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th 부산국제영화제] 칸영화제 초청작 ‘경계의 저편’, 미국의 민낯 가감없이 드러내다
“저도 다녀오겠습니다!” 동료인 파키스탄 출신의 라훌 아이자즈 기자가 부산국제영화제 취재를 간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내 입에서 절로 튀어나온 말이다. 이제 겨우 3개월차인데다 혼자 가야 한다니(외국인 기자와는 일정이 다르다), ‘과연 잘할 수 있을까’ 걱정도 들었다. 이래저래 계획을 세우다 보니 드디어 부산 가는 날 아침이 밝았다. 2일 오전, 서울역에서 부산으로 향하는 KTX열차에 몸을 실었다. 2박3일간의 부산국제영화제 취재현장을 독자 여러분들께 생생히 전달해드리고자 한다.
[아시아엔=부산/김아람 기자] 부산에서 머무른 내내 날씨가 좋았다. 취재 마지막 날에도 어김없이 밝은 햇빛이 내리쬐어 기분이 좋았다. 4일에는 롯데시네마 센텀시티에서 상영하는 영화 ‘경계의 저편’(The Other Side)을 감상했다. 올해 칸 국제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돼 관객들의 기립박수를 이끌어내기도 한 이 작품은 미국 소외 계층의 어두운 면모를 드러내는 다큐멘터리다.
약 90분동안 진행되는 이 작품은 미국 남부 루이지애나 주에 살고 있는 마크와 그의 애인 리사의 황폐한 삶을 가감 없이 담았다. 그들은 마약을 팔거나 직접 투여해 환각에 취하고, 정사를 나눈다. 심지어 마크가 임산부인 스트리퍼에서 마약을 놔주고 그가 무대에서 춤추는 장면은 가히 충격적이다. 전반적으로 어두운 분위기가 물씬 풍기지만 마크가 리사에게 프로포즈를 하거나 병든 노모를 보살필 때는 뭉클한 감동이 느껴지기도 한다.
영화의 마지막 30분은 한 예비군 무리의 모습을 비춘다. 그들은 훈련을 하고, 해변에서 방탕한 파티를 즐기며 미국에 대한 장황한 비판을 늘어놓는다. 이들과 마크의 공통점이 있다면 하나같이 오바마 정부를 비난하며 경멸한다는 것이다. 영화 ‘경계의 저편’은 이탈리아 출신이지만 미국 남부의 생활상을 주목해온 다큐멘터리스트 로베르토 미네르비니의 신작으로, 영화가 끝난 뒤 감독과의 관객토크가 이어졌다.
기다렸다는듯 영화 애호가 및 관계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제작 방식에 대해 로베르토 감독은 “모두 실제인물과 가족들이며 촬영 후 대본을 작성한다. 부족한 부분은 내레이션으로 추가했다”고 답했다. 실제로는 오바마 대통령의 팬이라는 감독은 “미국 사회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소외계층을 조명하고 싶어 작품을 만들게 됐다”고 제작동기를 밝혔다.
현재 주인공들의 근황을 묻는 질문에는 “페이스북(SNS)으로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 마크와 리사는 결국 버지니아주로 도망쳐 살고 있는데, 리사는 딸과 함께 가게 종업원으로 일하고 있다. 미래가 희망적이지는 않지만, 촬영 당시보다는 다소 나은 환경에서 지내고 있다”고 대답했다.
관객토크가 진행되던 중 한 관객이 현 정부에 대한 한국인들의 불신 역시 영화 못지 않다며, 함께 작품을 제작해보면 어떻겠냐는 질문에 좌중은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이에 감독은 “아마 함께 감옥에 들어갈수도 있겠지만 한번 같이 만들어보자”라며 화답했다. 실제로 이 관객은 관객토크가 끝난 뒤 감독의 연락처를 물었는데, 로베르토 감독은 “용감한 분이시네요(You are brave)”라며 이메일 주소를 적어줬다.
작가이자 감독인 로베르토 미네르비니는 뉴욕의 뉴스쿨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고 현재 마드리드 대학의 박사과정에 있다. 그는 이탈리아와 미국을 오가며 작품 활동을 하는 중이다. ‘텍사스 삼부작’이라고 불리는 그의 작품들 ‘길’(The Passage) ‘로우 타이드’(Low Tide) ‘두근대는 심장을 멈추고’(Stop the Pounding Heart)를 제작했다. 해당 영화들은 칸, 베니스, 토론토, 전주 등의 영화제에 초청돼 음지에 숨어있던 사회문제들을 가감없이 드러낸 작품들로 호평받았다.
5일 일요일 오후, 비프빌리지에선 ‘한국영화기자협회와 함께하는 오픈토크’가 진행되고 있었다. 주인공은 ‘칸의 여왕’ 배우 전도연이었다. 자연스러운 미소와 분위기가 매력적인 그는 어떤 배우로 남고싶냐는 질문에 “좋은 배우, 전도연이 나온 영화는 믿고 볼 수 있고, 본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 믿음을 줄 수 있는 배우가 되고싶다”고 밝혔다. 또한 함께 연기하고 싶은 연하 배우로 유아인을 꼽으며 “일을 열심히 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그 친구가 가진 재능과 감정이 큰 에너지로 다가와서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부산국제영화제 2박3일간의 취재 마지막 날은 여유롭게 마무리했다. 서툴렀던 탓에 더 많은 취재를 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매진된 영화가 많아 보고싶었던 상영작을 놓친 것도 안타까움이 들었지만, 아시아 최대 영화제를 직접 둘러보며 많은 이들을 만난 것에 감사하다. 내년에는 독자여러분께 부산 국제영화제 현장을 더 생생히 전달할 수 있길 바란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