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와 여신 ‘가이아’
[아시아엔=김현원 뉴패러다이머, 연세대 의대 교수] 세계보건기구(WHO)가 3월12일 코로나19에 대해 세계적대유행(pandemic)을 선언했다. 그후 한달여, 전염병 경고단계 중 최고단계로 코로나19은 중국의 인접국가를 넘어 유럽전역 그리고 미국과 남미까지 대유행이 시작되었다.
이번 WHO의 세계적대유행 선언은 1968년 100만명 이상의 사망자를 발생했던 홍콩독감과 2009년 신종플루에 이어서 세번째다.
20세기 들어 가장 큰 세계적대유행 질환은 100년전 삼일운동 직전인 1918년 창궐했던 스페인독감이라고 할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적게는 5천만명 많게는 1억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보인다. 지금 인구로 환산해보면 2억에서 4억명이 독감으로 죽은 셈이다.
스페인독감은 2009년 돼지로 비롯된 신종플루와 기본형질이 비슷하다. 언제든지 변종이 일어나서 다시 창궐할 수 있다. 실제로 스페인독감은 1918년에서 1919년까지 3번에 걸쳐서 창궐했다.
나라를 잃은 조선에도 스페인독감은 번져서 1918년 무오년 9월부터 1919년 기미년 1월까지 전국에서 700만명의 환자와 14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조선왕조실록>에 역병이나 역질에 관한 기록이 200여건 이상 나온다. 10만명 이상 죽은 경우가 6차례나 된다. 끊임없이 발생하는 전염병이 인구를 줄이는 가장 큰 요인이었다.
역사상 가장 큰 사망자를 낸 전염병은 단연코 페스트라고 할 수 있다. 1346년 발생해서 1353년까지 유럽전역에 퍼졌다. 쥐벼룩에 의해 옮겨지는 페스트는 치사율이 50-80%에 달했다. 페스트는 유럽전역을 휩쓸고 유럽인구의 1/3을 앗아간 후에야 멈추었다. 놀라운 일은 페스트가 물러간 후 15세기에 르네상스(문예부흥)가 일어난 것이다. 인구가 줄어드는 바람에 식량에 여유가 생겼고 이것은 르네상스로 이어진 것이다.
<다빈치 코드>의 작가 댄 브라운은 그의 소설 <인페르노>에서 페스트를 르네상스의 원인으로 규정한다. 천재과학자이며 재벌인 조브리스트는 현대의 문제점이 인구과잉이라고 보고 이대로 가면 인류가 멸망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는 바이러스를 이용해서 인구를 절반으로 줄이는 계획을 한다. 결국 바이러스를 막지 못해서 전세계로 퍼진다.
영화에서는 바이러스를 마지막 순간에 극적으로 막는다. 퍼져나간 바이러스는 어떤 영향도 주지 않고 단지 인류의 DNA만을 변화시켜 사람들은 감염된 줄도 모르면서 점차 세계 인구구조를 바꾼다. 바이러스가 퍼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총력을 기울였던 WHO 총재 신스키는 다음과 같이 변화된 태도를 보인다. “과연 우리가 그 바이러스에 대항할 필요가 있을까요? 지구가 심각한 인구문제에 직면해 있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진리이니까요.”
마블코믹스에서 제작한 <어벤저스: 인피니티 워>에서 인구과밀로 인해 자원이 고갈되고 멸망 위기가 오게 되는데, 타노스는 우주 전체가 인구 과잉으로 균형을 잃었다고 여긴다. 타노스는 우주가 균형을 되찾는 유일한 방법이 생명체 절반을 제거하는 것으로 보고 실제로 무작위로 인구의 절반을 죽인다.
지구 입장에서는 가장 골칫거리가 인간이다. 지구의 다른 존재는 자연에 순응하나 인간은 자연에 순응하지 않고 자연을 바꾸어버린다. 인간에 의해서 지구환경은 끊임없이 침해당하고 온난화를 비롯해서 심각한 환경적 위기를 겪고 있다.
가이아는 대지의 여신을 일컫는다. ‘가이아 이론’에서는 지구전체를 살아있는 생명체로 보고 가이아라고 부른다. 가이아 이론은 환경과 관련해서는 끊임없이 인용되고 있다. 가이아 입장에서는 끊임없이 지구를 파괴하는 인간이 가장 해로운 존재임에 틀림없다. 가이아 이론에서는 지구가 환경을 정화하는 노력 중 하나가 태풍이라고도 한다.
