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봉준호에게 배울 점은 실력보다 태도·가치관

이향 화가가 봉준호 감독에게 자신이 그린 미술작품을 전하고 있다. 2019년 11월 11일 아시아기자협회 선정 2019 자랑스런 아시아인 시상식.

[아시아엔=전찬일 <아시아엔> 대중문화 전문위원, 영화평론가, 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회장] 한국영화 (제작) 100주년이었던 지난해 ‘한국 영화사를 결정지은 변곡점(Turning Point)적 사건 10’을 꼽으면서, 그 마지막 10번째 사건으로 이렇게 진단한 바 있다.

“기생충 한국영화 최초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한국영화와 아시아영화는 물론 세계영화사의 어떤 흐름을 뒤바꿀 역사적 쾌거!”라고 다소 길더라도 그 이유 전문을옮 겨보자.

“혹자는 지나친 과장이요, 사대주의적 호들갑이라고 반문할 법도 하다.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반문은 세계 영화역사에서 칸영화제가 차지해온 위상‧권위를 잘 모르고 던지는 반문일 것도 사실이다. 단언컨대 지난 수십년간, 구체적으로는 프랑스 누벨바그의 총아 프랑수아 트뤼포가 27세의 어린 나이에 ‘400번의 구타’로 1959년 칸 감독상을 거머쥐고, 1960년 페데리코 펠리니가 ‘달콤한 인생’으로 황금종려상을,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가 ‘정사’로 심사위원상(이치가와 곤의 ‘열쇠’와 공동)을 수상하며 ‘현대영화’(Modern Cinema)의 문을 활짝 연 이래 줄곧 세계영화사의 지형도는 사실상 칸영화제에 의해 그려져왔기에 하는 말이다. 이번 칸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봉준호와 경합을 벌인 쿠엔틴 타란티노가 그동안 미국영화는 말할 것 없고 세계 영화계의 중심에 위치해올 수 있었던 것도, 실은 ‘펄프 픽션’이 1994년 칸 황금종려상을 안은 덕택이었음은 주지의 사실 아닌가. 이제 그 무게추는 타란티노에서 봉준호로 전격 이동될 게 틀림없다. 그 잘난, 하지만 특유의 게으름과 서구 우월주의에 물들어 한국영화를 우습게 봐왔던 보수적 영화 역사가들도 더 이상 봉준호의 영화들을, ‘내셔널 시네마’로서 한국영화를 홀대하지 않고 본격 연구하게 될 것이다.”

일말의 ‘잘난 척’에 양해를 구하며 말해보면, 필자의 진단은 적중했다. 그 결정적 증거가 ‘기생충’의 아카데미 4관왕 등극이다. 24개 중 중요치 않은 부문이야 없겠지만 작품, 감독, 각본에 이르는 핵심 세 부문을 다 거머쥔 것도 2015년의 ‘버드맨’ 이후 5년만이다. 감독은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그토록 싫어해 장벽까지 세우며 차별하고 있는 멕시코의 멕시코시티 출신 명장이다.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으로 2018년 90회 오스카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음악상, 미술상 4관왕에 올랐던 기예르모 델 토로가 멕시코 태생이듯이. 이냐리투는 해외에서의 ‘기생충 신드롬’에 으뜸 계기를 제공해준, 고마운 일등공신이기도 하다.

뭔 소리냐고? 2019 칸 경쟁 심사위원장이었으니,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단언컨대 이냐리투는 ‘기생충’이 칸 영예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결정적 변수였다. 2004년 ‘올드보이’(박찬욱)가 칸 심사위원대상을 거머쥐는데 쿠엔틴 타란티노가 그랬듯. 세계는, 우리네 관계는, 호모 사피엔스의 삶과 죽음은 이렇듯 ‘연결’돼 있다. ‘초연결사회’(Hyper-connected Society)이 ‘나비효과’(Butterfly Effect) 등의 개념은 괜한 수사가 아닌 것이다.

과도한 ‘봉테일찬가’라 핀잔을 던져도 하는 수 없다. 봉준호 그는 그런 인류의 현실과 미래, 역사를 그 누구보다 선명히 인지하고 사유‧실천해온 영화감독이다. 봉준호가 작금에 일구고 있는 역사적 성취는 따라서, 작가‧감독으로서 천부적 능력이나 실력 이전에, 탄탄한 인문적 기본기와 그 나름의 배려‧겸손 등 덕목들이 토대를 이루는 세계관‧인간관의 종합산물이지 않을까 싶다.

