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기생충'(Parasite), ‘기생’ 넘어 ‘상생’·’공생’의 길 열어

봉준호 감독, 그의 트로피는 그의 고뇌와 인내다

[아시아엔=박명윤 <아시아엔> ‘보건영양’ 논설위원, 보건학박사, 한국보건영양연구소 이사장] 요즘 신문 1면에는 중국 ‘우한(武漢) 폐렴’(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등 우울한 소식들이 실렀으나, 오늘(2월 11일) 신문에는 봉준호 감독의 환한 웃음과 오스카상(Oscars) 4관왕 소식이 실려 있어 기분 좋은 하루를 시작했다.

‘Oscar상’이란 ‘아카데미상’을 달리 이르는 말이며, 수상자에게 오스카라는 인물을 새긴 트로피를 준다. 손에 칼을 쥐고 필름 위에 선 기사 형상의 ‘오스카 트로피’는 현재 전 세계에서 열리는 각종 시상식, 특히 연예 관련 시상식 중 가장 유명한 트로피라고 할 수 있다.

봉준호 감독

트로피 위는 브리타늄(합금) 재질에 금박을 입혔고, 아래는 검은 대리석으로 돼 있다. 높이는 34cm, 무게는 3.85kg이며 제작비용은 400달러(48만원)로 알려져 있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Parasite)은 2월 9일(일요일, 현지시각) 미국 LA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Academy Awards)에서 최고 권위인 작품상(Best Picture)을 위시하여 감독상(Best Achievement in Directing), 각본상(Best Writing/Original Screenplay), 국제영화상(Best International Feature Film)까지 4관왕을 차지했다.

아시아기자협회(Asia Journalist Assocition, AJA)에서 발행하는 <아시아엔>(AsiaN) 논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필자는 봉준호 감독과 지난해 11월 11일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린 <아시아엔> 창간 8주년 행사장에서 처음 인사를 나누었다. 한국어, 영어, 아랍어 3개 언어로 발행되는 <아시아엔>은 아시아인의 시각으로 아시아의 관점에서 아시아 권역의 뉴스를 생산·배포하고 있다.

아시아기자협회는 매년 ‘자랑스런 아시아인’을 선정하여 시상하고 있으며, ‘2019 자랑스런 아시아인’으로 봉준호 감독이 선정되었다. 역대 주요 수상자는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 이준익 영화감독,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 마윈 알리바바 창업자, 미르조예프 우즈벡 대통령, 박항서 축구감독 등이다. 2019 5월 제72회 프랑스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은 한국영화의 가장 뛰어난 감독으로 손꼽히고 있다.

봉준호 감독에게 2019 자랑스런 아시아인 상을 수여하고 있는 이형균 아시아기자협회 이사장

봉준호 감독은 이형균 아시아기자협회 이사장으로부터 ‘AJA Award’ 상패를 받은 뒤 수상소감을 통해 “저는 아시아를 대표할 만한 사람도 아니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일을 해온 것도 아니지만, 20년간 7편의 영화를 만들어 왔다”며 “<기생충>이란 영화가 완성된 후 많은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어서 어리둥절한 상황인데 그 연장선상에서 이렇게 의미 있는 좋은 상을 주신 것 같아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봉 감독은 “그 무엇보다 강한 카메라와 함께 저의 영화 인생을 변함없이 이어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필자는 2019년 5월 14일 제72회 프랑스 칸 국제영화제(Festival de Cannes)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영화 <기생충>을 작년 6월 1일 아내와 함께 상암동 CGV에서 관람했다. 영화 줄거리는 가난한 가족과 부자 가족을 등장시켜 암울한 사회상을 비춘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영화 포스터

기택(송광호) 가족은 반(半)지하방에서 전원이 백수로 살 길이 막막하지만 관계는 좋다. 장남 기우(최우식)에게 명문대생 친구가 연결시켜 준 고액 과외선생으로 박사장(이선균)네로 들어가면서부터 본격적인 사건들이 시작된다. 영화는 중반부터 새로운 사건이 연이어 터지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 속임수와 계략이 엇갈리며 ‘기생’하려다 실패한다. ‘기생충’은 양극화와 빈부 격차를 블랙 코미디(black comedy)로 풀어냈다.

“이 기생충같은 놈아”라는 욕설은 주로 20대 후반 이상의 성인 남자가 부모집에서 무위도식(無爲徒食)할 때 쓰인다. 즉, 부모로부터 독립해서 혼자 힘으로 일을 해서 먹고 살아야 한 턴데 왜 부모집에서 밥만 축내고 있느냐는 힐난이 ‘기생충’이란 단어에 함축되어 있다.

한 생물체가 다른 종의 생물체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데 양쪽이 서로 이득을 취하면 공생(共生, symbiosis)이라 한다. 반면에 한쪽만 일방적으로 이득을 취하는 경우에는 기생(寄生, parasitism)이라 하며, 이득을 보는 생물체를 기생물(寄生物, parasite), 손해를 보는 생물체를 숙주(宿主, host)라고 한다. 이들의 관계는 일시적일 수도, 영구적일 수도 있다.

‘기생충’은 다세포 구조를 가진 진핵생물(眞核生物)로 선충류(線蟲類), 흡충류(吸蟲類), 조충류(?蟲類)를 총칭한 말이다. ‘십이지장충’은 소장에서 서식하는 기생충으로 기생하고 있는 사람이나 동물의 배설물을 통해 알을 밖으로 내보내며, 알에서 깨어난 유충은 흙속에서 성장하여 흙에 닿은 손이나 발을 통해 우리 몸 안으로 들어온다.

