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는 칼보다 강하다” 봉준호 ‘기생충’ 오스카 4관왕···세계영화사 새장 열어

봉준호 감독

이승준의 ‘부재의 기억’ 단편다큐 후보지명도 주목을

[아시아엔=전찬일 <아시아엔> 대중문화 전문위원, 영화평론가, 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회장] ‘기념비적 성취’, ‘역사적 쾌거’ 등의 수사들은 이럴 때 동원하라고 존재하는 게 아닐까!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제92회 아카데미(오스카)상 시상식에서 영예의 작품상을 포함해 감독상,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옛 외국어영화상) 4개의 트로피를 거머쥐는 대 파란‧사건을 일으켰기에 내뱉어보는 감탄이다. <기생충>은 후보 지명된 6개 부문 중 미술상과 편집상을 뺀 나머지 네 부문상을 휩쓸면서, 2020 오스카의 최다 수상작에 등극하기도 했다.

시상식 전까지만 해도 작품상 등 유력 수상작으로 점쳐졌던 샘 멘데스 감독의 <1917>은 작품상, 감독상 등 총 10개 중 기술부문인 촬영상과 시각효과상, 음향효과상 수상에 그치는 ‘이변’ 내지 참패를 연출했다. 이로써 <기생충>은 세계영화역사는 물론, 으레 보수적이요 차별적이었다는 91년 오스카 역사의 새장을 활짝 열어젖혔다.

아카데미 역사에서 작품상 후보에 오른 11번째 외국어 영화요, 작품상과 국제장편영화상 동시에 후보 지명된 6번째 영화였던 <기생충>은 외국어 영화로 오스카 작품상을 안은 사상 최초의 영화라는 신기록을 만들어냈다. 각본상도 한국영화는 물론 아시아 작가 최초다.

그 동안 아시아계 작가가 각본에 참여하고 오스카 후보에 올랐던 영화들로는 1987년의 <나의 아름다운 세탁소>(파키스탄 출신 하니프 쿠레이시 각본)를 필두로, 2000년의 <식스 센스>(인도 M. 나이트 샤말란 각본), 2007년의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일본계 2세 아이리스 야마시타 각본 및 스토리 참여), 2016년의 <인사이드 아웃>(필리핀계 로니 델 카르멘 스토리 참여), 2018년의 <빅식>(파키스탄 쿠마일 난지아니 주연 및 각본 참여)이 있었으나, 수상에는 실패했었다.

봉준호 감독

외국어 영화가 각본상을 가져간 것도 스페인이 낳은 거장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걸작 멜로드라마 <그녀에게> 이후 17년 만이다. 아시아계 감독이 감독상을 받은 것도 대만 출신 이안 감독(<브로크백 마운틴> 2006년, <라이프 오브 파이> 2013년 수상>)에 이어 사상 두 번째다. 칸 황금종려상 수상작으로 오스카 작품상을 안은 영화로도 1955년 칸, 1956년 아카데미 수상을 자랑하는 미국영화 <마티>(델버트 만 감독)에 이어 두 번째다. 그야말로 그칠 줄 모르는 신기록 행진이다.

2019년 제72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거머쥐었을 때 이미 <기생충>은 한국영화의 새장을 활짝 열어젖힌 것이나 다름없었다. 한국영화 (제작) 100주년에 한국영화 사상 최초로 세계 최대 권위를 자랑하는 국제영화제에서 최고 영예를 차지했으니, 어찌 그렇다 평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 영예는 정상이 아니라 새 출발이요 예고편이었다.

<기생충>은 오스카 작품상 수상작이 아니더라도, 한 영화가 지닐 수 있는 모든 자격‧덕목을 두루 겸비한 흔치 않은 경우다. 역대급 완성도는 기본이고, 무엇보다 빈익빈부익부 양극화라는 목하 전 세계의 으뜸 화두를 서구인들이 유난히도 선호하는 가족 드라마라는 그릇과, 가족 희비극이라는 영화 장르로 재밌게 펼쳐 보이면서 결국 재미와 의미에, 시대‧어트랙션(Attraction/s)‧교훈 등을 설득력 가득한 공감으로 전하는데 성공했다.

그래서일 듯. 팔천수백명에 달하는 아카데미 회원들이 어느 모로는 불편하다 못해 불쾌하기까지 한 도발적 대중영화에 최종 승자의 영광을 선사한 것은. 그 점에서 <기생충> 같은 문제적 걸작은 과거에도 별고 없었고, 앞으로도 다시 조우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더욱이 지난 3년간 아카데미는 ‘아메리칸 퍼스트’라는 편협한 이데올로기보다는 ‘반-트럼프적 다양성 가치’를 표방한 영화들을 최종 승자로 비상시키는 파격을 연출한 바 있다. 그로써 기회 있을 때마다 필자가 역설해온 영화의 ‘공론장(Public Sphere)적’ 역할을 증거했다. 2019년의 <그린북>과, 2017년의 <문라이트>는 인종 차별을 극복하려는 흑인들의 흑인들에 의한 흑인들을 위한 영화들이었고, 2018년의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은 멕시코 과달라하라 출신의 명장 기예르모 델 토로가 빚어낸, 냉전시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어드벤처‧공포‧로맨스‧멜로‧스릴러 등 복합 장르영화였다.

