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믿는 것은 모두 진실인가?···선과 악은 그렇게 명확한가?

[아시아엔=김현원 연세대 교수, <뉴패러다임 과학과 의학> 저자] 나는 정치적인 얘기를 거의 하지 않는다. TV뉴스를 본 기억도 거의 없고 신문도 스포츠면만 뒤적거린다. 지난 연말, 나의 과학을 전적으로 지지해주셨던 분이지만 정치적으로는 극우적 견해를 갖고 있는 분이 당연히 나도 극우적 견해를 갖고 있으리라 생각하고 말씀을 하셨다. 나는 극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단어는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것이 그분이 믿고 있는 불교의 중도라고 했다.

그후 그는 나에 대해 “말로만 듣던 강남좌파인지 몰랐다”며 나를 설득시키려는 글들이 계속 왔다. 다음에 이어지는 글은 모두 그에 대한 나의 답변이다.

“선과 악이 그렇게 명확합니까? 선과 악을 결정하는 것은 바로 ‘나’입니다. ‘나’라는 존재가 태어나서 특정한 환경 속에서 자라면서 정체성을 갖게 되고 그 틀 안에서 선악을 판단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성경에서는 선악과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누구든지 선을 행한다고 생각하겠지요. 다만 그 사람의 선과 나의 선의 기준이 다를 뿐입니다. 한국과 일본의 기준점이 완전히 다르잖습니까?

옳고 그른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판단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토론해도 결론이 나지 않는 것은 각자의 옳고 그름에 대한 기준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내가 아무리 옳다고 믿어도 100% 옳을까요? 내가 본 여론조사에서 가장 높아도 80%를 넘은 적은 없습니다. 하나하나는 진실일지 몰라도 그런 판단이 몇 번 반복되면 틀릴 가능성이 더 높아지는 것입니다. 그게 세상의 법칙입니다. 이 세상 살면서 누구나 나쁜 생각 좋은 생각 다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이 세상을 흑백으로 볼 때 (80%를 100%로 볼 때) 모순이 발생하기 시작합니다. (0.8×0.8×0.8≒0.5) 옳은 결정도 3번 정도 지나가면 틀릴 가능성이 절반에 이릅니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패거리를 만들면 더 편한 것입니다. 실제 세상에서 여론 조사해 보면 거의 50%에서 왔다 갔다 하는데, 내 주위 사람들은 100% 나와 같은 생각을 한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생각하는 사람들 아예 안 만나게 되고, 패거리 속에서 다른 패러다임은 전혀 이해하지도 못 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정치적으로 우도 아니고 좌도 아니고, 보수도 아니고 진보도 아닙니다. 나는 비겁합니다. 어떤 때는 우가 되고 어떤 때는 좌가 됩니다. 어떤 때는 보수이고 어떤 때는 진보가 됩니다. 내가 없기 때문입니다. 과학에서는 분명 진보라고 하겠습니다만···. 하지만 기존 과학과 싸우지는 않습니다. 다만 안타깝게 바라볼 뿐입니다. 세상의 과학이 물질이 100% 라고 착각하게 된 것도 다 이유가 있을 테니까요.

성경에 사탄이 세상의 공중권세를 쥐고 있다고 표현합니다. 그가 이 세상의 주인이라는 얘기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틀(패러다임) 안에서만 자유로운 모습, 틀을 벗어나면 핍박하는 모습, 생명을 물질로만 바라보는 모습들을 보면서 그가 웃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쓸데없는 일에 판단하느라고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습니다. 말씀드렸듯이 정치는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선악과 옳고 그른 것을 시비하지 않습니다. 기준점이 다른데 논쟁을 하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나를 핍박하는 세상의 과학과 의학 그리고 언론도 그냥 바라보면서 하늘의 때를 기다릴 뿐입니다.

무엇이 옳은가요? 확률인가요? 캡처인가요? 순간의 캡처를 갖고 선악을 판단하는 모습이 세상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세상의 진실은 사실은 확률 속에 있습니다, 어떤 상황이 진실일 가능성이 있고, 동시에 진실이 아닐 가능성이 동시에 있는 것입니다. 그때 나는 그 중의 하나를 선택할 뿐입니다. 내 마음이 실제 100%를 100%로 선택했을까요? 51과 49의 마음속에서 51을 선택하고 그것을 100%로 선택합니다. 그리고 선택한 순간부터 49를 완전히 지우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49를 선택하고 100이라고 우기기도 합니다. 그것이 현재 세상입니다. 그렇다는 것을 알더라고 패거리와 틀 속에 있다 보면 집단으로 착각하고 자기최면에 빠지게 됩니다.

하지만 더 높은 세계에서는 캡처로도 진실이 표현됩니다. 하나를 보고 열을 안다는 말이지요. 어느 부분도 전체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과학적으로는 홀로그램이라고 합니다.

우주와 생명은 홀로그램입니다. 나무만 보면 다 다르지요. 하지만 숲 안에서는 나무는 서로 각자의 역할을 갖고 있는 부분입니다. 전체와 부분은 항상 협력합니다. 바로 생명이 전체와 부분의 대화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바로 우주와 생명의 대화입니다. 홀로그램 안에서 색(色)의 세계는 다 상(想)입니다. 신기루이지요. 바로 매트릭스입니다.

하지만 어느 곳에서나 본질을 볼 수 있습니다. 우주와 생명이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매트릭스 안에도 진실을 추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바로 우주는 매트릭스를 포함하는 홀로그램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평생 패러다임을 벗어나기 위해서, 자유함을 얻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내 과학을 뉴패러다임 과학으로 표현하는 이유입니다. 물질이라는 패러다임을 벗어나면 과학과 생명과 종교가 만납니다. 건강뿐 아니라 에너지 환경, 21세기가 당면한 긴박한 문제들에 대해서 물질이라는 우물을 벗어나면 솔루션이 보입니다.

연말에 그동안 기다리던 특허가 등록되었습니다. (물질의 파동을 받아들여 간접적으로 물에 전달하는 세라믹 볼의 제조방법) 물질의 파동을 디지털화해서 카드와 전기에 담는 부분도 특허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특허보다도 최근 홀로그램을 이용해서 원격으로 치료하고 원격으로 축산 양식 어업에 적용할 수 있는 테크놀로지를 개발한 것이 더 중요합니다. 조만간 아프리카 돼지열병에 대한 뉴패러다임 과학으로 개발한 치료제를 시험 예정입니다. 당면한 지구 환경문제에 대해서 답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하늘이 준 사명을 다시 인식합니다.

귀한 생명끼리 이전투구 하면 안 되지요. 저는 이런 얘기들이 즐겁습니다. 정치, 어쩔 수 없으니 누군가가 해야 되겠지요. 정치, 꼭 틀을 갖고 싸워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틀이라는 옷 벗으면 싸울 일도 없겠지만, 어쩔 수 없이 싸우더라도 좀 품위 있게 싸우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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