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생충’②] 아직 안 보신 당신께 묻습니다···”누가 더 기생충일까요?”
[아시아엔=박명윤 <아시아엔> ‘보건영양’ 논설위원, 보건학박사, 한국보건영양연구소 이사장] 영화 <기생충>이 지난 5월 25일 제72회 칸영화제(Festival de Cannes)에서 황금종려상(Palme d’Or, Golden Palm)을 받으면서 우리의 관심은 온통 이 영화에 쏠렸다. 프랑스 남부 칸(Cannes)에서 열리는 ‘칸 영화제’는 독일의 ‘베를린 국제영화제(Berlin Inernational Film Festival)’, 이탈리아의 ‘베니스 국제영화제(Venice Internaional Film Fesival)’와 함께 세계 3대 영화제로 불린다. 칸 영화제에서 20편 내외의 초청작이 ‘황금종려상’을 두고 경쟁한다.
영화의 줄거리는 가난한 가족과 부자 가족을 등장시켜 암울한 사회상을 비춘다. 기택(송강호) 가족은 빈(半)지하방에서 전원이 백수로 살 길이 막막하지만 관계는 좋다. 장남 기우(최우식)에게 명문대생 친구가 연결시켜 준 고액 과외선생으로 박사장(이선균)네로 들어가면서부터 본격적인 사건들이 시작된다. 영화는 중반부터 새로운 사건이 연이어 터지고 반전의 반전을 거듭한다. 속임수와 계략이 엇갈리며 ‘기생(寄生)’하려다 실패한다.
영화 <기생충>은 양극화와 빈부(貧富) 격차를 블랙 코미디(black comedy)로 풀어낸다. 칸에서 <기생충>을 본 외국인들은 한결같이 “우리나라 이야기 같다”고 말했다.
‘황금종려상’ 트로피는 칸 영화제의 최고상에 걸맞게 전문가들이 제작한다. 칸 영화제의 로고이자 트로피를 상징하는 종려나무(棕櫚, palm)의 줄기와 잎사귀는 프랑스의 영화감독이자 작가인 장 콕토(Jean Cocteau, 1889-1963)가 디자인한 것이다. 트로피는 18K 금 118g으로 만든 종려나무 줄기와 잎사귀를 붙여 제작하며, 받침대는 순수한 크리스탈(crystal, 수정)이다. 金의 따뜻함과 水晶의 차가움이 빚어낸 아름다운 조화다.
봉준호 감독은 기자회견을 하는 자리에서 “올해는 한국 영화가 100주년을 맞는 해여서 더욱 각별하다”며 “놀랍고 기쁘다. 전 세계 영화팬들이 한국영화 전체에 투자하도록 고무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영화 속 인물이 북한 앵커 흉내를 내는 장면을 북한을 풍자하고 비웃는 것이냐”는 기자 질문에 봉 감독은 “북한을 모욕하려 한 것이 아니다. 심각한 메시지로 해석하지 말아달라”고 답했다.
올해는 1919년 종로구 묘동 소재 단성사(團成社) 극장에서 우리가 만든 첫 영화 <의리적 구토>(義理的仇討)가 상영된 지 100년 되는 해이다. ‘의리적 구토’는 당시 단성사 사장이던 박승필이 제작비 5000원을 대고, 신파극장 ‘신극좌’를 이끌던 김도산이 각본·감독·주연을 맡아 만들었다. 1962년 공보부는 ‘의리적 구토’가 단성사에서 처음 상영된 날을 기념해 10월 27일을 ‘영화의 날’로 정했다.
유럽에서 열리는 ‘3대 영화제’를 생긴 순서로 꼽으면 베니스(1932), 칸(1946), 베를린(1951)이지만, 우리와 친밀도나 이름값을 매기면 아무래도 칸영화제가 먼저 떠오른다. 우리나라 영화감독들이 경쟁과 비경쟁 부문을 포함하여 1980년대부터 올해까지 12번 문을 두드린 후 받은 상이다. 일본은 황금종려상을 다섯 번 받았고, 중국은 1993년 첸 카이거 감독의 <패왕별희>가 여성감독 제인 캠피온의 <피아노>와 공동으로 수상했다.
한국 영화가 칸 영화제의 꽃인 장편 경쟁 부문에 조청된 건 2000년대에 들어서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이 첫발을 내디뎠고 봉준호를 비롯해 김기덕, 박찬욱, 이창동, 홍상수 감독이 돌아가며 꾸준히 경쟁 부문에 이름을 올렸다. 2002년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이 감독상을 , 2004년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가 심사위원대상을 탔다. 2007년에는 이창동 감독의 <밀양>으로 배우 전도연이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베니스영화제에서는 2012년 김기덕 감독이 <피에타>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봉준호(연세대 사회학과, 88학번) 감독은 3년 전 영화인을 대상으로 한 ‘마스터 클래스’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에게 궁극적 공포는 과연 내게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 의심이 드는 때일 것이다. 어떤 핑계도 댈 수 없는 잔혹한 순간과 맞닥뜨리는 것, 하지만 궁극의 공포란 영원히 해소되지 않는 것이므로 그냥 짊어지고 갈 수밖에 없고, 자신에게 최면을 걸면서 계속 앞으로 나가야만 하는 것이다.” 봉 감독은 작품성과 대중성을 겸비했다고 인정받았지만, 자신의 재능에 대한 의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극복되지 않는 불안과 공포를 버텨내면서 마침내 칸의 월계관을 썼다.
봉준호 감독(50)과 주연배우 송강호(52)는 22년 전 까까머리 조연출과 늦깎이 무명배우로 만나 서로 가능성을 알아본 이후 영화 <살인의 추억>부터 <괴물>, <설국열차> 그리고 <기생충>까지 17년을 함께한 동반자(同伴者)로 서로 존경과 예우를 했다. <기생충>이 봉준호 리얼리즘의 정점이라면, 그 중심에는 송강호의 설득력 있는 연기가 있다. 인간 관계에서 예의를 어느 정도까지 지키느냐에 따라 기생(寄生)에서 끝나지 않고 서로 상생(相生)과 공생(共生)을 이룰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