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 영화제 현지르포⑤] 봉준호 ‘옥자’, 홍상수 ‘그 후’ 탈락 메운 스웨덴 영화 ‘더 스퀘어’
[아시아엔=칸/전찬일 <아시아엔> ‘문화비평’ 전문위원, 영화평론가] 28일 저녁(현지 시간) 스웨덴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의 <더 스퀘어>에 황금종려상을 안기며, 제70회 칸영화제가 12일 간의 대장정을 마무리했다. 시종 크고 작은 화제를 불러 모으며 기대를 한껏 높였던 봉준호 감독의 <옥자>와 홍상수 감독의 <그 후>는 끝내 수상에 실패했다.
10년 전 <너를 보내는 숲>으로 심사위원대상을 안은 바 있는 가와세 나오미의 <히카리> 또한 무관에 그치며, 아시아 영화는 단 한 편도 수상의 영예를 안지 못했다. 반면 ‘주목할 만한 시선 상’을 이란영화 <레르드>(모하마드 라술로프 감독)가, 단편 부문 황금종려상을 중국 영화 <젠틀 나이트>(小城二月, 치우양 감독)가 거머쥐면서, 장편 경쟁 부문에서 구겨진 아시아 영화의 체면을 지켰다.
<더 스퀘어>는 애당초 발표됐던 18편의 경쟁작에 포함되지 않았으나, 추가로 합류하게 된 경우.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광장에 ‘더 스퀘어’라는 설치품을 전시하는, 유명 미술관 큐레이터 크리스티안(클라에스 방 분)을 축으로 펼쳐지는 휴먼 드라마다. 엘리자베스 모스(<트루스>) 등이 가세한 출연진들의 호연, 유려한 리듬의 플롯, 유머 머금은 감동적 메시지 등 눈길을 끄는 덕목이 적잖긴 하나 세계 최고 영화제의 최고상을 차지할 만큼 압도적이진 않다. 스크린 인터내셔널 평균 평점도 2.7(4점 만점)로, 러시아 안드레이 즈비아긴체프 감독의 <러브리스>(3.2점), 영국 린 램지 감독의 <유 워 네버 리얼리 히어>(3.1점)에 이어 미국 토드 헤인즈 감독의 <원더스트럭>과 나란히 3위권이었다. 호평은 받았으되, 유력 황금종려상 후보로 예측되진 않았었다.
그래서일까 시상식 후 열린 심사위원단 기자회견에서도, <더 스퀘어>의 영화적 덕목을 강변하는 ‘어색한’ 광경이 연출됐다. 모로코 출신 프랑스 감독 로뱅 캉피요의 <120 비츠 퍼 미닛>(이하 BPM)에 황금종려상이 아닌 심사위원대상으로 주기로 결정하면서, 두 영화를 놓고 심사위원들 간에 벌어졌을 법한 갈등을 시사하는 장면이기도 했다. 심사위원장 페드로 알모도바르가 <BPM>이 안겨준 감동을 말하며 울먹이는 데서도, 이 추측은 뒷받침될 만했다. 실은 그 정도가 아니었다. 기자회견장에는 <BPM>이 황금종려상을 받았어야 한다는 분위기가 감돌기도 했다. <BPM>이 “걸작”이며 “발견”이라고 적은 종이 피켓을 들고 시위하는 이도 있었다.
단언컨대 <BPM>은 2017 칸의 발견이요 축복이다. 스크린에서는 <그 후>와 함께 2.5점을 받는데 그쳤으나, 갈라 크롸제트의 11인 평자들로부터는 무려 3.7점이라는 기록적 종합 평점을 얻은 문제적 걸작. 상대적으로 스크린이나 갈라보다 ‘짠’ 르 필름 프랑세로부터도 2.93점을 득해 압도적 1위였다. 2위가 2.2점. <러브리스>와 <리다우터블>(프랑스, 미셸 아자나비시우스)이다.
