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냥’을 위한 변명?···추격스릴러 넘어 시대의 기억·양심 환기시키는 ‘문제작’
[아시아엔=전찬일 영화평론가, 한국외대 겸임교수] 대규모 탄광 붕괴사고가 일어난 무진의 외딴 산. 이상한 것이 출몰한다는 소문 때문에 인기척이 드문 그 산에서 거대한 금맥이 발견된다. 그 사실을 알게 된 형사 동근(조진웅 분)은 수상한 엽사들을 이끌고 산에 오른다. 인생 역전을 맞이한 기쁨도 잠시, 땅주인이자 금맥을 처음 발견하고 동근에게 알려준 노파(예수정)가 그들을 막아서고, 실랑이 끝에 노파가 부상을 입는다. 한편 탄광 붕괴사고의 유일한 생존자 기성(안성기)은 산사태 때문에 출입이 불가하다던 산에서 수상한 남자들을 발견하고 뒤쫓다 위 사건을 목격한다. 마침 탄광 사고로 잃은 젊은 동료의 딸 양순(한예리)이 할머니를 찾아 산 속에 들어갔다, 기성과 함께 쫓기는 신세가 된다. “금을 차지하려는 엽사 무리와 소중한 것을 지켜야 하는 사냥꾼, 출구 없는 산 속에서 목숨을 건 16시간의 추격이 시작된다!”
보도자료를 빌려 소개한 영화 <사냥>(이우철 감독)의 간단한 줄거리다. <최종병기 활>(김한민)과 <끝까지 간다>(김성훈)의 제작진이 다시 한번 뭉쳐 빚어냈다는 액션·추격 스릴러. 이 기본정보가 실은 <사냥>에 다가서기 위한 첩경이다. 장르적인 특성에 한국적인 정서를 접목시켰다지만, 그러려니 치자. 한국에서 만들어지는 특정 장르 영화에 한국적 정서를 결합시켰다는 건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을 테니. 그보다는 상호 텍스트적으로 적잖은 지점에서 두 수작과 겹친다.
우선 인물구도에서 <사냥>은 <…활>의 작은 변형 버전이다. 단적으로 기성은 <…활>의 남이(박해일)며 양순은 남이의 동생 자인(문채원)에 부합한다. 조진웅이 분한 쌍둥이 형사 동근과 명근은 류승룡이 분한 만주군 장군 쥬신타요, 엽사 무리들은 만주군이라 할 수 있다. <사냥>은 따라서 기성이 양순을 동근과 엽사 등 악당무리들로부터 보호하는 플롯을 따르는 휴먼 드라마다. <…활>이 남이가 서군(김무열) 등과 더불어 만주군으로부터 자인을 지켜내는 가족·멜로드라마이듯. 그 점에서 언뜻 설사 비중은 작아도 특별출연한 손현주가 분한 손 반장은 기성의 조력자로서, 자인의 애인 서군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영화에서 산이 사건이 펼쳐지는 주요 공간이요 무기가 활에서 총으로 바뀐 설정하며, 음악이 여느 한국영화들에 비해 전면적으로 배치돼 적극 활용됐다는 점 등에서도 두 영화는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가장 비슷한 덕목은 드라마를 추동시키는 그 극적 호흡에서 감지된다. 쉽사리 주목되긴 어렵겠지만, 보여줄 걸 보여주고 보여줄 필요가 없는 것은 생략하는 수준급 타이밍의 연출·편집 리듬은 두 영화의 으뜸 미덕이다.
한편 <끝까지 간다>와의 연결점은 대체적으로 큰 의미의 ‘노상에서’(On the Road), 즉 야외에서 사건이 펼쳐진다는 데서 드러난다. 산과 길이라는 세부적 차이가 있긴 하나 말이다. 흥미롭게도 두 영화의 대표 악당 역을 조진웅이 연기한다는 점에서도 닮은꼴이다. <끝까지 간다>의 창민에 비해 동근/명근이 상대적으로 덜 악당스럽다는 점 등에서 크고 작은 차이가 있긴 해도. 사체 안치실에서의 결정적 해프닝에서 보이듯 <끝까지 간다>에서는 실외 못잖게 실내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데서도 그렇고.
<사냥>이 이렇듯 <…활>과 <끝까지 간다>에 겹쳐진다는 사실은 그러나, 영화의 치명적 약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스토리도 그렇고 미장센, 출연진 등에서 이미 어디선가 봤다는 기시감을 불러일으키며, 그로 인해 영화가 전체적으로 통속적이며, 심지어 진부하다는 느낌을 안겨줄 수 있는 탓이다. 게다가 <…활>과 <끝까지 간다>가 어떤 영화들인가. 대중적으로나 비평적으로 꽤 큰 성공을 거둔 문제적 수작 아닌가? 널리 알려졌다시피 <…활>은 750만에 달하는 흥행 스코어를 기록하면서 2011년 한국 영화 박스오피스 정상에, 종합 박스오피스에서도 <트랜스포머3>에 이어 2위에 올랐다. <끝까지 간다>는 2014년 칸영화제 병행 섹션인 감독 주간에 초청돼 호평을 받는 등 국내외에서 큰 화제를 끌어모았다. 350만에 육박하는 스코어로, 종합 박스오피스 19위 한국영화 박스오피스 1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아니나 다를까, <사냥>의 영화적 완성도나 재미면에서 두 영화에 다소 뒤쳐지는 게 사실이다. <…활>에 비해 액션 및 추격의 강도가 약하며, <끝까지 간다>에 비해서는 극적 구성이 단순하며 성긴 편이다. 판단컨대 영화전문가들은 말할 것 없고 관람객들이 <사냥>에 악평들을 쏟아보내고 있는 까닭은 무엇보다 그래서 아닐까, 싶다. 영화가 그들의 기대에 현저히 못 미친다고 할까.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비교적 <사냥>을 좋게 본 내게도 영화는 아쉬운 점들이 한둘이 아니다. 특히 연기 연출이 못내 아쉽다. 기성 역의 안성기를 제외하고는, 주연진들의 개별 연기도 그렇고 연기앙상블도 유감스럽다. 조진웅도 그렇고 한예리, 권율 등 좋은 연기자들의 최고치를 뽑아내는 데는 실패했다고 할까. 헌데 안성기는 제외라고? 적잖은 이들이 국민배우를 들어 영화를 향한 불만을 쏟아내고 있는데도?