가이아 관점은 지구의 대기를 정화하기 위해서 정기적으로 태풍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태풍만으로 지구의 문제점이 해결되지 않는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지구를 파괴하는 인간이라는 존재다. 가이아는 현재 인구가 지구를 감당할 수 있는 선을 넘었다고 본다. 가이아 입장에서는 인간의 숫자를 줄이는 게 지구환경 문제의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끊임없이 발생하는 바이러스 질환의 세계적 대유행도 가이아 입장에서 보면 살고자 하는 몸부림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바이러스와 인류의 싸움을 가이아와 지구를 해치는 해충과의 싸움으로 바라본다면 인류가 바이러스와의 싸움에 꼭 이겨야 할 명분도 없는 것 같다. 가이아의 입장에서 봤을 때 전쟁도 없어진 21세기의 지구에서 인구를 줄이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바이러스에 의한 질환이라 할 수 있다.
조선 말기 강증산은 많은 예언을 남겼다. 그의 예언 중 현재 상황에서 주목을 끄는 대목이 바로 병겁(病劫)이다. 증산은 우주의 역사를 선천과 후천으로 나누었다. 선천세상은 우주의 봄과 여름에 해당하고 후천세상은 가을과 겨울에 해당한다. 증산은 파괴와 대립으로 나타난 선천세상의 마지막 시점에서에서 큰 역병이 나타나서 많은 인류가 죽은 후 조화와 상생으로 나타나는 후천세상이 시작될 것으로 예언하였다.
“장차 전쟁은 병으로서 판을 막으리라. 앞으로 싸움 날만 하면 병란이 날것이라. 병란(兵亂)이 병란(病亂)이니라. 만일 시두가 대발하거든 병겁이 날 줄 알아라.”
시두(時痘)는 천연두를 말한다. 증산의 예언에서 시두가 단지 천연두 바이러스에 한정되지는 않을 것이다. 앞으로 예상되는 모든 바이러스 질환을 증산은 시두로 표현했을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천연두, 콜레라, 성홍열, 장티푸스, 이질 등이 역병으로 유행하였다. 천연두를 제외하고는 박테리아에 의한 전염병이다. 페니실린 이후 박테리아로 인한 전염병에 인류는 항생제라는 무기를 갖게 되었다. 하지만 바이러스 질환에는 현대의학은 아직 특별한 치료방법이 없다. 더구나 바이러스는 끊임없이 변이하기 때문에 백신으로 대처하기도 힘들다.
현재 지구의 환경위기는 인류에 의해서 스스로 만들어진 것이다. 지구상의 존재 중 오직 인간만이 지구를 파괴하고 있다. 만약 코로나19가 가이아가 지구를 파괴하는 인류의 인구를 줄이고자 하는 노력이라면, 그리고 그것이 스스로 멸망으로 치닫는 인류를 살리는 길이라면 우리가 싸움에 이길 명분이 없다.
코로나19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우리가 앞으로 계속 창궐할 것으로 보이는 바이러스 질환과의 싸움도 중요하지만 가이아와의 타협도 필요한 시점이라고 본다. 가이아와의 타협은 계속 늘어나는 인구증가를 스스로 억제하고 더 이상 환경을 파괴하지 않으려는 인간의 노력을 의미한다.
여태까지 인류의 과학은 자연을 계속 파괴하면서 발전해 왔다. 현재 지구와 인류는 환경파괴로 인해 멸망을 향해 치닫고 있다. 이 폭주열차를 멈추는 방법은 더 이상 환경파괴를 멈추고 인류의 과학을 자연과 상생하는 방향으로 전환시키는데 있다. 그것을 인류가 거부하면 지구입장에서 인구를 인위적으로 줄이는 방법밖에 없다. 코로나19를 지구의 환경관점에서 보면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다. 실제로 코로나19 이후 지구 환경이 회복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자연과의 상생을 위해서는 끊임없이 소모하고 파괴하는 물질관점을 벗어난 새로운 패러다임의 과학이 필요하다. 환경을 파괴하지 않으려는 인간의 노력이 분노하고 있는 가이아에게 보내는 제사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