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벽두 나를 사로잡은 영화 ‘점박이 한반도의 공룡2’

점박이 한반도의 공룡2

[아시아엔=전찬일 영화‧문화콘텐츠 비평가] 사적 부끄러움으로 시작하자. 어느덧 영화 구력 근 50년, 영화 스터디 37년, 영화 평론 25년의 삶을 살아왔으나 그 자장 안에서 애니메이션(이하 애니), 그 중에서도 한국산 애니의 몫은 빈약하다 못해 초라하기 짝이 없다. 그간 필자 기억에 자리해온 국산 애니는, 한국영화 담당 프로그래머로 2011년 제16회 부산국제영화제 오픈 시네마 부문에 초청하며 만났던 <마당을 나온 암탉>(오성윤 감독)이나, 비평적 견지에서 2000년대 이후 최고 토종 애니로 간주되곤 하는 <마리이야기>(2002, 이성강) 정도가 거의 다였다. 애니도 엄연히 영화 오락‧예술의 한 식구이건만!

그 목록에 유의미한 한 편이 최근 가세했다. 지난해 성탄절 선보여 올 기해년 첫날까지 8일간 44만명에 근접, 50만명선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점박이 한반도의 공룡2 : 새로운 낙원>(한상호, 이하 점박이2)이다. 8천만년 전 백악기 최후의 재난 이후, 모든 가족을 잃고 둘만 남게 된 공룡의 제왕 타르보사우르스 점박이(목소리 역 박희순)와 그의 아들 막내(이수혁)를 축으로, 사라진 딸을 찾는 송곳니(라미란)와 넉살 좋은 초식공룡 싸이(김성균) 등이 협력해 펼치는 흥미 만점의 모험담이다.

<점박이2>의 한상호 감독. <사진 연합뉴스>

<점박이2>와 첫 조우를 한 것은 2018년 제21회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10월 18∼22일) 쇼 케이스 무대를 통해서였다. 평소 친분이 있어온 프로그래머(김성일)의 특별 요청으로 가게 된 그 애니페스티벌에서, 의무 반 기대 반 보게 된 <점박이2>는 기대 이상이었다. 그 3개월 전, 경기도 다양성영화 G-시네마 프로그램 일환으로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하며 만났던 안재훈 감독의 단편 애니 <소나기>(2017) 때 맛본 그 감흥에 필적했다. 고백컨대 황순원의 유명 단편을 애니화한 그 아름다운 소품을 계기로 인연을 맺은 감독이, 애니 세계에 무관심하다 못해 무지한 이 중견 영화평론가를 한없이 부끄럽게 했다.

그날의 반성 이후 애니를 향한 각별한 관심‧애정을 품게 됐다. 아직 읽지는 않고 있으나, 본격적으로 독학도 해보려고 애니 역사를 다룬 원서도 한권쯤 구해 책꽂이에 꽂아 놨다. 난생 처음 부천애니페스티벌을 찾은 것도, 페스티벌 개막작 <어나더 데이 오브 라이프>(라울 데 라 푸엔테 & 다미안 네노프)를 보고 걸작 다큐-애니 <바시르와 왈츠를>(2008, 아리 폴먼)을 능가하는 감동을 받은 것도, 그리고 <점박이2>에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강렬한 인상을 받은 것도 그 연장선상에서였다. 나는 지금 이 순간도 어떻게 하면 척박을 넘어 절망적 상황에 처해 있는 국산 애니를 살리는데 미력하나마 힘을 보탤까 고심 중이다.

2019년의 첫 원고로 <보헤미안 랩소디>(브라이언 싱어)를 비롯해 <스윙 키즈>(강형철), <마약왕>(우민호), <PMC : 더 벙커>(김병우), <아쿠아맨>(제임스 완), <범블비>(트래비스 나이트) 등 할 말 수두룩한 여타 화제작들을 제치고 <점박이2>를 짚는 것도 실은 그 애정과 고심 때문이다.

