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경자년’···’쥐’에 담긴 이런 사연 들어보셨나요?
[아시아엔=박명윤 <아시아엔> ‘보건영양’ 논설위원, 보건학 박사] 올해는 쥐띠 해다. ‘띠’란 사람이 태어난 해의 지지(地支)를 동물 이름으로 상징하여 이르는 말이다. 12지지는 子(자, 쥐띠), 丑(축, 소띠), 寅(인, 호랑이띠), 卯(묘, 토끼띠), 辰(진, 용띠), 巳(사, 뱀띠), 午(오, 말띠), 未(미, 양띠), 申(신, 원숭이띠), 酉(유, 닭띠), 戌(술, 개띠), 亥(해, 돼지띠)다. 12띠 동물 중 음양(陰陽)을 고루 갖춘 동물은 쥐뿐이다.
12띠는 한 개의 시간 개념으로부터 시작한다. 즉 12시간·12달·12성좌(星座) 등 인간이 타고 넘어가야 할 파장이 12를 주기로 하고 있다. 예컨대 음력 열두달에는 12동물이 각각 배속되어 있다. 관상(觀相)에서 인상(人相)을 12부위로 나누는 것이나, 국악(國樂)에서 12음역(音域)으로 음계를 나누는 것, 판소리가 12마당으로 이루어지는 것 등이 같은 사고법에서 출발하였다.
또한 ‘띠’란 ‘각 사람들의 심장에 숨어 있는 동물’이라고도 일컫는데, 이는 원시 토템(totem)사회에 인간이 동물을 숭배하던 유풍에서 발생하였다. 삶을 같이 영위하는 동물은 인간과 유사·유관한 관계에 있다고 믿었다. 단군신화(檀君神話)에서 동물(곰)과 환웅(桓雄)이 혼례식을 치른 것도 하늘의 질서(문화)와 땅의 질서(문화)간의 융합을 뜻한다.
열두개의 띠도 그렇지만 천간(天干)도 그림으로 환산된다. 예를 들면, 경(庚)은 흰색이므로 ‘경자(庚子)’년은 ‘흰쥐띠’해이다. 동양철학에서 흰색은 서방의 금기(金氣)를 상징한다. 즉 가을에 내리는 서리와 같은 금기다. 아울러 경(庚)은 도끼를 가리키며, 경금(庚金)은 ‘담장을 부수고 나무 밑동을 잘라내는 도끼’와 비슷하다. 이에 올해 경자년은 도끼 성질을 지닌 쥐띠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신화(神話)에 나타난 ‘쥐띠’의 모습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나라 천지창조 신화에서 쥐는 현자(賢者)의 위치에 서 있다. 즉 천지창조 때 미륵(彌勒)이 탄생하여 해와 달과 별을 정돈하였다. 그러나 물과 불의 근원을 몰랐기에 생식(生食)을 해야만 했다. 그래서 생쥐를 붙잡아 볼기를 치면서 “물과 불의 근원을 아느냐?”고 물었다. 생쥐는 “가르쳐 드리면 나에게 무슨 이득이 있습니까?”라고 되묻자 미륵은 “세상의 모든 뒤주를 차지하게 하겠다.”고 답했다.
그러자 “불의 근원은 금정산에 들어가서 한쪽이 차돌이고 한쪽이 무쇠인 돌로 툭툭 치면 불이 날 것이며, 물의 근원은 소하산에 들어가면 샘물이 솔솔 솟아나 물의 근원을 이룬 것을 알 것이요”라고 하였다. 이때부터 세상은 물과 불을 쓰게 되었으며, 그런 후에 미륵은 인간을 만들었다. 이는 쥐가 불과 물의 근원을 아는 영물(靈物)일 뿐만 아니라, 쥐의 생태적 근원을 밝히고 있다. 쥐는 인간 이전에 이미 존재했고, 후에 인간과 함께 살아가야 할 자신의 활동 범위를 인정받는 영물이다.
쥐는 현자(賢者)의 상징 이외에 다산(多産), 재물 등을 상징한다. 쥐띠에 태어난 사람의 성격은 솔직 담백하며, 검소하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하게는 무엇이든 아끼지 않는다. 쥐띠생은 밝고 명랑하고 사교적이며 친구와 동료, 가족들을 소중히 생각한다. 하지만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문제들에 대해서 수다를 떨고 비난을 하고 트집을 잡고 흥정을 하는 부정적인 측면도 있다.