그렇다. 가히 ‘평점테러’에 가까운 혹평을 받고 있는 <사냥>에 매혹된 첫번째 이유는 기성이라는 주인공의 성격화(Characterization) 때문인 바, 안성기는 그 캐릭터를 완벽하게 구현했다. 성격화와 연관해 안성기는 <실미도> 이후 최상의 적역을 연기했다(는 게 필자의 최종평가다). 기성은 15년 전인 2000년 발생한 (가상의) 무진탄광 붕괴사고의 유일한 생존자다. 이후 그의 삶은 그 비극에 연결돼 있다. 그는 그 트라우마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 아니 정확히는 벗어나지 않으려고 애쓰고 또 애쓴다. 그 트라우마는 ‘기억하는 존재’로서 인간의 양심을 지켜내려는 기성 그의 최소한의 몸부림이다. 그 몸부림은 기성이 개체로서 인간적 염치를 잃지 않으려는 애씀이다. 기성이 <시>(이창동)의 미자(윤정희)에 가 닿는 건 그 때문이다. 그런 그가 말수 적고 무표정에 가까운 깊은 표정을 지닌 캐릭터로 구현되는 것은 고로 자연스러운 이치다.
내가 아는 한 이 땅에서 그런 캐릭터를 연기해낼 수밖에 없는 배우는, 단언컨대 안성기 그 밖에 없다. 그런데도 안성기가 답답한 연기를 했다고? 활기가 없다고? 당연한 것 아닐까? 인물의 성격화를 감안하면! 영화를 포함한 세상의 모든 예술·오락 텍스트는 그 자체가 소우주다. 그 소우주는 어쩔 수 없이 다른 텍스트들과 상호연관성을 띨 수밖에 없고 그 텍스트들을 에워싸고 있는 다양한 콘텍스트들 안에 위치하나, 감상·평가의 출발점은 그 텍스트 자체여야 한다. 텍스트와 무관한 감상·수용자의 취향·지향이 부득이 작동할 수밖에 없다고 해도, 그 명제는 결코 잊혀서는 안 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런 일이 다반사로 펼쳐진다. 일반대중 관객들만이 아니다. 소위 전문가들도 그런 분별력을 잃고, 자기의 욕망을 투사해 가며 마구 함부로 말하고 써댄다. 혹 <사냥>도 그런 경우가 아닐까…….
기성의 캐릭터에 초점을 맞추면 <사냥>은 웰메이드 추격 스릴러에서 캐릭터 드라마로 비상한다. 동근/명근과 엽사들로 대변되는 물욕 가득한 현실(태)적 범인들과, 기성(과 양순, 노파, 손 반장 등)으로 대변되는 가능태적 비범인들 간의 대결 및 그 대결의 결말을 극화한 문제적 인간 드라마로. 그렇다면 추적 스릴러라는 장르는 일종의 미끼, 달리 말해 맥거핀 장치에 지나지 않는 셈이다. 어떤가? 이렇게 보는 순간 영화의 진정한 의미가 다가서지 않는가. 의미라? 다름 아닌 그 함의가 <…활>이나 <끝까지 간다>에서는 찾기 힘든 <사냥>의 깊고 큰 덕목이다.
문득 이런 제안을 해보련다. 당장 떠오르는 세월호 사고만이 아니다. 위 탄광 붕괴사고를 이 나라의, 아니 세계의 수많은 사고로 대체해보자고. 그 경우 우리네 인간들 대다수는 그런 사고들을 잊으려고 안간힘을 쓰지 않는가.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자기들과 달리 그렇지 않은 소수들을 향해 손가락질하고 비난하진 않는가.
<사냥>은 혹 신자유주의로 통칭되고 있는 과도한 물욕에 의해 거의 모든 부조리한 일들이 정당화되곤 하는 이 시대에, 그런 맹목적 질주에 대해 새삼 근본적 질문을 던지고 싶은 건 아닐까? 우리 그렇게 살아도 괜찮은 거냐면서? 우리 시대에는 기성과 같은 소수가 더 필요하다는 의미·메시지를 던지려는 건 아닐까. 적어도 내겐 그렇게 다가선다.
그렇다면 <사냥>은 지금 우리 시대가 요청하는 문제작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시대의 기억·양심·염치를 환기시키는 문제적 캐릭터 드라마? 이준익 감독의 <동주>이, 조정래 감독의 <귀향>이 그렇듯···.
지랄병 쳐하네
참, 장황하게 애쓰네요…
그 영화를 이런식으로 풀어내다니 대단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