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한국영화 결산③] 고희영 감독의 ‘시선’은 ‘두 무현’의 오래된 미래
[아시아엔=전찬일 영화평론가, 한국외대대학원 글로벌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궁금하지 않은가, 그 여정이? 장담컨대 그 특별한 여행의 동행은 들인 시간과 비용을 보상하고도 남음이 있다. 두 장애우의 감동적 여정은 우리가 놓치고 살아가는 어떤 지점들을 환기시켜준다. 우리 인생에 최악은 없다는 것, 범사에 감사해야 할 이유, 경청과 배려의 소중함 등등의 덕목 등등을. 어느 순간 문득 다큐 속 두 주인공이 장애가 아니라 어쩌면 그들을 지켜보며 연민과 동정의 마음을 품고 있을 우리들이 장애일 수 있다는 깨달음 같은 어떤 감정이 살포시 찾아든다.
<시소>보다 2주 먼저 선보인 제주해녀들 이야기 <물숨>을 통해 존재감을 알린 고희영 감독은 시종 재신의 표정을 밝게 포착해 보여준다. 그 표정은 영화 속 제주의 수려한 어떤 풍광보다 더 스펙터클한 미장센이다. 그 표정은 “다시 되돌아갈 수 있다고 하면 어느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라는 동우의 물음에 “돌아가긴 왜 돌아가. 지금이 너무 좋지”라는 재신의 대답에 상응하는 비주얼적 표현이다.
다시 동우가 묻는다. “정말 기적처럼 발을 딛고 일어났어. 그래서 아무 곳이나 혼자 힘으로 갈 수 있는 거야. 그럼 어디로 가고 싶어?” 재신은 “혼자 가고 싶은 데는 없고 나는···정말 내 딸 볼을 만져주고 싶어. 쓰다듬어 주고. 딸아이가 이쁠 때가 너무 많거든” 하고 응답한다.
그 밝디밝은 표정은 연출에 의한 연기의 결과라기보다는 재신의 평소 표정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다큐의 속성 때문에 내리는 진단이 아니다. 재신의 그 표정이 재신이란 인간의 진실됨의 기표일 터이기 때문이다. 아마 나는 꽤 오랜 동안 그 표정들을 잊지 못할 것이다. 아니 잊지 않으련다. 그 표정의 울림이 그만큼 커서다.
<시소>에서 인상적인 건 재신의 표정만이 아니다. 의당 그랬어야 할 법한데, 동우보다 재신을 더 우선시하는 동우와 감독과 영화의 시선도 각별한 주목을 요한다. 영화 결말부도 그렇고, 그 점에서 영화는 재신에게 바치는 동우의 선물이요 오마주인 셈이다. 영화 후반부 스킨스쿠버 시퀀스는 특히 압도적이다. 스킨스쿠버는 장애가 찾아들기 전 재신의 꿈이었다.
그러고 보니 <시소> 이 다큐, 여러모로 <무현>을 닮았다. 두 남자들의 이야기란 점, 인간 및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서의 수평성과 열려있음 등에서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주제의식에서다. <시소>의 도입부, 제목이 뜨기 전 동우와의 숲속 대화에서 재신은 이렇게 말한다.
“나무들이 저렇게 기울어져 있는 건, 공생을 하기 위한 몸부림 같다”고. 그에 동우는 되뇐다. “공생을 하기 위한 몸부림이다···” 다름 아닌 이 몸부림이 <시소>의 으뜸 주제일진대, 그 문제의식은 <무현>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두 무현이 살아 생전 그렇게도 실현시키기 위해 애쓰고 또 애썼던 것이 “사람 사는 세상을 향한 안간힘”이었을진대, 그것이 곧 공생을 위한 몸부림 아니고 그 무엇이겠는가. 결정적 차이라면 두 무현은 그런 몸부림을 치다 고인이 되었고, 동우와 재신 두 장애우는 앞으로 남은 삶을 몸부림 치며 살다갈 것이란 사실이다. 결국 두 고인은 두 장애우의 ‘오래된 미래’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