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th 부산국제영화제] ‘모퉁이 극장’, 관객 중심 새로운 영화문화 꿈꾼다

어리버리 인턴기자의 좌충우돌 취재기①

“저도 다녀오겠습니다!” 동료인 파키스탄 출신의 라훌 아이자즈 기자가 부산국제영화제 취재를 간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내 입에서 절로 튀어나온 말이다. 이제 겨우 3개월차인데다 혼자 가야 한다니(외국인 기자와는 일정이 다르다), ‘과연 잘할 수 있을까’ 걱정도 들었다. 이래저래 계획을 세우다 보니 드디어 부산 가는 날 아침이 밝았다. 2일 오전, 서울역에서 부산으로 향하는 KTX열차에 몸을 실었다. 2박3일간의 부산국제영화제 취재현장을 독자 여러분들께 생생히 전달해드리고자 한다.

[아시아엔=부산/김아람 기자] 사투리로 된 광고를 보니 부산에 왔다는 게 실감났다. 부산국제영화제(이하 BIFF)의 중심인 영화의전당에 도착해 전찬일 부산국제영화제 소장을 만나 잠시 얘기를 나눈 뒤 ‘2015 BIFF-미국영화협회(MPA) 영화 워크샵’에 참여했다.

2일부터 이틀간 열리는 이 행사는 영화감독과 시나리오 작가를 꿈꾸는 전도유망한 한국청년들에게 할리우드를 직접 방문해 영화 제작 훈련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BIFF의 특별프로그램이다.

사전에 학부 및 교수의 추천을 받아 선정된 10명의 참가자들은 국내외 영화전문가 연사의 공개강의 및 멘토링을 통해 참가자들의 영화기획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이들은 직접 쓴 시놉시스로 3일 최종평가를 받는다. 우승자로 선정되면 내년 할리우드로 영화연수를 떠나게된다. MPA관계자 변재웅씨는 “지난번 우승자 가운데 할리우드에서 직접 자신의 시나리오를 어필해 실제 영화제작지원을 받은 사례도 있다”고 전했다.

이 자리에선 천만 관객의 흥행을 일으켰던 영화 ‘명량’의 김한민 감독과 ‘킹스스피치’의 시각효과 총감독을 맡았던 토마스 호튼이 영화꿈나무들을 위한 강연을 펼쳤다. 김한민 감독은 “자신이 만들고 싶은 영화에 대한 명확한 목표를 세우는 것도 무척 중요하지만, 관객과의 소통은 목표와는 별개의 문제이므로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명량’ 제작 이유에 대해 “관객이 공감할 수 있는 정서를 찾는 와중에 역사적 인물을 접하게 됐다. 살기 퍽퍽한 요즘 시대에 사람들에게 힘을 줄 수 있는 이야기를 찾다 보니 자연스레 이순신이 떠올랐다”고 했다.

토마스 호튼은 “무엇보다 관점(perspective)이 제일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좋은 작업을 위해서는 훌륭한 환경(resource)보다 참신한 생각(idea)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워크샵 참가자들은 대부분 공모전을 수상하거나 직접 영화를 연출한 경험이 있는 실력파다. 과연 내일 할리우드 연수를 거머쥘 주인공은 누가될지 궁금해졌다.

영화의 전당 주변을 둘러보니 BIFF테라스에서 맥주 무제한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영화발전기금 3천원을 기부하면 영화제 기간 내내 맥주를 제한 없이 즐길 수 있다는 거였다. 기자도 혹해서 취재를 잠시 쉬고 맥주를 즐겨볼까도 했던 순간, 한쪽에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은 ‘모퉁이극장’이라는 곳이 눈에 띄어 찾아가봤다.

어떤 곳이냐 물으니 ‘관객을 영화의 주인공으로 바라보자는 취지의 관객운동을 하는 비영리단체’라고 했다. 김현수 모퉁이극장 대표는 “많은 영화애호가들이 본업이 있다 보니 점점 영화에 대한 열정이 식어가는 모습이 안타까웠다”며 “영화를 사랑하는 많은 관객들이 서로를 응원해주며 연대하는 자리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모퉁이극장을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부산 중앙동에 위치한 모퉁이극장은 ‘관객’이 주체가 되는 하는 새로운 영화문화를 만들어가는 곳이다. 대형멀티플렉스에서 상영하는 영화를 수동적으로 관람하는 것이 아닌, 각기 다른 취향을 가진 관객들이 모여 다양한 예술?, 실험 영화들을 감상하고 의견을 공유한다.

김현수 대표는 “영화가 탄생한지도 120년이 지난 만큼 풍성한 역사를 자랑하는 영화계와는 달리 관객만은 시간이 멈춘 듯 극장에 가만히 앉아있는 모습으로 비춰진다”며 “영화만큼 관객도 발전해 관객으로만 열심히 살아도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튼튼한 관객 문화를 만드는 것이 모퉁이극장의 비전”이라고 했다.

수동적인 환경에서 영화를 보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던 기자가 듣기에 다소 낯설기도 했지만, 지난 4년간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어 지금은 영화감독, 예술가, 직장인, 학생 등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모퉁이극장을 찾는다고 한다. 김현수 대표는 다가오는 10월, 국내최초로 관객 중심 영화제를 준비하고있다고 귀뜸했다.

해가 지고 어둠이 드리웠다. 영화의전당 야외극장에선 일본 애니메이션 ‘이웃집 토토로’가 상영됐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이웃집 토토로’는 순수한 동심, 자연, 유년시절의 불안한 감정을 잘 녹여낸 작품으로 지난 1988년 제작된 이래 지금까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탁 트인 분위기에서 상영된 추억의 애니메이션 한편이 막을 내리며, BIFF의 하룻밤도 저물어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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