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론가 전찬일의 ‘코로나19’ 100% 활용하기

[아시아엔=전찬일 <아시아엔> 대중문화 전문위원, 영화평론가, 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회장] 바야흐로 ‘코로나 시대’다. 몇 개월째 세계인들의 삶을 좌우하고 있는, ‘코로나19’에 지지 않으려고 무던히 견디고 있는 중이다.

“위기는 기회”라고, 그 신종 바이러스를 적극 활용하자고 마음먹고, 나름 애써왔다. 그 첫 결실이 6월 초순 출간 예정인 두 번째 단행본 <봉준호 장르가 된 감독>(작가)이다.
‘사회적 거리’에 자의반 타의반 부응한 ‘집콕’이 아니었다면, 완성이 여의치 않았을 결과물이다.

이번 ‘봉테일 탐구서’ 머리말에서 필자는 이렇게 강변했다.

12년 전 나온 첫째 평론집 머리말을 시작하며 나는, ‘희미한 두려움이 동반된 부끄러움’을 피력했었다. 지금 이 순간 부끄러움은 여전하되 더 이상 두렵지는 않다. ‘기록으로서 비평’, ‘문제제기로서 비평’의 존재이유(raison d’être)를 그때보다 훨씬 더 굳게 신뢰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외 저널리스트들과 더불어 해외 평론가들이 아니었다면, <기생충>의 세계(문화)사적 성취는 현실화되지 못했을 게 분명하다. 그런데도 평론이 죽었다고? 어불성설, 아닐까. 평론의 효용성은 당장 눈에 띄지 않을 순 있다. 그렇다고 영원히 죽어 사라진 것이라고 매도당해서는 안 된다. 자위 따위의 핀잔을 먹어도 상관없다. 나는 그렇게 믿으며, 견뎌가련다. 그 동안 그래왔듯, 앞으로도 계속. 나는 비평가다!

이 역설로써 나는 평론가로서 재출발을 선언하는 셈이다. 몇 해 전 다짐했던 ‘글로컬 컬처 플래너 & 커넥터’로서의 길과 더불어, 영화‧문화콘텐츠 비평가로서의 새 삶을 천명하는 것이랄까. 위 저서만이 아니다.

어느 출판사의 의뢰로 또 다른 봉준호 이야기를 준비‧집필 중이다. ‘청소년 롤모델 시리즈’ 중 한 권이다. 이창동(<시>), 이준익(<동주>), 김한민(<명량>), 류승완(<베테랑>), 이한(<완득이>), 장훈(<영화는 영화다>) 등 그 동안 도서출판 작가가 선정한, 봉준호 이외의 ‘오늘의 영화’ 최고 한국영화감독들을 한데 묶어낼 인터뷰집과, 1990년대 말부터 추진해온 <‘비틀어’ 읽는 미니 세계영화사>(가제)를 교양‧교재용으로 올해 안에 마무리해 발간할 계획 등도 품고 있다.

일주일에 한 번꼴로, 적적한 영화관을 찾아 이른바 ‘다양성 영화’들을 관람하기도 했다. 영화사에 신청해 받은 온라인 스크리너로, 예전 같으면 굳이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을 신작들도 보거나, 유튜브 등 이런저런 ‘언택트’(Untact) 매체에서 다채로운 영화들을 감상하고 있기도 하다.

그 중에는 봉준호의 <마더>(2009)의 맹목적 모성과는 판이하게 다른, 파격적‧예외적이면서도 감동적인 모녀 관계를 짚은 소품도 있다. <기생충>의 이정은과 동갑내기로, 그 못잖은 열연을 뽐내는 정은경과, <소통과 거짓말>(2015, 이승원 감독) 등을 통해 발군의 연기력을 발산해온 장선 주연의 <바람의 언덕>이 있다.

2019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첫 선을 보였는바, ‘꽃 삼부작’ <들꽃>(2014), <스틸 플라워>(2015), <재꽃>(2016) 등을 연출한 박석영 감독의 역작이다.

