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홍상수 ‘도망친 여자’ 베를린영화제 감독상···”때늦은 유의미한 쾌거”

홍상수 감독과 은곰상 트로피 그리고 가리키는 손

[아시아엔=전찬일 <아시아엔> 대중문화 전문위원, 영화평론가, 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회장] ‘코로나19’로 인한 국가적 비상사태 와중에, 한국영화가 또 다른 낭보를 전해왔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프랑스의 아카데미상인 제45회 세자르상에서 외국어영화상을, 홍상수 감독의 <도망친 여자>가 제70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은곰상)을 안았다.

<기생충>이야 새삼스러울 게 없으니 넘어가자. 더 큰 주목에 값하는 건 <도망친 여자>의 수상이다. 사실상 때늦은 감마저 없지 않은, 유의미한 쾌거다.

홍상수 감독이 베를린 경쟁부문에 초청 받은 건 2008년 <밤과 낮>을 시발로 2013년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2017년 <밤의 해변에서 혼자>에 이어 이번이 4번째다. 이전에 상을 받은 건 <밤의 해변에서 혼자>에서 김민희가, 한국 여배우로는 최초로 여우주연상을 거머쥔 게 유일했다.

도망친 여자 포스터

그런데 이번에 24번째 장편 연출작으로 감독상 수상의 영예를 차지했다. 실은 베를린에서만이 아니다. 이른바 세계3대 국제영화제 통틀어 홍상수가 감독상을 받은 것은 처음이다. 칸, 베니스, 베를린으로 한정하면, 홍상수는 상복이 많지 않은 ‘비운의 감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뭔 (헛)소리냐고? 데뷔작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로 1996년 제27회 로테르담영화제 경쟁부문 최우수작품상을 거머쥐는 등의 대파란을 불러일으켰던 명장 홍상수가? 유감스럽게도, 그렇다. 당장 베니스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적은, 단 한번도 없다. 2010년과 2014년에 <옥희의 영화>와 <자유의 언덕>이 황금사자상으로 대변되는 전통의 메인 경쟁 섹션이 아닌, 새로운 경향의 실험적‧창의적 영화들을 대상으로 4개상이 수여되는 오리종티 섹션에 초대됐던 것이 다다. 그때도 수상에는 실패했다.

김민희 홍상수 서영화(왼쪽부터)

총 9회로, 대한민국 최다 초청 감독이라는 기록이 무색하게 칸에서도 <하하하>가 2010년 주목할 만한 시선부문 대상을 받았던 것이 전부다. 박찬욱의 <올드보이>가 심사위원 대상으로 화제의 중심에 섰던 2004년의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2005년 <극장전>, 2012년 <다른 나라에서>, 2017년 <그 후>에 이르기까지 경쟁부문에만 4차례 입성했거늘, 늘 無冠에 그치고 말았다. 그러니 어찌 ‘때늦었으나 유의미한 쾌거’, 가 아니겠는가. 동료 감독 김기덕이 <사마리아>로 이미 16년 전인 2004년에 같은 상을 거머쥐었긴 했어도 말이다.

영화를 미처 보지 못했으니, 리뷰는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하자. 결혼 후 한번도 떨어져본 적 없는 남편이 출장을 간 사이, 김민희가 분한 감희가 세 명의 친구를 만나면서 맛보는 우정 등을 겪는 에피소드들을 그린 영화라니, 홍상수 특유의 동어반복적 반복과 소소함을 넘어 섬세한 미니멀리즘적 변주가 인상적이지 않을까, 짐작해볼 따름이다.

지난해 제28회 부일영화상 본심 심사를 하면서 만났던 전작 <강변호텔>(2019)도 그랬다. 그 수작에 감독과 함께 했던 송선미 권해요와, 그 전작 <풀잎들>(2018)에서 함께 했던 서영화, 김새벽 등이 김민희와 더불어 연기 호흡을 맞추었다니, 기대감이 더 커지는 것도 사실이다.

봉준호의 ‘역사적 쾌거’ 때도 피력했듯, <도망친 여자>의 이번 성취가 더 남다르게 다가서는 것은 무엇보다 개인적 소회 때문이다.

홍상수 감독과 나는 1년 터울의 동년배다. 인생 선배인 그가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로 화려한 감독 신고식을 치렀을 때 필자는 3년차 신예 영화평론가였다. 한 계간지에 심층 인터뷰도 게재한 바 있는 나는, 1996년 5월 한 주간지(시사저널)에 그 데뷔작에 대해 이렇게 쓴 바 있다.

“60년대 이래 불어닥친 영화의 모더니즘을 애써 무시하지 않는다면, 이 작품은 우리 영화에 새 지평을 여는 문제작이다. 이 ‘섬뜩한 발견!’을 소외시킨 일부 대종상 심사위원들이 생각하듯, 일반 관객과 별 관계없는 ‘자위행위적’ 아트 필름이 아니라, 개성과 전망을 겸비한 작가 영화”라고.