따라서 <기생충>의 작품상 수상은 충분히 예견되는 귀결이었다. 그럼에도 막판까지 마음을 졸이고 기대를 낮추려고 애썼던 이유는, 우리네 실사 영화가 단 한 부문도 최종 후보에 들어본 적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 알아서 자기 검열‧폄하를 했다고 할까.

<기생충>은 칸의 기세를 몰아 지난 1월 5일(이하 현지 시간) 열린 제77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을, 2월 2일 열린 제73회 영국영화TV예술아카데미(BAFTA)에서는 외국어영화상과 각본상을 거머쥐었다. 역시 한국영화로는 처음이었다. 2018년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가 BAFTA 외국어영화상을 안은 적이 있으나, 본상인 각본상을 받은 것은 최초였다.

사실 아카데미 레이스에서 6개 부문 후보에 오른 것부터가 일대 파란이요 사건이었다. 순수(?) 아시아영화로는 사상 최다 노미네이션이었으니 말이다. 2001년 이안 감독의 <와호장룡>이 작품상, 감독상, 각색상, 외국어영화상 등 10개 부문 후보에 오르고 외국어영화상, 음악상, 미술상, 촬영상 4관왕에 등극한 적 있으나, 엄밀히는 대만, 홍콩, 중국과 미국이 공동으로 빚어낸 미국영화나 진배 없었다. 봉준호 감독의 <옥자>가 사실상 미국영화였듯이.

실사 극영화로는 상기 6개 후보지명이 모두 한국영화 최초였다. <기생충> 이전에 한국영화가 오스카 최종 후보로 지명된 것은, 단편 애니메이션 부문에서 2005년 박세종 감독의 <축! 생일>이, 2013년 이민규 감독의 <아담과 개>가 오른 게 다였다. 그리고 <기생충>에 가려 충분히 주목을 받지는 못했으나, 세월호 비극을 다룬 이승준 감독의 <부재의 기억>(In the Absence)이 단편 다큐멘터리 후보로 선정됐다는 것도 한국영화의 어떤 국제적 도약을 증거 하기 모자람 없었다.

부재의 기억 이승준 감독(왼쪽)과 감병석 프로듀서 <연합뉴스>

<기생충>의 쾌거가 더 유의미한 까닭은, 국내외의 영화제‧영화상 후보 및 수상 레이스나 비평계의 인정을 넘어 세계 각지의 폭넓은 일반 대중 관객들로부터도 열띤 호응을 끌어내는데 성공해서다. 주지하다시피 <기생충>은 천만 고지를 돌파한 19번째 한국영화에 등극했다. 미국시장에서도 개봉 4개월에 가까운 2월 10일 현재 3600만달러에 근접하며 4000만달러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그 최종 기록이 과연 어디까지 갈지는 계속 지켜봐야 한다. 오스카 이후 ‘기생충 열기’는 한층 더 달아오를 테기 때문이다.

참고삼아 밝히면 미국 개봉 외국어영화 흥행 역대 1위작은 <와호장룡>(1억2800만달러), 2위작은 1998년 칸 심사위원대상, 1999년 오스카 외국어영화상, 남우주연상(로베르토 베니니) 등에 빛나는 이탈리아 로베르토 베니니 감독의 <인생은 아름다워>(5760만달러)다. 반면 전 세계 흥행 성적에서는 2억3000만달러의 <인생은 아름다워>가 <와호장룡>보다 2000만달러 가량 앞선다.

<기생충>을 향한 해외에서의 대중적 인기는 세계 최고의 규모를 자랑하는 미국영화데이터베이스 www.imdb.com에서도 단적으로 드러난다. 이용자들이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영화역사 최고 평점 영화들(Top Rated Movies) 250편 중 23위에 마크돼 있다. 그 순위는 점점 더 상승하리라 예상된다. ‘아카데미 효과’는 벌써 작동되고 있는데, 어제(2월 9일) 25위에서 오늘 24위로 올라가더니 잠시 후 23위로 올랐다. 즉 10점 만점에 8.6점을 얻어 아시아영화로는 19위에 자리하고 있는 구로사와 아키라의 <7인의 사무라이>(8.6점)에 이어 최고 순위다. 예상컨대 <7인의 사무라이>의 순위를 넘어서는 것도 시간문제일 듯. 놀랍지 않은가.

적잖은 전문가들이 한국영화에 한정해 <기생충>이 일구고 있는 역사적 성취를 말해왔으나, 그 성취는 이제부터라도 101년의 한국영화사를 넘어 아시아영화, 더 나아가 세계영화의 기념비적 쾌거로 진단‧회자돼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