 대상 중 하나인 탓이다.

나는 1996년 출범 이래 모더레이터로 BIFF 성공의 으뜸 공신인 관객과의 대화(GV/Guest Visit)를 진행하거나 KBS 등 방송에 출연해 초청 영화들에 말하는 것 등을 통해 BIFF에 참여했다. 2002년 지금의 플래시포워드(Flash Forward) 섹션의 전신 격인 크리틱스초이스(Critics’ Choice) 담당 비평가 중 1인으로 BIFF에 관여, 2007년까지 프로그램 코디네이터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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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의 휴지기를 거친 후 2009년에는 플래시포워드 담당 월드 프로그래머로 BIFF에 전격 합류했다. 2년 뒤인 2011년부터는 2년 간 한국영화 담당 프로그래머를 맡았다. 보직이 변경돼 2013년부터는 2년 간 BIFF 아시아필름마켓 부위원장 직을 수행했다. 2014년에는 비프 연구소(BIFF Research Institute)장을 겸했는 바, 애당초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그 직을 나름 ‘신명나게’ 해냈다. 이용관 위원장이 자의에 반해 ‘쫓겨 난’ 2016년 2월 이후 공동 집행위원장에서 단독 위원장으로 전면에 나서게 된 강수연 집행부가 연구소를 폐지하기로 결정한 지난 6월까지. 그리고 그로부터 정확히 6개월 뒤인 12월10일자로 사직서를 제출했다.

2009년 이후로 한정하자. 그 사이 BIFF 관련 적잖은 소회들이 존재한다. 물론 보람과 유감이 공존한다. 우선 몇몇 보람들. 주저 없이 떠오르는 첫 번째 보람은 2010년 캐나다를 방문, 프라이비트 스크리닝을 통해 드니 빌뇌브 감독의 걸작 휴먼 드라마 <그을린>을 발견해 영화와 감독을 초청한 것이다.

“엄마의 유언에 따라 자신들의 뿌리를 찾아 중동으로 여정을 떠나는 쌍둥이 남매 스토리. (중략) 충격적 드라마를 통해 개인의 사연과 사회의 역사와 불가분의 관계임을, 사회사가 개인사에 얼마나 치명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 있는가를, 우리 네 삶의 기반이 얼마나 취약할 수 있는가 등을 역설한다…시대를 넘어 미래의 고전으로 자리 잡을 문제적 걸작이라 할 만하다.”(BIFF ‘프로그램 노트’)

영화는 제15회 BIFF의 최대 화제작 중 하나로 크고 작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그 기세를 몰아 <그을린 사랑>이란 제목으로 2011년 7월 개봉됐다. 근 6만7천명을 동원하며 그 해 다양성 영화 박스오피스 종합 9위, 외국 영화 6위에 올랐다. 비평적으로도 큰 개가를 올린 바, 2011년의 영화들을 대상으로 국내 영화 포함 문화계 평론가 및 기자 등 100인이 뽑은 ‘2012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영화’ 외국영화 부문 정상을 차지했다. 2011년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 부문에서 <그을린 사랑> 등을 제치고 최종 승자가 된 <인 어 베러 월드>(수잔 비에르 감독)를 비롯해 베를린영화제 황금곰상 및 아카데미 외국어영화 부문 수상작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아쉬가르 파르하디),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등에 빛나는 <트리 오브 라이프>(테렌스 맬릭) 등 쟁쟁한 경쟁작들을 제압하면서 말이다. 감독은 이 영화 이후 <프리즈너스>, <에너미>,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 등을 선보이며 캐나다를 넘어 세계적 명장으로 자리잡았다.

극적 과정을 통해 조우해 2012년 뉴 커런츠 부문에 선보인 <가시꽃>의 감독 이돈구의 발견도 평생 잊을 수 없을 보람이다.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무장하고 고작 300만원이라는 극저예산(極 低豫算)으로 한국예술종합학교 등 출신의 좋은 신예 연기자들을 끌어 모아 주목할 만한 장편 데뷔작을 빚어낸 ‘앙팡 테리블’. 영화는 “이창동 감독의 <시>의 주제의식과 상통하는 문제적 소품”이다. “신예의 그것이라곤 믿어지지 않는 완숙한 연기 연출”로 “죄와 양심, 책임감 등 인간 본성과 직결되는, 하지만 너무나도 빈번히 외면되곤 하는 육중한 이슈를 짚는다.”

도저히 뇌리에서 떨쳐내기 힘들 충격·여운을 선사하면서. 영화는 2013년 베를린 파노라마 부문에 초청되는 등 크고 작은 파란을 일으켰다.