필자는 그 동안 봉준호 감독과 총 세 차례의 인터뷰를 했다. 첫번째 인터뷰는 ‘마더’가 2009년 선보인 한국영화 중 최고작으로 선정돼, <2010년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영화>에 싣기 위해 했을 때였다. 당시 봉 감독은 미국에, 나는 베를린국제영화제에 가있어 서면으로 질문을 보냈다. 그때 그는 답변이 늦어 죄송하다는 사과와 함께, 더 이상 성실할 수 없을 답변을 음성파일로 보내왔다. 그 꼼꼼한 답변은 내게 ‘감독 봉준호’를 넘어 ‘인간 봉준호’에 새삼 주목케 한 어떤 모멘텀이었다.

‘살인의 추억’(2003)이야 ‘기생충’ 이전 21세기 최고 한국영화로 손꼽아왔으나, ‘괴물’(2006)이나 ‘마더’는 ‘살인의 추억’만큼 인정하지 않아왔던 터라 그 모멘텀은 내게 봉준호를 다시 바라보고 사유하게 하기 모자람 없었다. 그 이후 봉준호는 내게 감독 이전에 인간으로서 함께해왔다.
그 인터뷰에서 그는 말했다. “늘 변화하고 싶습니다”라고. 그 변화는 ‘설국열차’로 다가왔다. 영화는 <2014년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영화>에서 또다시 최고 한국영화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그때 형제 못잖게 가까운 음악평론가 임진모와 함께 방배동 어느 카페에서 두번째 인터뷰를 했다.

세번째는 칸 황금종려상을 거머쥔 이후, 출간 예정인 봉준호 단행본을 위해 한 인터뷰였다. 그때 그는 ‘신체 탈진+영혼 가출’(봉 감독이 직접 보내온 자신의 상태를 묘사한 표현이다) 와중에도, 특유의 성실함‧꼼꼼함으로 인터뷰어를 다시금 감탄케 했다.

필자는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세 번째 인터뷰에서 ‘기생충’에 대해 “수십년 동안 역대 1위로 꼽은 김기영 감독의 ‘하녀’(1960)를 넘어섰다고 주저 없이 평가한 유일한 영화라고 극찬하고” 있으며, “그것이 ‘기생충’에 대한 내 최종 평가”라고 했더니, “김기영 감독님보다요? 에이 그럴 순 없죠”라고 답해 한바탕 웃었던 때를. 명색이 30년 가까이 활동해온 평론가의 평가를 일거에 사양하는 겸양이랄까. 나는 그의 그 겸양을 받아들여 여전히 한국영화 역대 1위작은 ‘하녀’로, ‘기생충’을 2위에 위치시키고 있다.

그때 그 겸양은 그저 위선적 제스처가 아니었다. 그 증거들은 이번 오스카 시상식에서도 어김없이 드러났다. 작품상 수상 후 끝내 마이크를 잡지 않은 데에서, 단적으로. 그 전에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 감독상 수상 때 이미 소감을 피력했다 할지라도 그 함의에서 그 세 소감을 합쳐도 작품상의 그것에는 미치지 못할 터이거늘, 그는 자신이 받아 마땅한 그 스포트라이트를 공동 제작자 곽신애 바른손 대표와 책임 프로듀서(CP)인 이미경 CJ 부회장 등에게 돌렸다. 뿐만 아니다. 기회 있을 때마다 그는 공을 함께 한 배우들과 스태프들에게, 심지어 통역과 번역을 한 이들에게까지 돌려왔다. 비단 정치권에서만이 아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나는 그런 감동적 사양‧겸양을 목격‧체험한 적 없다. 놀랍지 않은가.

서면이 한번 포함되어 있긴 해도 한 감독과 한 평론가가 10년에 걸쳐 세번에 걸친 인터뷰를 했다는 것은, 개인적으로도 특별한 함의를 띄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인지 지금 이 순간 감회가 한층 더 남다르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나치게 주관적‧추상적으로 비칠지언정, 이 역설을 하면서 이 특별원고를 마치련다. 감독‧인간 봉준호에게 우리가 뭔가를 배우려 한다면, 그것은 그의 실력보다는 그의 태도‧가치관이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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