“‘한국적 일상성’의 영상화, 캐릭터 구현, 배우 연출 등에서 극명하게 드러나는, 신인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솜씨로”, “대다수 평범한 한국 감독들과 달리”, “어설픈 모방과 짜깁기의 수준을 벗어나 창의성을 드러내는 데 성공했다”고. “이제 우리도 진정한 의미에서 세계 현대영화의 문제작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걸작을 가지게 되었다”고. 그때 그 상찬들은 24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렇다고 홍상수를 향한 上記 상찬이 늘 지속됐던 것은 아니다. 나 역시 그만의 동어반복이 짜증스럽다 못해, 실망한 적도 없지 않다. 감독을 닮은 그렇고 그런 소시민적 사회를 넘어 더 크고 깊은 공동체적 사회를 나아가지 않(거나 못하)는 감독의 행보가 적잖이 못마땅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연재 중이던 한 일간지(인천일보) 고정 칼럼 란에 7번째 영화 <해변의 여인>에 대해 “뜻밖의 수작”이라며 다음과 같이 평했다. “영화는 기대 이상이었다. 아니, 흡족했다. 좋아하기로 치자면 <돼지…>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영화적 재미로는 홍 감독의 전작(全作) 가운데 으뜸일 만했다. 적어도 내겐 그렇게 다가섰다. 적잖은 대목에서 실컷 웃을 수 있었다. 퍽 유쾌하게. 무엇보다 그 동안 영 마땅치 않았던 홍상수 특유의 냉소가 거의 감지되지 않아 좋았다. 김승우-고현정-송선미-김태우에 이르는 주, 조연의 연기도 좋았다. ‘고’와 ‘송’ 두 여우들의 열연은 단연 주목할 만했다. 여러모로 닮은꼴로 구현된 두 여배우의 인물 해석은 최상이었다. 그 둘의 연기에만 초점을 한정한다면, 감독의 최고작이라고 한들 과언만을 아닐 듯싶었다. 특히 고현정의 뻔뻔스러우리만치 능청맞으면서도 깨질듯 섬세한 열연은 가히 ‘발견’이라 할 만했다.”

홍상수의 아홉 번째 장편 나들이 <잘 알지도 못하면서>(2009)에 대해서도 같은 지면에 이렇게 진단했다. “‘2009년의 우리 영화’로서 손색없다. 영화는 박찬욱 감독의 <박쥐>나 봉준호의 <마더> 등에 가려 덜 주목 받긴 했다. 올 칸에서도 그랬다. 공식 경쟁부문(<박쥐>)이나 주목할 만한 시선(<마더>) 등 공식 섹션 아닌, 병행 섹션인 감독 주간에 초청받은 터라 그럴 수밖에 없었다. 천상 저예산 영화다운 그 속내는 얼마나 소박한가. 하지만 제목에 주제가 축약되어 있는 영화는 홍 감독의 전작(全作) 중 가장 재미있으면서도 가볍지 않은 문제작이다. 2시간여가 여느 웰-메이드 주류 영화 못잖은, 아니 그 이상의 극적 리듬을 타고 펼쳐진다. 개성 만점의 엉뚱한 유머·페이소스로, 박찬욱의 그것과는 판이하게 다른, 유쾌한 웃음을 선사하면서.” 그렇다고 “영화가 홍상수 특유의 동어반복을 탈피한 것은 아니다. 소소하다 못해 하찮기까지 한 일상의 비틀기 등은 여전하다. 그 작가적 반복 속에 그러나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유의미한 변주, 여유, 원숙 등이 감지되는 것이 사실이다. 허구 속 감독 구경남(김태우 분)을 통해 자기 자신을 비판·조롱할 수 있다니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그러면서도 냉소로 빠지지 않는다. 그 조롱과 성찰의 ‘사이’’를 견지하는 줄타기도 삼삼하다.(중략) 홍상수 그는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을 걸작을 빚어낸 것이다. 마치 쉬어가듯, 힘을 빼고 빚어낸 저예산 영화를 통해 말이다.”

이번 홍상수의 성취가 반가운 까닭은 물론 위에 적은 개인적 소회 때문만은 아니다. 여러 모로 ‘봉준호 월드’와 대척점에 있으면서도 그 ‘다름’과 ‘새로움’ 등에서 닮은 홍상수가, 봉준호와 나란히 ‘건재’하고 있음을 새삼 확인시켜줬다는 사실도 반갑다. 대한민국이라는 울타리를 넘어 국제적 관점으로 바라보고 사유한다면, 한국영화의 외연과 내포가 상대적으로 한층 더 크고 깊다는 현실을 다시금 환기시켜준 것도 반갑고. 그 반가움들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다른 기회에 상술해야 할 성싶다.

영화 <도망친 여자>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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