아는가. <점박이2>의 전편인 <점박이: 한반도의 공룡3D>(2012)가 한국 애니 사상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현재까지도 국내 어린이들이 가장 사랑하는 캐릭터이자 공룡 애니메이션으로 손꼽히고 있다”는 것을. 105만여 관객을 동원, “흥행수익 97억원이라는 놀라운 성적을 거두며 2012년 국내 개봉 애니메이션 베스트 TOP 5, 한국 애니메이션 역대 흥행 2위에 이름을 당당히 올린 바 있다”는 것을.

아는가. 그동안 공룡은 주로 북미 지역에서 서식했던 것으로 알려져 우리 아이들의 공룡에 대한 욕구를 해외 콘텐츠들이 채워주고 있었으나, 1972년 경남 하동에서 공룡알 화석이 발견된 이후 한반도의 공룡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이후 2008년 엄청난 반향을 일으킨 EBS 다큐멘터리 3부작 <한반도의 공룡>을 통해 비로소 아이들이 사랑하는 ‘우리의’ 공룡 캐릭터 ‘점박이’가 탄생되는 초석이 마련되었다는 것을. 창피해도 하는 수 없다. 나는 몰랐다.

220여만명의 <마당을 나온 암탉>이 한국 애니 역대 흥행작 1위란 현실은 알고 있었다. 헌데 ‘고작’ 105만의 수치로 역대 흥행 2위라고? 실사 영화의 경우, <실미도>(2003, 강우석)부터 <신과함께-인과 연>(2018, 김용화)까지 1천만 고지를 넘은 소위 ‘천만 영화’들이 무려 17편이거늘? 외국산으로는 <겨울왕국>(2013, 크리스 벅 & 제니퍼 리)처럼 ‘천만 애니’도 있거늘?

충격이다. 대체 왜, 어떻게 이런 하늘과 땅같은 격차가 벌어진 것일까. 듣기로는 한국 애니에도 적잖은 돈들이 투하된 것으로 알고 있건만.

그 연유들을 이번에 짚지 않고 다음 기회를 보련다. 다만 <점박이2>를 기해, 우리 애니에도 크고 깊은 관심을 갖기를 권하련다. 다소의 아쉬움은 있을 순 있어도, 크고 작은 재미·감동·의미·교훈 등을 두루 갖췄으니, ‘강추’하련다. 영화가 아동용에 그칠 거라는 편견은 보란 듯 깨질 공산이 크다, 내가 그랬듯이.

감독도 의도한 바, 가족 영화로 손색없다. 점박이를 필두로 다양한 공룡 캐릭터들도 그렇고, 프로는 물론 아마추어 배우들의 목소리 연기도 실감 넘친다. 다채로운 캐릭터들이 펼치는 드라마는 여느 웰메이드 실사 영화 못잖다. 개별 공룡들의 성격화도, 플롯의 완급‧강약, 음악 효과를 포함한 사운드 연출 등 연출력도 수준급이다.

미국, 일본 등 저들만이 아니라 우리도 즐길 만한 공룡 영화를 만들어냈다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일찍이 강제규 감독의 <쉬리>(1999)가 우리도 할리우드 부럽지 않은 첩보 액션 영화를 빚어낼 수 있다는 확신을 안겨주었듯이.

‘국뽕’의 냄새가 난다고? ‘사심’이 감지된다고? 그럴 수도 있다. 그래도 일단 영화에 성원을 보내련다. 영화를 ‘강추’하련다. 판타지 소설 <공룡 전사 빈>(2011)을 내는 등 판타지와 SF에 대한 관심을 지니고 있는데, 가능하다면 <한반도의 공룡> 이상의 작품을 해보고 싶다. 기회가 된다면 <아바타> 같은 영화를 해보고 싶은 게 내 꿈(단돈 5억으로 100억 효과를 낸 이 남자의 정체는?; https://movie.v.daum.net/v/gkzTOPQPhC 참고 인용)이라는 감독의 포부를 지지한다. 한국 애니, 나아가 한국 문화예술의 미래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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