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동 영화 ‘시’처럼 살다간 배우 윤정희와 ‘알츠하이머병’

영화 <시> 속 윤정희씨. 2010년 이창동 감독 작품

윤정희(79·尹靜姬 본명 孫美子) ‘은막의 스타’가 1월 19일 프랑스 파리에서 세상을 떠났다. 남편인 피아니스트 백건우(77·白建宇)는 “제 아내이자 오랜 세월 대중의 사랑을 받아온 배우 윤정희가 딸 진희(46)의 바이올린 소리를 들으며 꿈꾸듯 편안한 얼굴로 세상을 떠났다”고 전했다. 미스코리아 출신 배우인 고인은 중앙대 예술대학원에서 연극영화학 석사학위, 파리 제3대학교 대학원에서 예술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프랑스 도빌아시아영화제와 트리올국제영화제의 심사위원으로 활동했다.

가톨릭 세례명이 데레사인 그녀의 장례는 고인의 뜻에 따라 가족장으로 1월 30일 파리 근교 벵센(Vincennes)의 한 성당에서 치러진 후 화장 뒤 인근 묘지에 안치됐다. 백건우씨는 장례 미사에서 진혼곡(鎭魂曲)으로 가브리엘 포레의 레퀴엠(requiem) 작품 48에 수록된 ‘낙원에서(In Paradisum)’를 골랐다. 장례 미사에는 유족과 친지 외에 영화감독 이창동, 최재철 주프랑스 한국대사 등 60여명이 참석했다. 벵센은 윤정희가 남편과 40년 넘게 산 곳이다.

백건우씨는 “우리가 삶을 받아들이듯,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도 참 중요하며, 죽음을 어떻게 아름답게 받아들이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고인이 40년 이상 살았던 벵센에서 본인이 원하는 대로 조용히 갈 수 있었다”며 “장례식이 조용히, 차분하게 끝나서 다행”이라고 했다. 백건우는 “한국 역사에 남을 훌륭한 여배우를 존경해야 할 것 같다”며 “살아있는 사람을 존중하듯 죽은 사람도 존중하길 바란다”고 했다.

윤정희 1967년 데뷰작 <청춘극장>

1966년 합동영화사가 <청춘극장>의 여주인공 오유경 역의 여배우를 공개 모집하자 윤정희는 1200대 1의 경쟁을 뚫고 선발되어 큰 화제를 일으켰다. <청춘극장>은 일제 강점기부터 해방 후까지 청춘남녀들의 사랑과 애국심을 그린 1967년 강대진 감독의 대표작이다. 당시 최고 인기배우였던 신성일의 출연으로 영화가 개봉되자 큰 인기를 얻어 서울의 국제극장에서 20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여 그 해 최고의 화제작이 되었다.

윤정희는 <청춘극장>의 주인공으로 화려하게 데뷔한 후 1994년 영화 ‘만무방’ 출연 후 16년간 연기활동을 중단했다가 2010년 영화 ‘시’로 복귀했다. 평생 출연작은 300여편에 이르며, 청룡영화상, 대종상, 백상예술대상 등 여우주연상만 25차례 받았다.그가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 다섯 편이 같은 날 개봉된 적도 있다. 1960-70년대 남정임(1945년생)·문희(1947년생)와 더불어 ‘원조 트로이카’로 군림했던 윤정희(1944년생)는 1973년 홀연히 파리행(行)을 택하며 ‘인생 2막’을 열었다. 영화 유학이라는 당시 출국 이유보다 관심을 보였던 건 백건우와의 열애·결혼이었다.

윤정희와 백건우

백건우는 윤정희를 1972년 독일 뮌헨올림픽 기념작으로 윤이상(尹伊桑, 1917-1995)의 오페라 ‘심청’이 초연된 문화행사에서 우연히 만났고, 2년 뒤 윤정희가 프랑스로 유학 왔을 때 파리에서 다시 만나 사랑에 빠졌다. 1976년 재불화가 이응노(李應魯, 1904-1989) 화백의 자택에서 주변 지인만 초대한 가운데 조촐하게 결혼식을 올렸다. 신부는 웨딩드레스 대신 한복을 입었고, 예물도 백금 반지 한 쌍이 전부였다.

이들 부부는 이듬해 공산권이었던 유고슬라비아로 연주여행을 떠났다가 납북(拉北) 위기를 겪었다. 당시 이들 부부는 가까스로 미국 영사관으로 탈출한 뒤 무사히 파리로 돌아왔다. 1980년대부터 백건우는 라흐마니노프·쇼팽의 피아노협주곡 전곡 음반 같은 굵직한 녹음과 연주로 세계 음악계의 주목을 받았다. 당시 아내 윤정희는 비서이자 매니저, 팬이라는 ‘1인3역’을 자청했다. 남편의 연주가 있는 날이면 언제나 객석 1층 맨 뒷자리를 고집했다. “좋은 자리는 관객들에게 양보해야 한다”는 지론 때문이었다. “백건우 비서 노릇은 나 아니면 아무도 못할 것”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파리특파원으로 근무한 한국인 기자들은 윤정희·백건우 부부를 가장 모범적인 예술인 부부로 꼽았다.

