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오스카상] 문화강국 원천은 ‘신명’과 ‘한’···”내 인생에 태클 걸지마”
[아시아엔=김현원 뉴패러다이머, 연세대의대 교수]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2020년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각본상·국제영화상·감독상·작품상을 모두 받으면서 온 세상을 놀라게 했다. 아카데미상에서 가장 중요한 2가지 상을 뽑는다면 감독상과 작품상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감독상과 작품상 중 한개를 받을 것으로 봤다. 막상 감독상을 받을 때 놀라기도 했지만 그래서 작품상은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작품상은 영어로 ‘Best Picture Award’로 표현된다. 그해의 가장 뛰어난 영화에 주어지는 상이다. 제인폰다가 작품상에 기생충을 호명하는 순간 나는 믿을 수 없었고, 기쁨의 고함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기생충은 세계적인 문제인 빈부간 갈등을 그렸다. 그동안 빈부 갈등을 소재로 다룬 영화는 수 없이 많았다. 무엇이 기생충을 다른 작품과 차별화했는가? 기생충은 일단 재미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되는 반전 속에 코미디이기도 하고, 스릴러이기도 하고, 예측하지 못한 결말과 함께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그동안 작품상 수상 영화들이 잔잔하게 한 가지 주제를 향해서 묵직하게 나갔던 것과는 대조된다.
내가 기생충을 보고 느낀 충격을 구태여 비교한다면 <매트릭스>를 보고 느낀 충격과 비슷하다. 매트릭스는 매우 재미있고 매우 파격적인 주제를 담고 있었다. 매트릭스가 아카데미상을 몇 개 받았지만 작품상 후보에는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아마 너무 재미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너무 재미있으면 마치 수준 낮은 것 같이 느껴지는 정서가 아카데미에 있었을지 모른다.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영화중에서 내 기억에 재미있는 영화는 없었다. 그런데 기생충은 적어도 나에게는 처음부터 끝까지 흥미진진했다. 오히려 아카데미상이 기생충이라는 무게 있고 재미 있는 영화 때문에 변했을지도 모른다.
기생충은 무게 있는 주제를 참 재미있게 표현했다. 이것은 분명 봉준호 감독의 천재성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기생충의 성공 배경으로 한국의 문화환경과 역사성이 보였다. 한국인은 근본적으로 신명에 도취돼 잘 논다. 동시에 나라가 침략을 많이 당해서인지 한을 갖고 있다. 이러한 상반되는 두 가지의 극단이 한민족의 정서 속에 담겨 있다.
어떤 때는 ‘은근과 끈기’와 같은 성질을 갖고 있다가 한순간에 ‘빨리빨리’로 대변되는 급한 성질로 변해버린다. 필자의 고교 시절 국어 교과서에 박종홍 교수는 ‘은기와 끈기’라는 글로 한국의 민족성을 표현했다. 그리고 당연하게 여겨졌다. 독재에 시달리다 민주주의를 쟁취하고, 민주주의도 단숨에 극한까지 나아가버린다.
자유와 평등으로 표현되는 현대사회의 가장 중요한 이념도 극단으로 표현해 버린다. 자유의 극단이 민주주의이고 평등의 극단이 공산주의라면 한반도는 극단의 이념이 동시에 마주하고 있는 유일한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양극단의 성질을 몸에 지닌 한민족은 동시에 역동적인 에너지를 가질 수밖에 없다. 1950년대에 태어난 필자는 베이비붐시대의 한가운데 있다. 세계 최빈국에서 태어나 일본이 별로 부럽지 않은 선진국의 수준에 진입되는 과정을 다 지켜보았다. 지구상의 어느 나라에도 없던 기적을 한 세대에 만들었다.