마켓 부위원장 겸 연구소장으로 2014년 촉발된 ‘다이빙 벨 여파’ 등으로 인해 힘겹게 치러낸 2015년 제20회 BIFF를 맞이해, 비프컨퍼런스와 포럼(BC&F) 키노트 스피커로 아카데미 시상식 등을 개최하는 미국 아카데미위원회 셰릴 분 위원장을 영화진흥위원회와 공동으로 초청(하여 임권택 감독 및 배우 이병헌 등과 함께 자리 한 서울에서의 오찬이라는 계기를 통해 이병헌이 2016년 아카데미 시상자로 전격 초대되는 데 간접적으로나마 기여)한 것하며, 공들이고 또 공을 들여 국내의 대표적 대학 연구 지원기관인 한국연구재단과 영화제 개막 당일 업무협약을 체결한 것 등도 오랜 동안 기억될 큰 보람들이다.

보람만큼은 아니어도 유감 내지 아쉬움도 적잖다. 으뜸 유감은 당연히 연구소 폐지 결정이다. 그로 인해 한국연구재단과의 협력도 무위로 돌아가고 말았다는 것이다. 최종 결정이야 2017년 정기총회에서 이뤄질 테지만, BIFF의 차별성 확보나 장기 비전 등을 감안할 때 그 결정은 아쉽기 짝이 없다. 영화제의 집행 수장이 대학에서 30년 이상 몸 담아온 이에서 배우로 한때 한국영화계를 수놓았으며 세계무대 진출에선 그 어느 배우보다 앞섰던 이로 바뀐데 등에 따른 ‘심사숙고’의 결과라 할지라도, 못내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다. 최근 박근혜-최순실게이트를 통해 드러났듯 문화계를 향한 정치적 검열·탄압의 연장선상에서 이뤄진 검찰 기소를 ‘구실 삼아’, BIFF 창립 멤버 중 1인인 전양준 전 부위원장 겸 마켓 위원장을 직위해제시키고 더 나아가 자의에 반해, 영화제를 떠나게 한―그 역시도 나와 같이 사표를 냈다―현 집행부의 처사도 유감스럽다.

이쯤해서 나에 대한 해명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사직서 제출 전 6개월 간 나는, 검찰에 기소됐다는 이유로 그렇게 된 전양준, 양헌규 전 사무국장과 함께 직위해제가 돼 공식적 업무를 할 수 없었다. 규정에 의거해 급여는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감봉조치와 더불어, 였다. 감봉이 수반된 직위해제이면 중징계인 건데, 연유인즉슨 “부산시 지도점검 징계 요청과 연구소 직제 폐지에 따른 조치”라는 게 아닌가. 당혹을 넘어 황당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부산시 지도점검이라면 <다이빙 벨> 상영으로 시끄러웠던 2014년 19회 BIFF를 치르고 부산시에서 했던 내부 감사를 가리키는 것. 당시 내게 3가지 지적이 있었다고는 했으나, 그 지적의 타당성 여부를 떠나 그들은 내게 그 어떤 소명 및 반론 기회를 준 적이 없다. 더욱이 공식적으로 어떤 통보도 없었다. 또 김지석 부위원장 겸 수석 프로그래머가 자신과 이 위원장이 내 대신 부산시에 소명했으니 신경쓰지 말라고까지 했다. 나는 그렇게 일단락된 과거지사로 알고 있었다.

다른 채널을 통해 알아보니 부산시에선 징계 요청을 한 적이 없었다고는 하나, 진위 여부를 따지진 않으련다. 문제는 그렇게 마무리된 ‘사건’을 소급 적용해 징계를 가하는 조치의 타당성 여부다. 더 큰 문제는 징계를 내리면서 당사자에겐 소명·반론 기회를 주지 않았을 뿐 아니라 통보조차도 해주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대한민국이 민주주의 국가라는 사실을 포기하지 않는 한, 이건 심각한 절차상의 하자다. 안다. 현실 세상에서는 그런 절차 무시 정도는 왕왕, 아니 관례적으로 벌어지곤 한다는 것을. BIFF에 몸담았던 누군가의 반문처럼, “BIFF가 언제 그 놈의 절차를 지켰냐?”고 말하지 않는가…….

그럼에도 내가 법적 대응을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생략하련다. 내가 받아왔고, 받고있을 이러저런 오해들에 대해서도 피력하지 않으련다. 허나 마지막으로 이것만은 역설해야겠다. 절차의 준수, 복원은 특정 개인에게만 해당되는 사적이면서도 사소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정권이, 권력자들이, 세상의 수많은 갑들이…민주적 절차를 깡그리 무시하더라도 영화제는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인간 일반에 대한 한줌의 고려, ‘식구들’을 향한 일말의 배려 없는 영화제가 과연 무슨 존재가치가 있단 말인가?

대체 왜 영화제를 해왔고, 하고 있고, 하려는가? 독자들은 눈치챘을 것이다. 결국 내가 이 역설을 던지기 위해 좀처럼 하지 않아왔던 사적 이야기를, 양해를 구하면서까지 예외적으로 펼쳤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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