2019년 11월 중앙일보의 백건우 인터뷰를 통해 윤정희가 10여년째 알츠하이머 투병 중이라는 기사가 나왔으며, 심각한 상태라고 전했다. 그녀를 돌보고 있는 딸 백진희씨에 따르면 친딸인 자신도 알아보지 못하며, 왜 자신을 엄마라고 부르냐고 한다고 했다. 백건우측에 따르면, 프랑스 오케스트라 단원인 친딸의 파리 집 근처에 거처를 마련하여 간호사들과 함께 돌보고 있다고 전했다.

윤정희 2010년작 <시>

공교롭게도 윤정희의 마지막 출연작인 2010년 이창동 감독의 ‘시(詩·Poetry)’에서 맡았던 역할 역시 알츠하이머병 환자 ‘미자’역이었다. 미자는 그의 본명(손미자)이기도 했다. 이 영화는 2010년 칸영화제(Cannes Film Festival)에서 각본상을 수상했으나, 국내 관객 수는 21만명에 머물렀다.

이창동 감독은 ‘찰떡 캐스팅’으로 유명하며,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주연배우로 윤정희를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스크린을 오랫동안 떠난 윤정희의 복귀 작품이기도 하다. 특히 영화의 제목 ‘詩’에 맞게 진짜 ‘詩人’도 출연했다. 바로 김용탁 시인 역을 한 조연 김용택 시인으로 연기를 너무 잘해서 진짜 배우인 줄 알았다고 한다.

영화 <시> 기자회견장의 윤정희 배우(왼쪽)와 이창동 감독

영화의 주인공 ‘미자’는 경기도 작은 도시, 낡은 서민 아파트에서 손자와 둘이 살고 있다. 중풍에 걸린 할아버지를 간병하며 돈을 벌고 있는 미자는 꽃 장식 모자부터 화사한 의상까지 치장하는 것을 좋아하는 호기심 많은 캐릭터다. 미자는 어느 날 ‘시’를 쓰고 싶다는 열망에 빠지고 시 강좌를 수강한다. 하지만 생각보다 시상(詩想)은 잘 떠오르지 않는다.

미자는 팔이 아파 병원에 들렀지만, 팔보다도 더 심각한 병 ‘알츠하이머 치매’가 진행 중이다. 그런데도 그녀는 그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딸에게도 숨기며 ‘시’ 강좌를 듣는다. 부산에 따로 살고 있는 이혼한 딸의 아들인 종욱을 혼자 돌보고 있다. 손자 종욱은 할머니가 어렵게 벌어 자신의 뒷바라지를 하고 있다는 것을 신경 쓰지 않고 있다.

그 와중에 예기치 못한 사건까지 찾아오면서 미자는 세상이 자신의 생각처럼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며칠 전 강에서 떠내려 온 여자아이의 시체가 있었으며, 그날 이후 손자 종욱에게 이상한 행동들이 포착된다. 종욱은 친구들과 함께 같은 학년의 여자아이를 집단 성폭행했으며, 그 여자아이가 일기를 써놓고 투신자살한 것이다.

미자는 이 사실을 알게 되고, 이 사건에 관련 있는 학부모들은 각자 500만원씩 부담하여 죽은 여자아이의 부모와 3천만원으로 합의를 보려고 한 것이다. 미자에겐 500만원은 큰돈으로 여기저기 돈을 빌리려 하지만 쉽지 않다. 어쩔 수 없이 미자는 중풍에 걸린 할아버지를 남자 구실하게 만들어 주고 500만원을 받아낸다. 그렇게 손자의 합의금을 마련한 미자는 죽은 여학생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그 고통을 가슴으로 느끼기 시작한다. 그렇게 미자는 진짜 시를 쓰게 된다.

<시> 마지막 대목

미자는 게임방에 있는 손자를 불러내 피자를 사 먹이고 목욕을 깨끗이 하라고 말하고 손자의 발톱까지 정리해 준다. 여느 때처럼 손자와 밤에 배드민턴을 치고 있을 때 형사들이 다가와 손자를 데려가고, 미자는 말없이 지켜본다. 다음 날, 시 강좌의 마지막 날, 미자는 자신이 쓴 시와 함께 꽃다발을 강사의 자리에 올려놓고 사라진다. 부산에 사는 딸도 미자의 집에 왔지만 아무도 없다. 미자가 죽은 소녀를 위해 쓴 ‘아네스의 노래’만이 퍼지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이창동 감독이 전달하고 싶었던 것은 “눈에 보이지 않은 아름다움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대한 고뇌였다. 이 감독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아름다움은 모두 그늘이 함께하고 있다”고 말한다. 겉으로 드러나는 아름다움만으로는 시를 쓸 수 없으며, ‘미자’라는 인물을 통해 이것을 전달한다. 겉으로 드러나는 아름다움을 찾아다닌 미자는 시를 한 줄도 쓸 수 없고, 눈에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을 가슴으로 느낄 때 진정 시를 쓸 수 있게 만든다.

윤정희씨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