한국은 역사적으로 봤을 때 왕권이 약했다. 왕의 일거수일투족도 사관이 옆에서 다 기록하는 바람에 왕에게는 별로 자유도 없었다. 어떤 결정도 신하들이 허락하지 않으면 내리기 힘들었다. 따라서 다른 나라에 비해 백성을 희생시키며 진행하는 큰 토목공사도 없었고, 그러한 건축물이 당연히 존재하지도 않는다. 왕권이 약한 반면 왕조는 오래 지속되었다.
삼국시대의 고구려·백제 왕조가 700년 가까이 지속되었고, 신라는 천년을 지속했다. 이어진 천년을 고려와 조선이 나누었으니 세계 역사 속에 기원 이후 기본적으로 왕조가 5백년 지속되는 민족은 없었다. 이러한 국민의 힘은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나타났다. 평소에는 숨어 지내던 백성들이 나타나서 나라를 지켰다. 2천년이 넘는 불교의 역사 속에 호국불교라는 이름으로 불교가 나타나는 것도 유일한 일이다.
역사적으로 나라가 부강하면 남을 침략한다. 나라의 힘이 아니라 국민의 힘이 가장 잘 표현되는 것이 문화다. 양극단을 포함하는 문화는 결국 넓은 포용력으로 표현될 수 있다. 일본과 같이 사무라이가 언제든지 사람들을 칼로 벨 수 있었던 나라에서 숨을 죽이고 살던 민족은 문화가 한정될 수밖에 없다. 예의를 지키고 상대방을 불편하게 하지 않는 일본인들의 예절은 그들의 장점으로 표현될 수 있겠지만 문화적으로는 제약이 될 수밖에 없다. 틀 안에서 문화가 발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신명과 한을 동시에 지닌 대한민국의 문화가 경제적으로 가난을 벗어나자마자 21세기에 드디어 판을 만났다.
한국은 스프링의 나라이다. 움츠려 들었다 다시 펴질 때 모든 것을 한꺼번에 이룬다. 일시 움츠려 들어 독재의 시대를 지나 펴질 때 바로 민주주의를 완성한다. 오히려 더 넘어가서 경찰이 시민에게 맞을 정도로 넘치는 자유가 문제일 정도다. 문화도 마찬가지이다. 남의 나라에 지배당하고, 이어진 전쟁으로 최빈국에 머물 때 우리는 문화에 관한 한 열등감으로 위축되었다. 다시 그 문화의 스프링이 펴질 때 세계의 문화강국으로 단숨에 올라선다.
BTS로 대변되는 K 팝, 한류드라마 그리고 세계에서 유일하게 할리우드에 지배되지 않는 영화···. 모든 분야에서 이미 한국은 세계의 문화강국이 되었다. 봉준호 감독이 이번에 화룡점정을 찍었다. 세계의 어느 나라도 하지 못한 일을 한국의 문화가 단번에 해버린 것이다.
우리 민족이 갖고 있는 문화의 힘은 그냥 내버려두면 발휘된다. 노래도, 드라마도, 영화도 내버려두면 알아서 신명나게 논다. 최근 미스터트롯을 통해서 유행하기 시작한 노래의 제목 “내 인생에 태클을 걸지마”와 같이 내버려 두면 된다. 방해만 하지 않으면 원래 한민족에 내재되어 있는 DNA가 발현된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봉준호 감독은 블랙리스트로 영화를 만들 자유가 제한되어 있었다.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모습을 보였던 숨어있던 영화의 후원자 이미경 부회장도 몇 년 전만 해도 한국에서 거의 추방 수준의 대접을 받지 않았던가? 이제 대한민국의 움츠려들었던 스프링이 펴지기 시작했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상은 이제 문화강국 대한민국의 시작이다.
마지막으로 백범 김구 선생의 말을 인용하면서 이 글을 마무리한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하지, 가장 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우리의 부력이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이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선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김구 선생은 가장 정확하게 문화의 힘을 표현하였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선 남에게 행복을 준다.”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은 대한민국이 문화강국임을 선포하는 자리였다. 앞으로 대한민국이 김구 선생 말씀대로 이 세상 모두에게 행복을 주는 나라가 되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