‘회충’은 주로 알이 묻어 있는 채소를 먹었을 때 감염되며, 몸길이가 14~35cm까지 자란다. 회충은 주로 소장에서 기생하지만, 간혹 허파에 들어가서 고열·호흡곤란 같은 증상을 일으키기도 한다.

‘요충’은 어린아이가 목욕을 한 뒤에도 항문이 가렵다고 한다면 이를 의심해야 한다. 요충은 가려움만 빼면 큰 해는 끼치지 않지만, 수면을 방해하여 성장에 나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조충’(촌충)은 주로 물고기, 쇠고기, 돼지고기 등을 익히지 않고 날것으로 먹을 때 감염된다. 조충은 소장의 벽을 허물고 피를 빨아 먹고 살며, 몸 길이가 2~3m에 이르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기생충 퇴치가 본격화한 것은 1964년 기생충 학자들이 중심이 되어 만들어진 한국기생충박멸협회가 창립되면서부터이다. 1966년 ‘기생충질환예방법’이 제정되었고, 1969년부터 대변(大便) 집단검사가 시작되어 당시 학교를 다닌 사람들은 ‘채변봉투’를 기억할 것이다. 전국 기생충 감염률은 1971년 84.3%, 1976년 63.2%, 1981년 41.1%, 1986년 12.9%로 감소하여 1992년에는 3.8%로 낮아졌고, 2013년 감염률은 2.6%였다.

1964년 설립된 한국기생충박멸협회가 제5군 감염병(기생충병)이 더 이상 국민건강의 위해요인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에서 1987년 한국건강관리협회로 흡수 통합되었다. 한국건강관리협회(KAHP)에 기생충박물관(Parasite Museum)을 2017년 12월 개관했다. 기생충 감염이 줄어들긴 했지만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 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장내 기생충에 감염된 사례가 7668건에 달한다. 간흡충(肝吸蟲, 간디스토마) 감염이 4850건, 장흡충(腸吸蟲) 1431건, 요충 888건, 편충 485건으로 나타났다.

기생충 예방의 기본은 외출 후와 식사 전에 손을 깨끗하게 씻는 것이다. 또 정기적으로 구충제(驅蟲劑, anthelmintics)를 먹는다. 함께 생활하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다시 기생충을 옮기지 않도록 다 같이 복용해야 한다. 애완동물을 키우는 가정에서는 애완동물의 기생충 관리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봉준호 감독 첫 작품 백색인

한편 봉준호(연세대 사회학과 88학번) 감독은 한국영화아카데미 11기 졸업생으로 1993년 6mm 단편 <백색인>이 첫 데뷔작이다. 일상에 대한 위트가 돋보이는 <플란다스의 개>로 2000년 정식으로 데뷔했다. 2003년 <살인의 추억>은 그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했다는 평가와 작품성과 흥행성 모두 인정받아 극장가를 뜨겁게 달궜다. 2006년 <괴물>로 칸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았으며, 최단기 천만 관객 돌파라는 대기록을 수립했다. 그는 이어 2009년 <마더>, 2013년 <설국열차>, 2017년 <옥자> 등을 발표했다.

봉준호 감독의 <플란다스의 개>

봉준호 감독은 4년 전 영화인을 대상으로 한 ‘마스터 클래스’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에게 궁극적 공포는 과연 내게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 의심이 드는 때일 것이다. 어떤 핑계도 댈 수 없는 잔혹한 순간과 맞닥뜨리는 것, 하지만 궁극의 공포란 영원히 해소되지 않는 것이므로 그냥 짊어지고 갈 수밖에 없고, 자신에게 최면을 걸면서 계속 앞으로 나가야만 하는 것이다.”

영화 괴물 포스터. 그후 13년 봉준호 감독은 기생충으로 훨씬 진화한 모습을 선사했다

봉 감독은 작품성과 대중성을 겸비했다고 인정받았지만, 자신의 재능에 대한 의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극복되지 않는 불안과 공포를 버텨내면서 마침내 프랑스 칸의 황금종려상을 시작으로 미국의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다.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과 유럽 3대 영화제(칸영화제, 베니스영화제, 베를린영화제) 중 어느 쪽이 더 권위가 높은가는 토론거리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아카데미 시상식과 유럽 영화제는 행사의 성격이 매우 다르기 때문에 비교하기가 애매한 편이다. 즉 아카데미는 전년도 한 해 동안 미국 내에서 개봉한 영화들을 대상으로 상을 주는 ‘시상식’이고, 유럽 영화제는 시상 이전에 전 세계에서 다양한 영화들을 초청하는 ‘영화제’이다.

봉준호 감독과 송강호 배우

봉준호 감독(51)과 주연배우 송강호(53)는 20여년 전 까까머리 조연출과 늦깎이 무명 배우로 만나 서로 가능성을 알아본 이후 영화 <살인의 추억>부터 <괴물>, <설국열차> 그리고 <기생충>까지 17년을 함께한 동반자(同伴者)로 서로 존경과 예우를 했다. <기생충>이 봉준호 리얼리즘의 정점이라면, 그 중심에는 송강호의 설득력 있는 연기가 있다.

인간관계에서 예의를 어느 정도까지 지키느냐에 따라 기생(寄生)에서 끝나지 않고 서로 상생(相生)과 공생(共生)을 이룰 수 있다.

봉준호 감독의 마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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