영화는 AIDS 양성반응자들의 권익을 옹호하기 위해 1992년 결성된 액티비스트 그룹 ‘액트 업 파리’ 멤버들의 활동상과 두 ‘게이’ 간의 절절한 러브 스토리 등을 바탕으로 전개되는 ‘하드코어’ 휴먼 드라마다. 이처럼 ‘센’ 영화에 2등 상을 안긴 심사위원들의 안목에 갈채를 보내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황금종려상이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취향에 따라 거북살스러울 수도 있다. 허나 <BPM>의 영화적 수준은 압권이다. 액트 업 파리의 공적 토론·실천과 두 주인공의 사랑을 오가며 펼쳐지는 드라마는 공적 영역(Public Sphere)과 사적 영역(Private Sphere)이 별개가 아니라 하나라는 사실을 설득력 있게 웅변한다. 그 두 영역을 매개해주는 장치는 다음 아닌 ‘분당 120 비츠’의 음악을 곁들인 춤.
“액션=삶, 침묵=죽음”이라는 주제의식은 말할 것 없고, 완벽한 내러티브 구조를 가능케 하는 결정적 장치다. 다르넨 형제의 2016년 칸 경쟁작 <언노운 걸>의 여주인공 아델 아에넬은 주연이라기보다는 조연에 가깝다. 위와 같은 수준에도 <BPM>이 황금종려상을 거머쥐진 못하리라 예상했던 건 이렇듯, 두 주인공의 사랑을 묘사하는 수위가 워낙 높아서였다.
사실 막판까지 유력 황금종려상 후보로 점쳐진 건 <러브리스>였다. 스크린, 르 필름 프랑세, 갈라 등 칸 현지 데일리들로부터 고른 지지를 받아서였다. 이혼을 앞 둔, 결국에는 이혼을 하고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두 남-녀의 외동아들이 어느 날 실종되면서 진행되는 관계의 드라마이자 러시아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암울한 초상. 하지만 플롯이 지나치게 도식적이며 단순해 황금종려상을 가져가긴 무리라는 게 내 판단이었다. 영화는 결국 심사위원상으로 귀착됐다.
3등상인 감독상은 여걸 소피아 코폴라의 품에 안겨졌다. 토마스 J. 칼리넌의 동명 소설을 극화한 돈 시겔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의 1971년작을 리메이크한 <매혹당한 사람들>(The Beguiled). 미국 남북전쟁 와중인 1864년, 다양한 나이의 여성 7명이 살아가는 남부 버지니아의 한 학교에 부상당한 북군이 들어오면서 벌어지는 심리 스릴러. 한 남자를 두고 벌이는 여자들의 갈등도 그렇지만, 콜린 파렐, 니콜 키드먼, 커스틴 던스트, 엘르 패닝 등 스타군의 연기를 즐기는 재미만으로도 흥미롭다. 시대극에 걸 맞는 섬세한 미장센도 주목에 값한다.
한편 남녀 주연상은 <유 워 네버 리얼리 히어>의 호아킨 피닉스와, 독일 파티 아킨 감독의 <인 더 페이드>의 다이앤 크루거가 가져갔다. 두 명우는 성매매 피해 소녀를 구하기 위해 돈을 받고 길을 나서는, 정의로우나 그 못잖게 폭력적인 전쟁 베테랑과, 네오나치주의자들에 의한 폭탄 테러로 남편과 아들을 동시에 잃고 복수에 나서는 여인으로 분해 ‘재발견’의 열연을 선사한다. 각본상은 공동수상이었는 바 <유 워 네버 리얼리 히어>와, 그리스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더 킬링 오브 더 세이크리드 디어> 그 주인공들. 콜린 파렐과 니콜 키드먼 등이 출연한 <더 킬링?>은 잘 나가는 한 외과 의사를 중심으로 그의 가족과 미스터리한 한 소년을 둘러싸고 펼쳐지는 스릴러 드라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