혹자는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 쥐는 죽어서 수많은 데이터(data)와 연구논문을 남긴다”고 말한다. 사람을 대상으로 할 수 없는 실험이나 환자에게 신약(新藥)을 투여하기 전에 동물실험은 필수적인데 대부분 쥐가 담당한다. 실험용 쥐는 조그마한 몸집이지만 실험실에서 인간의 생명 연장에 도움을 주는 일을 해내고 있는 소중한 동물이다. 국내에서 한 해 사용되는 실험용 쥐는 약 350만 마리다.
쥐가 실험용으로 이용되기 시작한 이후 수많은 과학영역에서 쥐를 이용한 실험이 이뤄지고 있다. 필자의 아내(이행자 前 고려대 교수)도 4개월간 쥐 실험을 통한 연구논문(A Study on the Change of Alkaline Phosphatase, GPT and GOT Activities in Some Organs of Rats by Feeding Glucose and Sucrose Diet)으로 서울대에서 보건학석사(MPH)학위를 1971년 2월 취득했다.
쥐를 실험용으로 사용하는 이유는 사람과 유전자(遺傳子)가 80%는 같고, 19%는 매우 닮았고, 완전히 다른 것은 1%에 불과하다. 인간의 유전자는 약 2만5000-3만개이며, 쥐도 거의 비슷한 수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실험용 쥐의 수명은 2.5년, 몸 크기는 약 8cm, 몸무게는 20g 정도다. 쥐 한 마리에서 나오는 분석 데이터 수는 400여개다.
연구가 거듭되면서 다양한 유전자 변형(變形) 쥐도 나오고 있다. 1994년 미국 록펠러대학의 제프리 프리드먼 박사는 유전자를 조작해 비만(肥滿)과 당뇨(糖尿)를 앓는 쥐를 만들었다. 국제기구인 ‘국제마우스표현형분석컨소시엄(IMPC)’에 공식적으로 등록된 유전자 변형 쥐는 약 8500종에 달하며, 이런 쥐들은 유전적 결함으로 발생하는 다양한 인간 질병 원인과 치료법 규명에 도움을 주고 있다.
최근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쥐 40마리를 국제우주정거장(ISS)에 보냈다. 이 쥐들은 미세중력 상태에서 근육 손실을 막아주는 약물이 얼마나 효과적인지 확인하기 위한 실험을 한다. 이 실험에 참여하는 3종류의 쥐는 일반 쥐, 근육이 2배 많은 마이티 마우스(mighty mouse), 그리고 근육 크기를 제한하는 유전자를 억제하는 약물을 맞은 쥐 등이다.
근육 크기를 제한하는 유전자가 약물로 억제된다는 것이 확인되면 지구에서 노화에 의해 자연스럽게 근육이 줄어드는 노년층의 건강에 도움을 주게 된다.
1979년 미국 듀크대학 셴버그(Schanberg) 교수(신경과학) 연구팀이 새끼 쥐의 성장에 관련된 호르몬을 연구하면서 실험을 위해 새끼 쥐를 어릴 때부터 어미를 때어놓고 길렀더니 잘 자라지 못하는 것을 발견했다. 연구진은 새끼 쥐가 태어나면 어미 쥐는 새끼를 핥고 쓰다듬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낸다는 것에 주목하고 새끼 쥐에 아주 작은 붓에 물을 묻혀서 계속 자극하는 일종의 ‘마사지’를 했다. 그러자 새끼 쥐는 어미 쥐와 떨어지기 전 수준으로 성장 호르몬이 높아졌고 튼튼하게 자랐다.
미국 마이애미대학 의대 소아과에서 조산아(早産兒)의 성장을 연구 중이던 티파니 필드 교수는 듀크대 연구팀의 연구 결과를 임신 37주 미만에 태어난 조산아에게 손으로 ‘마사지’하면서 촉각을 통한 자극을 계속해 줬다. 그 결과, ‘마사지 요법’을 받은 조산아는 그러지 않았던 조산아보다 성장률과 주의력이 높아졌으며, 인큐베이터(incubator, 보육기) 사용기간도 줄어 병원 입원 기간도 평균 6일 줄어들었다. 이에 조산아 ‘마사지 요법’은 현재도 사용하고 있다.
위 연구 공로를 인정받아 셴버그 박사와 필드 박사는 2014년 ‘황금거위상(Golden Goose Award)’을 받았다. 황금거위상(賞)은 미국과학진흥회(AAAS)와 미국 의회(Congress)가 함께 기초과학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2012년 마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