그 외에도 언급할 만한 예들은 적잖다. ‘20세기의 소설’ 중 하나인 <그리스인 조르바>의 그 작가 니코스 카잔자키스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극화한 수작 전기물 <카잔자키스>(야니스 스마라그디스), 독일 태생의, 현존 최상급 미술가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삶과 예술세계를 자유롭게 각색한 비공식 전기물 <작자 미상>(헨켈 폰 도너스마르크), 저 세상 사람이 되기 전 30년간 정원을 벗어난 적 없었다는, ‘작은 것들의 화가’ 모리카즈 구마가이(1880~1977)의 일상을 담담‧섬세하게 포착 담아낸 전기성 휴먼 드라마 <모리의 정원>, 세상에서 가장 위험하고 거친 경마 레이스라는 ‘멜버른 컵’에서 155년 역사상 최초로 우승을 일궈냈다는 ‘위대한 여성’ 미셸 페인(테레사 팔머 분)의 실화를 극화한 가족‧여성 드라마 <라라걸>(Ride Like a Girl, 레이첼 그리피스) 등이다. 이들은 목하 나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뿐만 아니다. 우연찮게 일본 ‘핑크 영화’에 빠져, 그 매혹(Attraction/s)에 허우적대고 있기도 하다. 그 계기는, 현직 유명 AV(Adult Video) 배우이기도 한 사쿠라 마나의 동명 첫 소설을, <국화와 단두대>(2018) 등의 제제 타카히사가 감독한 <최저>(最低, 2017)다.

AV 세계와 연관돼 있는 네 여성 사이를 오가며 펼쳐지는, 인간 냄새 물씬 풍기는 문제적 성애물. 그 존재감을 익히 알아왔던 일본 고유의 장르영화를 향한, 때늦은 관심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저 남녀 간의 정사를 담는 저급한 영화쯤으로 치부돼온 그들에게서, 만든 이들의 영화적 몸부림은 물론 크고 작은 성 정치학적 문제의식, 인간사의 페이소스 같은 요소들을 감지하며 기대하지 않았던 감흥을 맛보는 것은, 내게도 뜻밖이다.

가장 유의미한 일상의 변화는 그러나, 다른 데서 펼쳐지고 있다. 영화 구력 50년, 영화 스터디 38년, 영화 평론 27년 차라고는 하나 여전히 허점투성이의 내 영화적 폭과 깊이를 조금이라도 더 확대‧심화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할까.

의당 맛봤어야 했을 125년 세계 영화사의 문제적 수‧걸작들을 새삼 찾아보거나, 이미 봤더라도 다시 보며 내 엉성한 영화적 기본기를 다지고 부족한 소양‧전문성을 보강하고 있는 것이다. <동경 이야기>(1953)와 더불어, 일본이 배출한 거목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세계를 집대성한 걸작 부-녀 드라마 <만춘>(1949)을 비롯해, <오하루의 일생(서학일대녀)>(1952), <우게쯔 이야기>(1953), <산쇼다유>(1954) 등 1950년대에 빚어낸 대표작들 이전 1930년대에 일찍이 일본영화의 어떤 수준을 확립‧과시했던, 세계 영화사의 또 다른 거장 미조구치 겐지의 <오사카 엘레지>(1936)와 <기온의 자매>(1936), <우주의 침입자>(1978, 필립 카우프만), <바디 에이리언>(1993, 아벨 페라라), <인베이젼>(2007, 올리버 히르쉬비겔)으로 이어지는 ‘신체 강탈자(Body Snatchers) 시리즈’ 그 첫 탄 <신체 강탈자의 침입>(1956, 돈 시겔)가 있다.

그뿐인가? 더 이상 부연이 필요 없을 현대 (스릴러‧공포) 영화의 어떤 전환점이자 <현기증>(1958) 등과 함께 알프레드 히치콕 필모그래피의 최고작으로 평가돼온 <싸이코>(1960), 감독 첸 카이거만이 아니라 비운의 스타 장국영의, 더 나아가 중국영화 ‘제5세대’의 최정점이라 할, 1993년 칸 황금종려상 수상작(제인 캠피언의 <피아노>와 공동) <패왕별희>등이 그 몇몇 사례들이다. 이만 하면 “위기가 기회!”요, 코로나19를 적절히 활용하고 있는 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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